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새벽 다섯시에 원고마감을 했는데 정말 신나는 일이예요. 잡지 만드는 게 나하고는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열여덟평 아파트에서 베란다까지 활용하면서 여기는 편집실, 저기는 집필실로 쓰면서 놀이같이 일을 합니다.”
그는 목사치고 특이한 성격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부정을 참지 못하고 주민회의에 가서 주먹다툼까지 했다. 입주민 회장이 공사업자로부터 뒷돈을 받아먹는 사실을 쓴
잡지를 아파트 우편함에 넣고 다니다가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일을 경찰과 검찰은 왜 조사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 때 뒷돈을 받는 관리소장이나 관리단 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라니까요. 그 돈 때문에 부실공사가 되고 사람이 떨어져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몰라. 그런 걸 그걸 형사나 검사한테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자기네는 고소된 명예훼손만 조사하면 되지 그럴 의무가 없다나?”
그의 눈에서 무서운 빛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특이했다. 가운데 홍체의 경계가 없어지고 온통 검은 먹물 같았다. 광신자나 무당에게서 더러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보곤 했다. 국민들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와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내가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해주었다.
“변호사 생활 삼십년을 해보면서 일부 예외는 있지만 형사나 검사들이 사회의 구조적인 부패에 분노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아니 오히려 범죄의 시궁창 속에서 사는 그들한테 오히려 시궁창 냄새가 배인 것 같이 느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법이 뭐 이래요?하고 물을 때면 할 말이 없고 앞이 깜깜한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짙은 어둠 속에서는 반딧불이 같이 작은 불 하나만 있어도 되듯이 어둠은 결코 작은 불빛 하나도 없앨 수 없어요. 그게 빛의 특징인 겁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정의를 위해 투쟁하면 그게 빛이 되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성격이 불뚝대고 덤비고 거친 성격이었어요. 타고난 성질은 어쩔 수 없어요. 교단의 썩은 목사들과 싸우고 이번 아파트 입주자 회장과 싸운 것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운명이죠. 글을 쓸 때도 실명을 그대로 냅니다. 직격탄이죠. 그게 가장 힘을 발휘하죠. 그래서 고소를 당한 거 아닙니까? 저는 언제든지 감옥에 가도 됩니다. 감옥생활이 벌금 낼 때 보면 하루에 십만원 쳐주는 일자린데 나이먹은 저에게 그런 좋은 일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감옥 한번 들어가 보는 건 나의 드림이기도 해요.”
살자니 문제지 그처럼 죽겠다고 각오하고 달려들면 세상에 겁나는 게 없는 법이다. 가운을 입고 강대상 위에서 수천명 수만명에게 입에 발린 설교만 하는 목사보다 행동하는 그의 한마디에 진리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변호사나 저나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우리는 항상 어린애 같이 정직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논문표절문제로 여배우 김혜수와 개그우먼 김미화가 걸려든 걸 봤어요. 제가 뭐라고 변명을 하나 봤죠. 여배우 김혜수는 겸연쩍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뭘 알겠습니까?’라면서 자신의 무식을 솔직히 드러냈어요. 그렇게 솔직하니까 단번에 용서를 받아요. 그런데 개그우먼 김미화는 평소에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면서 정치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똑똑한 체 했어요. 김미화는 자기 논문이 표절이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듣기로 김미화는 요즈음 방송에서 초청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런 게 다 우리 사회의 정직과 관련이 있어요. 신학대학을 다닐 때 제가 운동권 학생의 대표 비슷한 걸 했어요. 하루는 교수님이 나를 불러서 자네 주위에 술 담배를 하는 학생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따지시는 겁니다. 제 주위에는 그런 신학생이 없다고 했죠. 그랬더니 교수님이 ‘자네는 어떤가?’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만 합니다’라고 대답했었죠. 인생을 살다 보니까 그래도 정직이 최고인 것 같아요.”
그는 어두운 사회의 수면위에 비치는 영롱한 반딧불이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이 짙어 질수록 더 투명하고 맑은 파란빛을 뿜어내며 주위를 밝히는 반딧불. 그런 존재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