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하라 도지사 | ||
이런 잇단 스캔들이 그가 2007년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를 공표한 시점과 맞물리면서 언론의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특유의 ‘뻔뻔함’으로 대처했던 이시하라 지사도 이번만은 쉽게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
도쿄도지사 3선을 노리는 이시하라 신타로.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파 정치인으로 2003년 재선 당시 308만 표라는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승리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좌파나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네오 파시스트’라고 규정한다. 일례로 그는 2001년에는 일본에서 일어난 중국인 범죄에 대해 “민족적 DNA를 나타내는 듯한 범죄가 만연하면서 결국에는 일본사회 전체의 자질이 변화될 염려가 있다”고 주장해 마치 중국인이 흉악범죄를 일으키는 민족성을 가진 것처럼 발언했다. 또한 우익 교과서 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적극적인 찬동자이기도 하다.
이시하라 지사는 슬하에 네 아들을 두고 있는데 큰 아들인 노부테루와 셋째 아들인 히로타카는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고, 둘째인 요시즈미는 탤런트, 막내인 노부히로는 화가로 각각 활동하고 있다.
이시하라 지사는 지난 12월 7일 도의회에서 2007년 4월에 있을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공식선언했다. 호화 해외출장과 아들에게 도쿄의 문화사업을 맡겨 공사를 혼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로 여론의 비난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출마 의지를 밝힌 것이다. 평소에 이시하라 지사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던 공산당과 민주당이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공산당의 한 관계자는 “그는 재직 중 15번의 해외 출장을 갔는데 부인이 3번 동행했고 그 비용을 공금으로 부담했다. 2004년 스위스 출장 때는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의 무대 장식을 넷째 아들에게 맡겼다. 물론 해외출장이 초호화판이어서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다”며 비난했다. 민주당도 “이시하라 지사는 도정(都政)을 개인의 것처럼 생각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시하라 지사의 해외출장 내역을 보면 이들의 분노도 이해가 간다.
이시하라 지사가 1999년 4월 취임한 이후로 나간 19번의 해외출장 중 자료로 확인된 것은 15번으로, 그 경비의 합계가 2억 4300만 엔(약 18억 9540만 원)에 이른다. 미국에 갔을 때는 하룻밤에 26만 엔(약 203만 원)이나 하는 최고급 호텔에 머물고 51만 엔(약 198만 원)을 들여 3일 동안 리무진을 대여하는 등 규정에 어긋나는 거액의 출장비를 사용했다. 더구나 출장 목적의 대부분은 올림픽이나 마라톤대회 참석, 관광 등 이시하라 지사의 개인적인 관심분야에 맞춰 계획된 것이었다.
▲ 그의 ‘탈’ 많은 가족들. 왼쪽부터 부인, 장남, 차남, 당선축하금을 받은 삼남 히로타카와 막내 노부히로. | ||
설상가상일까. 화가인 막내아들을 도쿄의 문화사업에 참여시키면서 그의 국내외 출장비용을 공금으로 충당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비난이 더욱 들끓고 있다.
문제의 사업은 젊은 예술가를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이시하라 지사가 발안해 2001년부터 시작된 ‘도쿄 원더 사이트 사업’이다. 작품 발표나 교류를 위해 도쿄에 세 군데의 시설이 만들어졌는데 막내아들인 노부히로(40)가 이 사업이 시작된 당시부터 관여했다. 시설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했는가 하면,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 몇 달 동안 어드바이저로 일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시하라 지사가 “급한 와중에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없어 공짜로 부탁했다”고 해명한 내용과는 달리 노부히로(40)가 2003년 프랑스를 방문과 일본 국내 시찰, 2004년 스위스 여행 등에 쓴 186만 엔(약 1450만 원)에 이르는 여행 경비가 공금으로 지급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시하라 지사는 TV에서 자신이 아들에게 일을 맡긴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노부히로는) 내 아들이지만 훌륭한 예술가다. 교제 범위도 넓고 젊은 예술가를 많이 알고 있다. 결국 이벤트도 잘 끝났다. 도쿄를 위해서도 좋은 일”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도쿄도청에는 “공적인 일에는 친인척을 기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는 비난의 메일과 전화가 수백 건이나 쇄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들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게 되면서 이시하라 지사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2005년 9월 셋째 아들인 히로타카(42)의 중의원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미즈타니건설의 전 회장 등으로부터 2000만 엔(약 1억 56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
사건은 총선거 3일 후인 9월 14일 도쿄 긴자의 한 고급 요정에서 벌어졌다. 이곳은 히로타카의 당선을 축하하는 연회자리. 참석한 사람은 이시하라 부자와 전 중의원 의원인 이토야마 에이타로 씨와 그의 지인, 그리고 현재 거액 탈세 혐의로 재판 중인 미즈타니건설의 전 회장인 미즈타니 이사오였다. ‘당선축하 선물’을 하자는 제안을 이토야마 전 의원이 내놨다. 이에 호응해 미즈타니 전 회장과 다른 지인은 각각 500만 엔(약 3900만 원)씩 준비해 이토야마 전 의원이 준비한 1000만 엔(약 7800만 원)과 함께 술 상자에 넣어 이시하라 부자에게 건넸다고 알려져 있다. 이시하라 부자와 이토야마 전 의원은 이 사실을 전면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미즈타니 전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품을 건넨 사실을 시인한 상태다.
이번 금품수수 의혹은 지금까지의 망언과는 달리 돈이 직접 관련돼 있는 일이어서 언론과 일본 국민들의 관심과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친(親) 이시하라’를 자청하던 유명인이나 잡지까지 그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이시하라 지사도 그런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과거 무소속으로 두 번의 선거를 치른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자민당의 추천을 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는 4월에 있을 도지사 선거 결과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