▲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상왕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상득 문건’으로도 불리는 이 문건이 당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상왕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문건 작성자가 누구이며, 무슨 용도에서 이명박(MB) 정권 ‘최대 실세’인 이 의원에게 제공했는지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문건은 ‘산업은행 민영화는 고승덕 절대반대, 이진복 반대, 박종희 소극반대’라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동향을 담은 뒤 ‘특히 이 사안에 대해서는 홍준표 원내대표가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고승덕의 저항이 노골화되고 있음’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동의명령제-일반지주회사법의 경우 김영선 위원장 결사반대’라며 ‘특히 동의명령제의 경우 국무회의 통과법안을 상정조차 못하게 하려다 이제는 전속고발제 폐지법안을 의원입법으로 제출, 둘 다 폐기함으로써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음’이라고 김 위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일단 파문의 당사자인 이 의원은 문건에 대해 “그날(5일) 점심 때 금융계 인사가 뭘 하나 주기에 받아서 보지도 않고 있다가 본회의장에 들어와 펼쳐본 것이다. 이게 비밀 문건도 아니고 난 여기에 별로 관심도 없다.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문서의 출처에 대해선 “그것은 말 못한다.내가 받은 게 맞지만 그 이상 추측하지 마라”고 선을 그었다.
이 의원과 문건을 같이 보다가 ‘들킨’ 안 사무총장도 “본회의장에서 내 자리가 (이 의원) 옆 자리에 있어 우연히 본 것일 뿐 내용도 잘 모른다”고 비켜갔다. 또 문건에 거명돼 본의 아니게 피해자가 된 정무위 한나라당 간사 박종희 의원도 “공식채널에서 보고된 문건이 아니다. 문제의 문건은 당이나 행정부가 아닌 사설 정보지 수준의, 사실과 다른 정보와 사실인식을 담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들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가 거의 없다. 작성자가 누군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건에 거명된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문건은 같은 당 ○○위 소속 A 의원이 만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갓 40을 넘은 소장파 초선인 A 의원은 ‘젊은 보수’를 표방하며 현안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직설적으로 견해를 표명해 뉴스메이커로 부상한 인물이다.
▲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상득 문건’. 연합뉴스 | ||
다른 한편으론 A 의원이 MB 핵심측근인 정두언 의원과 가깝고, 이재오계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놀라워하고 있다.MB계 내에서 이재오계와 심심찮게 갈등을 빚어 온 이 의원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A 의원이 ‘정보보고’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당장 MB계 한 중진은 “젊은 친구가 벌써부터 구 정치인들이 보이던 ‘양다리 행보’를 해서야 쓰겠느냐”며 혀를 찼고, 박근혜계 한 재선 의원은 “‘주이야박’(낮에는 이명박계, 밤에는 박근혜계)이란 얘기가 나돌더니 A 의원은 ‘주재오,야상득’인 셈이냐”고 힐난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A 의원과 같은 케이스가 다른 상임위에서도 있을 것이란 분석이 당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문건 파동이 터진 후 각 상임위에선 ‘누가 SD(이상득 의원의 영문 이니셜)의 정보원이냐’가 주요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 인사들 사이에선 재선인 K·N·H 의원과 초선 L·J·Y 의원 등 상임위별로 1~2명씩으로 ‘후보군’이 좁혀진 상태다.
박근혜계의 한 중진은 “굳이 ‘SD맨’이라 지칭하지 않더라도 당내엔 이 의원에 이런저런 정보사항을 보고하는 의원들이 진작부터 줄을 서 있는 터였다. 상임위 상황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이 의원에게 수시로 동향을 전하는 의원들이 있다. 얼마 전 부산에서 박근혜계 의원들과 가깝게 지내던 초선 B 의원이 동향보고를 받은 이 의원에게 불려가 ‘지난 총선 때 자네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알면서 그렇게 행동하느냐’며 크게 혼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고 말했다.
실제 당내엔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 등 ‘투 톱’보다 이 의원이 당은 물론 여권 전체가 돌아가는 상황을 더 폭 넓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당내에선 임태희 정책위 의장과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 등 정보가 흐르는 요소요소에 이 의원이 후원하는 인사들이 집중 배치돼 있다. 이춘식 조해진 의원 등 안국포럼 출신 MB 측근들 상당수도 이 의원의 소통 라인이다.
당 밖에선 이 의원의 비서실장 출신인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1비서관, 과거 이 의원이 코오롱그룹에 몸담을 당시부터 수십 년간 인연을 맺은 국가정보원 K 실장 등도 이 의원과의 관계상 여러가지 정보를 공유할 것이란 얘기도 돌고 있다. 그야말로 여권 중추 라인에 SD맨들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다.
이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상왕 정치’ ‘정보 정치’ 논란에 “솔직히 말해 (그런 구설수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의 구속과 맞물려 이번 ‘문건 파동’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을 의식해 “나도 남의 회사(코오롱)에서 30년 넘게 생활했고, 사장을 12년이나 해서 친·인척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주변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당 지도부에서조차 “대통령의 형님인 이 의원에게 붙어서 정보를 제공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이 의원) 주변에 부나비들이 붙는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좀 잘 해줬으면 한다”(홍준표 원내대표)며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할 정도다. 향후 여권의 진용개편 방향에 따라 ‘영일대군’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