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병설이 돌고 있는 아베 총리(왼쪽)와 이시하라 도지사의 꽃가루 알레르기 예방 홍보 포스터. | ||
도쿄 도지사 3선 출마를 선언한 이시하라 도지사는 지난해 호화판 해외 출장에 친인척 기용,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꼴사나운 이벤트를 벌이며 ‘표몰이’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 또 한번 도마위에 올랐다. 한때 최고 인기를 누렸던 두 사람이 이번 난관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가라앉아버릴지 일본 조야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아베 신조 총리(52)는 건강검진을 위해 게이오 대학병원에 하루 동안 입원을 했다. 검진을 마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정기검진이었으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간겐다이>는 최근호에서 총리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굳이 국회 본회의가 진행 중인 바쁜 시기에 갑자기 건강검진을 받을 리가 없다는 것. 더구나 11시 반에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 총리가 2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자 한때 기자들 사이에서는 “검진 중에 이상이 발견된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 아베 총리한테는 본래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지병이 있다. 이 병은 심한 경우 변의(便意)를 느끼기도 전에 그대로 대변이 나오기도 한다. 일각에선 아베 총리가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악화되면 복통 하혈과 함께 장에 구멍이 나는 일도 있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병은 아니라고 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 중병설은 소문에 불과할지라도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총리가 건강검진을 받은 다음날인 2월 11일에 후지TV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36.4%로 취임 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집권 자민당의 지지율도 동반 추락해 제1야당인 민주당에 근소하게 역전당한 상태다.
일본 정계 인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에는 중병설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은 아베 총리가 검진을 받은 날 기다렸다는 듯이 후쿠오카 현의 자민당 연회장을 사임했다. 기타규슈 시장선거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아베 집행부에 항의의 표시로 사임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언론들은 그가 반(反) 아베 진영에 참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라이벌이었던 아소 다로 외상(66)은 최근 의욕이 넘치는 활동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자신의 정책 구상을 담은 책을 출간하고 언론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등 차기 총리 자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출신 파벌인 ‘다무라 파’에서는 ‘내각 개조’ 논란으로 시끄럽다. “여성은 애 낳는 기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야나기사와 후생노동상을 처벌하지 않은 것이 아베 내각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파벌 안에서는 아베 총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미 내각 개조를 위한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이어지는 각료 스캔들과 지도력 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이와 더불어 중병설과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의 움직임까지, 아베 총리의 수난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도를 이끌고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74)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호화판 해외시찰 등 이른바 ‘도정(都政) 사물화(私物化)’로 비난을 받은 이시하라 도지사는 여전히 일련의 사건에 대해 해명은커녕 TV에 나가 “나에 대한 이지메”라는 한마디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중에 영합하는 거침 없는 언행으로 한때 2002년 80%에 육박하던 지지율도 최근 조사에서는 최저수치인 53%까지 떨어졌다.
<주간포스트> 최근호는 그가 도쿄 도지사 3선을 노리고 벌인 이벤트가 또다시 민심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4월 8일 선거를 앞두고 ‘역주행’만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2월 18일에 열린 ‘제1회 도쿄마라톤’. 3만여 명이 참가하여 신주쿠, 긴자, 아사쿠사 등 도쿄의 중심부를 달리는 아시아 최대 규모 마라톤 이벤트였다. 이 대회로 인해 도쿄의 도심부에서 최대 11시간에 이르는 극심한 교통정체가 야기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가 5시간 이상 완전봉쇄됐다.
이 대회를 기획한 사람은 바로 이시하라 도지사. 대회 전부터 교통체증과 시민 불편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후지TV 니혼TV <요미우리신문> 등 보수언론을 공동주최 파트너로 끌어들여 ‘이시하라표 마라톤 대회’를 선전하느라 급급했다. 공교로운 점은 마라톤 코스가 이시하라 도지사가 과거에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지역과 일치한다는 점. 처음부터 선거용이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시하라 도지사의 자기 PR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도쿄 곳곳에는 이시하라 도지사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꽃가루 알레르기 방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15개의 포스터 후보작 중에서 “나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이 운동에 앞장서고 싶다”며 자신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를 선택했다고 한다. 현직 도지사가 홍보를 위해 포스터에 ‘출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제는 포스터의 디자인과 시기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이시하라 도지사의 모습이 실린 이 포스터는 언뜻 보면 선거용 포스터로 착각할 정도다. 꽃가루 알레르기 대책 캠페인 기간과 도지사 선거 기간도 거의 겹친다. 세금으로 만든 이 포스터를 각 구청에 배포함으로써 이시하라 도지사는 결과적으로 경쟁 후보에 비해 4배나 많은 포스터를 붙일 수 있게 됐다. 이런 ‘노골적인’ 계획에 대해 도쿄의 23개 구 중 7개 구가 “선거 포스터로 오인할 소지가 있어 붙이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그중에는 “시기가 부적절하다”며 아예 포스터를 받지도 않은 곳도 있었다.
언론들은 이시하라 도지사의 이러한 행동들이 선거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필사의 몸부림이라고 보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