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성 전 국세청장(왼쪽)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수사 협조 여부에 따라 여의도 정치권에 매서운 사정한파가 몰아칠 전망이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참여정부 게이트’가 현실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정 전 회장과 이 전 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외풍이 심했던 농협중앙회장과 국세청장을 지낸 이들 두 사람이 구 정권 권력형 비리 사건과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할 핵심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잇따른 사법처리로 편파·기획 사정 의혹이 희석되고 있는 만큼 참여정부와 구 정권을 겨냥한 검찰의 사정 드라이브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두 사람의 수사 협조 여부에 따라 여의도 정치권에 매서운 사정한파가 몰아칠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두 사람이 각종 권력형 게이트 사건을 규명할 열쇠를 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006년 5월 현대차그룹 로비 사건으로 구속돼 수감 중인 정 전 회장은 세종증권 게이트 사건과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및 남해화학 인수 로비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정 전 회장은 특히 세종증권 사건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 게이트’ 내지는 ‘농협 게이트’로 확전되면서 이번 사건을 규명할 핵심 당사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정 전 회장은 세종증권의 대주주였던 세종캐피탈 측으로부터 2005년 12월에 10억 원, 2006년 2월에 40억 원 등 모두 50억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회장은 또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및 남해화학 인수 추진 과정에서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검은 거래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12월 12일 구속된 박 회장은 휴켐스 인수 작업에 착수한 2006년 1월 정 전 회장에게 20억 원을 차명계좌로 전달했다가 정 전 회장이 현대차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그해 5월 구속되자 9월에 이 돈을 되돌려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2005년 농협 회장 시절 박 회장에게 세종증권을 인수한다는 미공개 정보를 알려줘 200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올리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가까운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내부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지난 99년 농협 사상 처음으로 지역 조합장 출신으로 중앙회장에 당선된 정 전 회장은 구 정권 정·관계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는 등 정치권 마당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 전 회장이 구속된 이후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인사들이 잇따라 특별면회를 했고 이중에는 거물급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전 회장은 2006년 5월 자신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이러한 정치권 인맥을 통해 전방위 구명 로비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회장은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2006년 7월 병 보석으로 석방된 데 이어 2007년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2007년 7월 항소심에서 징역 5년형의 실형이 선고되면서 다시 법정 구속됐고, 같은 해 11월 대법원에서 이 형이 확정됐다. 그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특별사면을 받기 위해 신·구 정권 실세들을 상대로 은밀한 로비를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정치권에 적잖은 배신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22일 구속된 이주성 전 청장도 정·관계를 뒤흔들 초대형 시한폭탄의 뇌관을 쥐고 있는 인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 비자금 사건과 신성해운 청탁 로비 사건에 이어 포스코그룹 세무조사 로비 사건에도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프라임그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급성장했다는 점에서 구 정권 실세들과의 유착설이 끊이질 않았었다. 검찰은 10월 16일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을 구속한 데 이어 대우건설 인수 청탁과 함께 백 회장으로부터 19억 원짜리 아파트를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를 받고 있던 이 전 청장을 전격 구속했다.
검찰은 백 회장의 횡령 액수가 400억 원대에 달하고 이 전 청장에게 20억 원대 로비를 벌인 정황이 포착된 만큼 백 회장의 구 정권 및 정·관계 실세들에 대한 전 방위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백 회장과 동향으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A 씨 등 구 정권 핵심 실세들이 조만간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 것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을 상대로 프라임그룹 비자금 사건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동시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신성해운 청탁 로비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신성해운 사건과 관련해 수십억 원이 들어있던 차명계좌 수십 개를 보유한 사실을 밝혀내고도 돈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해 체면을 구긴 바 있다. 특히 신성해운 사건은 참여정부 386 정치인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재수사 추이에 따라 또 다른 참여정부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 정권 사정을 촉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포스코 로비 사건의 정점에도 이 전 청장이 자리 잡고 있다. 국세청은 이 전 청장 재임 시절인 2005년 7월 포스코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 결과 1704억 원의 세금을 추징하면서도 검찰 고발조치는 하지 않았다. 1700억 원대의 세금을 추징하면서 검찰 고발을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포스코 측이 국세청 최고위층과 정권 실세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검찰은 당시 여권 핵심 실세였던 K·J 씨, 포스코그룹과 돈독한 관계였던 학계 거물 H 씨 등이 포스코 로비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 실세들과 이 전 청장, 포스코그룹의 검은 커넥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건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검찰이 3년이나 지난 포스코 세무조사 건을 다시 들춰내고 있는 배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이구택 회장 겨냥설’ 등 정치적 노림수가 있든지, 아니면 로비 의혹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물증이나 증인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각종 대형 비리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중형이 불가피한 이 전 청장이 검찰과 플리바게닝에 교감을 나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세종증권 게이트에 등장한 주요인물 중 한 사람인 김 아무개 회장이 구속을 면한 데는 그가 수사에 적극 협조해 플리바게닝이 적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 전 청장 또한 검찰과 은밀한 ‘딜’을 시도할 정황은 충분하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과연 코너에 몰린 정 전 회장과 이 전 청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까. 두 사람의 ‘입’이 사정정국을 달구는 뜨거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