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탈리아 사랑’은 주위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유별났다고 하니 일본의 역대 총리 중 최초로 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시 주변 사람들한테 “총리를 그만두면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 본고장의 오페라도 보고 음식도 맛있고…, 무엇보다 여자들이 예쁘니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더구나 그의 오른팔로 알려진 누나 노부코 씨가 지난 10월 이탈리아 주요 도시들을 방문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주 준비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총리를 지낸 사람의 “이탈리아에서 살고 싶다”는 발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 중 해외방문 횟수가 역대 일본 총리들 중 가장 많은 51회일 정도로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이탈리아를 특히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문화의 정수 중 하나는 바로 오페라. 고이즈미 전 총리는 열렬한 오페라 팬이다. 총리 시절 관저에서 매일 밤 오페라를 비롯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고 한다. 그와 가까운 의원에 따르면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는 타입으로 오페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오페라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오페라에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 이탈리아 요리다. 취임 초기 저녁 회식 메뉴는 무조건 이탈리아 음식이었다고 한다. “파스타는 조금…”이라는 의원이나 관계자들의 ‘불만’에 따라 재임 후반에 들어서야 일본 음식이나 중국 음식을 찾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는 한 의원은 “이탈리아 음식에 굉장히 익숙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미 메뉴가 정해진 코스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전채부터 파스타, 메인 요리를 직접 고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또한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서 와인 리스트를 보며 각각의 요리에 맞는 와인을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고이즈미는 양복도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인 ‘아르마니’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고이즈미 전 총리가 당장 이탈리아로 이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일단 본인 스스로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아베 정권을 측면지원하겠다고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고이즈미 집안은 3대째 내려오는 정치가 집안이다. 만일 그가 정말로 이탈리아에 이주할 생각이라면 은퇴하기 전에 ‘가업’을 이을 후계자를 키워놓아야 한다.
현재 4대째 후계자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장남인 고이즈미 고타로다. 그는 현직 총리의 아들로 화제를 모으며 연예계에 입문했지만 집안이나 배경 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요즘 고타로는 고향 요코스카의 사무실에서 일을 배우며 정계 입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도 “고이즈미 사무실의 명함을 갖고 싶다”며 정치가의 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유전자’는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더 많이 물려받았다. 그는 연예인 지망생이던 형과는 달리 오랫동안 곁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정치가의 꿈을 키워온 ‘준비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현재 워싱턴의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둘 다 지명도와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 있으니 장남은 중의원에 차남은 참의원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고이즈미의 두 아들이 모두 정계에 진출하여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당선된다면 일본 정계에 ‘고이즈미 왕국’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