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골드비시사가 제작한 단 세 대뿐인 ‘다이아몬드 휴대폰’. 한 대는 이미 칸 박람회에서 팔려나갔다고 한다. EPA/연합뉴스 | ||
지난해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백만장자 박람회’는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슈퍼 갑부’들을 대상으로 한 일명 ‘명품 박람회’.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품들은 보석, 요트, 경비행기, 헬리콥터, 자동차, 부동산, 휴대폰 등 다양하다. 물론 일반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그저 그런 것들은 아니다. 오로지 부자 고객들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명품’이거나 혹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불해야지만 구입할 수 있는 초고가의 물품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돈을 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러시아의 신흥 부호들에게 이런 가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도 되는 양 4일 내내 박람회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모스크바 북부 외곽에 위치한 ‘크로쿠스 엑스포’ 박람회장. 한켠에서는 행사 도우미들이 조랑말을 타고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 있고, 다른 한켠에서는 우아한 드레스 차림의 도우미들이 달마시안을 끌면서 사뿐사뿐 걷고 있다.
이들 사이로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들과 턱시도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성들이 샴페인을 마시면서 유유히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품들은 값비싼 보석이나 도자기부터 고급 승용차, 경비행기, 요트, 심지어 부동산까지 다양하다. 단 가격은 1000만 원대가 기본이며, 수억 원을 넘나드는 물품들도 부지기수다. 박람회장을 찾은 러시아 부자들은 대부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수억 원을 지불하곤 한다.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150만 달러(약 14억 원)를 호가하는 헬리콥터였다. 이 헬리콥터는 현재 모스크바에 단 세 대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이런 희귀성 때문인지 박람회가 열리자마자 한 러시아 갑부에게 판매되었다.
또한 자동차광들을 위해 출품된 ‘부가티 스포츠카’는 한 러시아 갑부에게 140만 달러(약 13억 원)에 팔렸으며, 8만 6000달러(약 8000만 원)짜리 ‘재규어’ 역시 가뿐하게(?) 거래가 성사됐다. 어디 그뿐인가. 혈통 좋은 종마 한 마리는 50만 달러(약 4억 7000만 원)라는 가격에 팔렸다.
이번 박람회만을 위해 제작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향수도 있었다. ‘겔랑’ 향수로 가격은 무려 6만 4000달러(약 6000만 원)였다.
또한 박람회에서는 부동산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파나마 섬의 빌라 한 채가 2500만 달러(약 230억 원)에 판매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무인도를 통째로 내놓은 업체도 있었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업체는 모두 200여 곳. 불가리, 벤틀리, BMW, 메르세데스, 카르티에, 재규어, 레미 마틴, 몽블랑, 소니, 롤렉스, 포르셰, 월포드 등 명품업체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박람회 기간에 거래된 액수는 모두 6억 3500만 달러(약 6000억 원)에 달했다.
그렇다면 혹시 박람회장에는 부자들만 입장할 수 있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프닝 파티의 경우 초청된 VIP고객들만 참석할 수 있는 반면 실질적인 박람회에는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입장을 할 수 있다. 일반인 입장료는 30유로(약 3만 6000원) 정도며, 연령에 관계없이,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단, 복장 제한은 있다. 반바지 차림이나 슬리퍼를 신고 입장하는 것은 금물. 남성들의 경우에는 턱시도를 입거나 혹은 말끔한 차림이어야 하며,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브닝 드레스나 단정한 정장 차림이어야 한다.
암스테르담 칸 모스크바 상하이 등지를 돌면서 ‘백만장자 박람회’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주인공은 네덜란드 출신의 잡지 발행인이자 백만장자인 입스 지라스(40)다. 그는 “이 박람회는 단순히 명품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어른들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곳, 즉 ‘어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9500명의 VIP들이 초대되었던 오프닝 파티에는 유명 가수인 새라 브라이트먼의 초청 공연이 펼쳐졌는가 하면 재즈 공연, 승마 쇼, ‘맘마미아’ 뮤지컬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 박람회는 전통적인 ‘부자들의 도시’인 뉴욕이나 런던이 아닌 모스크바에서 열린 걸까. 출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 부자들은 유럽이나 미국 부자들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돈을 아주 잘 쓴다”고 그 이유를 말한다. 또한 독일의 한 유명 피아노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지난 2003년 이후 러시아에서만 9만 5000달러(약 9000만 원)짜리 피아노를 30대 이상 팔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 입스 지라스 | ||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는 ‘벼락 부자’들의 천국이다. 게다가 그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지난해의 경우 백만장자 수가 무려 17%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러시아의 신흥 부호를 일컫는 ‘노브이예 루스키예’ 즉 ‘뉴 러시안’의 수는 현재 약 10만 3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중 10억 원 이상의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갑부는 8만 8000명에 달한다.
한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2006년 현재 10억 달러(약 95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러시아의 억만장자는 33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4년 25명, 2005년 27명에 비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억만장자 중 25명은 수도인 모스크바에 모여 있으며, 이로 인해 모스크바는 일찌감치 런던(23명)을 제치고 세계 부호들이 몰려 있는 뉴욕(40명)을 뒤쫓고 있는 세계 2위의 ‘부자 도시’로 올라섰다.
한편 러시아의 신흥 부호들은 지난 1990년대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은 석유, 광산 등 국유기업 등을 헐값에 사들여 떼돈을 챙기거나 또는 석유로 돈을 번 경우가 많았다.
현재 러시아의 최고 갑부는 잉글랜드 명문 첼시구단 소유주이자 석유업체 ‘시브네프트’의 최대 주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로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약 147억 달러(약 13조 8000억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세계 11번째 갑부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러시아 인구의 약 15%는 아직도 극빈층에 속하고 있으며, 일반 샐러리맨의 평균월급은 평균 200달러(약 19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만장자 박람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졸부들의 잔치’라고 비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천박하게 자기 과시를 하는 것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가는 곳마다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백만장자 박람회’의 내년 스케줄은 이미 빡빡하게 잡혀 있는 상태. 내년 3월 두바이에서 열리는 ‘백만장자 박람회’ 역시 분명히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관련업체는 확신하고 있다.
또한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짭짤한 수익을 거둔 모스크바 역시 내년 10월경 이미 제3회 박람회 일정이 잡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중국의 수많은 벼락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상하이 박람회’ 역시 다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처음에는 ‘천박한 박람회’라며 냉소적이었던 미국이나 브라질 등 몇몇 나라들도 뒤늦게나마 박람회를 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런 ‘부자들의 돈잔치’는 앞으로 당분간 계속 인기를 끌 전망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