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친인척 이름까지 거론된 한상률 국세청장 파문으로 인해 MB 정권 지지층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
한상률 국세청장의 그림 상납 의혹과 대구골프 사건은 역대 정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 권력형 비리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 있는 동시에, 현 정권에는 뼈아픈 사건이 될 수 있다. 한 청장의 낙마는 일개 권력기관장의 중도하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안고 있는 내부적 결함요소를 그대로 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림로비’는 비록 참여정부 시절에 벌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 1년도 되지 않아 고위공직자가 불명예 퇴진한다는 점에서 고위층의 도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루됐다는 점은 대통령 주변에서 리더십 누수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 초기에 논란이 됐던 ‘강부자 고소영 인사’ 논란은 정권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수 있는 비리가 아니라 그냥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 기분 나쁜 정도의 감정적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한상률 국세청장 논란은 그 성격이 다르다.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경제 위기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대를 서서히 버리고 있는 민심이 급격하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큰 악성 종양과 같은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민심이 급격하게 돌아선 사건들을 보라. 전부 대통령 친인척과 최측근에 관련된 비리 때문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아들들의 비리 때문에 지도력을 빠르게 상실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386 측근들의 비리가 터지면서 힘이 빠져갔다. 그런데 앞선 대통령들은 모두 정권 말기에 친인척 비리가 더 커졌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 1년 만에 최악의 친인척 비리가 터져버린 형국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이번 사건을 잘 보라. 국세청장이 그림을 이용해 로비를 한 의혹이나, 자신의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과 그 형의 측근들을 만나러 부랴부랴 골프 모임을 가진 것 등을 보면 권력형 비리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보고 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 여론조사기관의 전문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민심이 극단적으로 이탈할 조짐을 보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던 마지막 지지층들이 이번 사건을 보고 완전히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국정의 추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더욱 지도력이 약화될 것이다. 현 정권은 올해 초 발생한 한 청장 논란 때문에 국정 전반기를 흐지부지 보낼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진다면 이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과 지도력 상실에 이은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만사형통’ 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한 청장 사건과 유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청장 사건은 171석의 거대 공룡 여당의 현 주소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상득 의원 주변과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까지 개입된 이번 사건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 ‘자기비판’을 제기하는 의원은 거의 없다. 모두 다 눈치만 볼 뿐 직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한 청장 사건이 아직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정권 초기부터 ‘만사형통’ 논란이 그렇게 지속돼왔는데도 청와대가 그 어떤 해결 의지도 보여주지 못해 결국 이 같은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이다. 이상득 의원에게 집중되다시피 한 현 여권의 권력 구도가 바뀌지 않는 한 언젠가는 권력에 ‘동맥경화’가 걸려 터져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한 청장과 관련된 공식 논평을 단 한 건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당의 입장을 내놓는 것은 순서가 아니다”(조윤선 대변인)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당 주변에선 한나라당이 침묵 속에서 이명박 정권의 제1호 초대형 비리 태풍의 눈 속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는 탄식이 적지 않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