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위에서부터) 박희태 대표, 정동영 전 장관, 이재오 전 의원, 김근태 전 의장 | ||
특히 4월 재·보선이 예상대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미니 총선’ 분위기로 변하면서 여야가 거물급 전략공천 등 사활을 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여야의 필승 전략과 맞물려 수도권에서 거물급이 맞붙는 ‘빅 이벤트’가 연출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영호남 재·보선 지역은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마저 일고 있어 적전분열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야 간 피 말리는 대혈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4월 재·보선 전쟁 속으로 들어가 봤다.
1월 21일 현재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은 한나라당 구본철(인천 부평을)·민주당 김세웅(전북 전주 덕진)·무소속 이무영(전북 전주 완산갑)·무소속 김일윤(경북 경주)·창조한국당 이한정(비례대표) 등 모두 5명이다.
1, 2심의 유죄 판결로 향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이 상실되는 의원은 한나라당 윤두환 안형환 박종희 홍장표 의원, 민주당 비례대표 정국교 의원, 친박연대 비례대표 서청원 양정례 김노식 의원,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 무소속 최욱철 의원 등 10명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허범도 의원(경남 양산)은 회계책임자 김 아무개 씨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고, 단국대 이전 사업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민주당 김종률 의원(충북 진천·괴산·음성)도 금배지를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3월 31일까지 의원직 상실형(금고 및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될 경우 비례대표를 제외한 의원들의 지역구는 4월 재·보선에 포함된다.
의원직 상실자들의 수가 예상을 넘어설 것으로 보임에 따라 4월 재·보선이 ‘미니 총선’ 분위기를 띠게 되자 여야는 선거체제 정비 작업에 돌입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앞세워 수도권과 호남권을 싹쓸이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재·보선 판이 커질 경우 이명박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 있다는 점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선거전문가들은 영·호남의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아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이번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월 이전에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경우 재·보선이 치러질 수도권 지역구는 인천 부평을(확정)을 포함해 서울 금천(안형환)·서울 은평을(문국현), 수원 장안(박종희), 경기 안산 상록을(홍장표) 등 최대 5곳이나 된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승리할 수 있는 더없는 호기라며 거물급 인사들의 전략 공천도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도 거물 간 맞대결을 펼치더라도 수도권은 사수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4월 재·보선이 서바이벌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여야의 필승 전략과 맞물려 거물급들의 실제 출마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거물급 출마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박희태 대표를 비롯해 강재섭 전 대표, 이재오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고 민주당에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손학규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박 대표는 재선거가 확정된 인천 부평을과 경북 양산을 놓고 저울질하다 최근 수도권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부평을 출마론에는 ‘집권당 대표’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수도권에서부터 재·보선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원직 유지에 ‘적신호’가 켜진 수도권 출신 의원들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강재섭 전 대표, 이재오 전 의원,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등 또 다른 거물급의 출마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수도권 사수’라는 절박한 과제를 떠안게 된 만큼 거물들이 총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강 전 대표와 김 특보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각각 수원 장안과 서울 금천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3월 귀국설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는 이 전 의원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형이 확정될 경우 서울 은평을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당도 ‘수도권 탈환’을 위해 거물급 전략공천 등 사활을 건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야인생활을 하면서 정계복귀를 노리고 있는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야권 내 유력한 차기 주자라는 점에서 침체된 정치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최고의 ‘흥행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체류 중인 정 전 장관은 수도권 내지는 전주 덕진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재·보선 출마설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출마 쪽에 무게 중심을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이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힐 경우 민주당 텃밭에서 ‘무혈입성’하는 것보다 ‘수도권 탈환’ 필승 전략에 부응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당 일각에서는 재선거가 확정된 부평을에 박희태 대표나 한나라당 거물급이 출마할 경우 그 대항마로 정 전 장관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문국현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하고 이재오 전 의원이 은평을 출마를 강행할 경우 이 지역에 정 전 장관을 전략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직 4월 재·보선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정동영 vs 박희태 또는 이재오 맞대결’이 연출될 경우 그 지역은 4월 재·보선 최대 흥행카드이자 ‘빅 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춘천의 한 농가에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끊고 칩거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손 전 대표는 4월 재·보선 출마설과 관련해 불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손 전 대표의 불출마 의지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선 수도권 재·보선 지역이 늘어나고 한나라당이 거물급을 대거 공천할 경우 손 전 대표를 수도권에 전략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두 사람 외에도 중량급 인사들에 대한 전략 공천설이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에 거물급을 대거 출마시킬 경우에 대비한 이른바 ‘맞춤형 공천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김근태 전 의장을 비롯해 강금실 전 법무장관, 18대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공천 특검’이란 별칭을 얻었던 박재승 변호사 등이 맞춤형 공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호남 지역 재·보선은 ‘당 대 당’ 대결구도보다 내부 공천 문제로 치열한 계파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재선거가 확정된 경북 경주를 비롯해 재·보선 가능성이 있는 경남 양산과 울산 북구 지역을 놓고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계와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계 간에 치열한 공천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경북 경주는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육군 대장 출신 정수성 씨가 출마 의사를 밝힌 가운데 친이계 핵심인 정종복 전 의원도 공천을 노리고 있다. 정 씨는 한나라당 공천이 무산될 경우 무소속 출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천을 둘러싼 계파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희태 대표의 또 다른 출마 예상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경남 양산은 박 대표의 선택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가 수도권 출마를 결심할 경우 친이계 핵심인 이방호 전 사무총장의 전략공천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울산 북구도 재선거가 확정될 경우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두 곳에서 재선거가 실시되는 전북지역은 그야말로 피 말리는 공천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이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라는 점에 미뤄 본선보다 치열한 공천 ‘빅 매치’를 예고하고 있다. 전주 완산갑에는 4선인 장영달 전 의원을 비롯해 최근 민주당에 복당한 동교동계 한광옥 전 대표, 정균환 전 최고위원, 신건 전 국정원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 등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전주 덕진의 경우 정동영 전 장관의 측근인 채수찬 전 의원과 유재만 전 서울지검특수1부장, 정세균 대표와 가까운 한명규 전 전북 정무부지사 등이 공천 전쟁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주지역 재선거 공천은 오랫동안 호남권 맹주로 군림했던 동교동계와 호남권 신흥맹주를 자임하고 있는 정동영계, 정세균계 등의 파워게임과 맞물려 대혈투를 방불케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재선거 공천과 관련해 ‘DJ-정세균 밀월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정세균 대표가 최근 비밀 회동을 갖고 전주 재선거 지역 두 곳에 대한 ‘교통정리’를 했다는 게 밀월설의 골자다. 이와 관련, 1월 20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DJ와 정 대표가 1월 12일 DJ의 동교동 자택에서 비밀 회동을 갖고 재·보선 공천 문제 등을 조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동 이틀 후인 14일 한광옥 전 대표가 전격 복당된 것도 두 사람의 공천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DJ와 정 대표가 의중에 두고 있는 공천 후보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DJ와 정 대표 모두 자신들의 측근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겠느냐”며 동교동계와 정세균계의 나눠먹기 공천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실은 정 대표의 동교동 방문 사실을 부인했다. 민주당 대표실 관계자는 1월 2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정 대표가 최근에 공식적으로 동교동을 방문한 적이 없다”면서도 “비공식적인 방문은 비서실에서도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DJ와 정 대표의 밀월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한광옥 전 대표가 전격 복당한 배경과 맞물려 두 사람의 비밀회동 의혹을 둘러싼 궁금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전주지역 재선거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DJ-정세균 밀월설’과 맞물려 호남권 패권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