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자리에 모인 피해여성들. 카사노바는 지금도 유유히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 ||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100여 명의 여성들의 프로필과 약속 날짜 등을 1년 넘게 매일 꼼꼼하게 다이어리에 기록해 왔다는 점이다. 이름 옆에는 그날 섹스를 했는지의 여부도 빠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어 그의 목적이 단순한 성관계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는 법. 지난 5월 마침내 한 여성에 의해 모든 사실이 발각되고 말았으며, 현재 그는 몇몇 여성들로부터 집단 소송까지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애매한 것은 그의 이런 행동들이 과연 법에 저촉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금전적인 사기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니었고, 또 간통을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실비아 파울(여·50)은 지난 3월 중순께 처음 프랑크(가명·39)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인터넷 대화방에 접속한 남성들의 프로필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낯선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James93’이라는 아이디의 이 남성은 그녀에게 “당신의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 꼭 만나고 싶다”면서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시큰둥했지만 그 남자는 끈질겼다. 마지 못해 그를 만나기로 한 실비아는 약속 장소에 나온 프랑크가 매력적이라는 데 놀랐다.
자신의 본명을 프랑크라고 소개한 그는 첫만남부터 꽤 솔직했다. 직장이나 이혼한 전 부인과 딸에 관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또한 지금까지 채팅을 통해 100여 명의 여성들을 만났으며 그중 스무 명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털어 놓기까지 했다.
이런 솔직함이 실비아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며 오히려 그를 믿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가 “당신이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 천사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는 등 애정 공세를 펼치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바로 그날 밤 잠자리를 가진 실비아는 그날 이후 그에게 푹 빠져 지냈다. 프랑크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문자를 날렸으며, 하루 세 번 통화는 기본이었다. 그는 깜짝 이벤트를 만드는 데에도 선수였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앞으로 함께 살게 될 호화 주택을 보러 가는가 하면 종종 출장을 갈 때면 그녀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또한 프랑크는 실비아에게 자신의 아파트 열쇠까지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의 생일 하루 전날 그가 실비아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다. “전에 사귀던 마렌이라는 여자한테 확실히 결별을 선언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은 만날 수 없다”고 한 것. 그날 밤 그는 문자를 통해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 마렌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알리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며칠 후 실비아는 프랑크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인을 만나 프랑크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중 그가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같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것. 최근 아는 여자에게서 들은 애인과 첫만남부터 데이트까지 방식이 너무 똑같다는 것이었다. 확인 결과 그 여성이 만나던 애인은 프랑크가 확실했다.
불길한 마음에 실비아는 프랑크가 출장을 간 날 몰래 그의 서재로 숨어 들어갔다. 책상 위에서 커다란 다이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몇 장을 넘기자 놀라운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명의 여자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그 옆에 호텔 이름과 레스토랑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여성들에 관한 짧은 메모도 발견되었다.
가령 ‘A-동독여자, 비서, 매우 수줍어함, 끝내줌’ ‘B-사업가, 포르셰 몰고 다님’ ‘C-수의사, 양성애자, 과격함’ ‘D-주부, 천박함, 그룹 섹스 즐김’ ‘E-스튜어디스, 목소리 섹시함’ ‘F-터프한 스타일, 온몸에 피어싱, 셋이서 섹스함’ ‘G-영화배우, 사무실에서 하는 걸 좋아함’ ‘H-크로아티아 출신, 매우 만족스런 섹스, 몸매 끝내줌’ ‘I-딸, 19, 몸매 끝내줌’ 등과 같은 것이다.
또한 곳곳에서 ‘fx’ ‘2x fx’ ‘하루 묵음’ 등의 표시가 발견됐다. 물론 실비아 자신의 이름도 발견되었으며 여러 차례 ‘실비아 방문(fx)’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fx’의 의미는 추측하건대 ‘섹스’를 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앞서 그가 말한 전 여자친구인 ‘마렌’의 이름도 보였으며, 역시 옆에는 ‘fx’라는 표시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렌과 다음 약속도 잡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바람둥이라는 사실에 분노한 실비아는 2주에 걸쳐 그의 2005년과 2006년 다이어리를 일일이 복사했으며, 그가 모아놓은 수많은 여성들의 사진도 찍었다. 그녀의 목표는 모든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하는 것. 우선 피해 여성들과 함께 의논하기 위해 비공개 게시판을 개설하고 여기에 그간 모아 놓은 다이어리 자료와 함께 그의 파렴치한 행동들을 낱낱이 올려놓았다. 그리고 100명의 여성 중 이메일 주소가 확보된 80명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다.
30분도 되지 않아 게시판에는 속속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방금 이메일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앞으로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라고 적었는가 하면 또 다른 여성은 “성병이나 에이즈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반면 몇몇 여성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좋아서 자의적으로 그를 만난 것 아닌가요”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했다.
프랑크는 어떻게 알았는지 게시판에 즉각 사죄의 글을 남겼다. “너무 부끄럽다. 정말 죄송하다. 또한 병원에서 성병, 에이즈 검사를 받고 여기에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는 “제발 회사에는 알리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후 게시판에는 성병에 걸렸다는 여성들의 제보가 올라왔다. 실비아를 포함한 여덟 명의 여성이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실비아는 프랑크에게 되레 도둑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 또한 회사 기밀이 담겨 있는 프랑크의 컴퓨터를 허가 없이 열람했다는 혐의로 프랑크의 회사도 그녀를 고소했다. 게시판은 폐쇄됐으며 프랑크는 또 다른 아이디로 당당하게 인터넷을 누비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