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데모대를 취재하고 회사에 돌아가던 중이야. 카빈총을 든 경찰관 한명이 길 건너 어딘가를 조준하고 있는 거야. 눈으로 조준하고 있는 곳을 봤지. 길에서 자주 봤던 구두닦이 애였어. 순간 총소리가 나더니 그 아이가 개구리 같이 펄쩍 뛰더니 땅에 넘어지는 거야.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는데 나는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겠는 거야. 골목길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어. 나는 비겁한 사진기자였지.”
아버지의 소주잔에는 눈물이 반이었다. 이상하게 아버지의 그 말은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 평생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읽었다. 표지에는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인쇄되어 있었다. 광주의 진상을 기록으로 남겨두겠다는 강한 작가적 집념이 들여다보였다.
그중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한 장면이 있었다. 광주에서의 사건의 시작은 다른 남쪽의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전두환의 군부는 초반에 기를 죽여 제압하려는 방침인 것 같았다. 공수부대의 몽둥이질과 군화발이 오히려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피를 본 광주 시민들의 눈에서 증오의 퍼런 불꽃이 일으키며 들고 일어섰다. 공수부대의 총구에서 불이 터졌다. 격분한 시민들이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했다. 시위단계를 넘어 그건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식당종업원, 재단사, 노동자, 재수생등 억눌렸던 마음들이 앞장서 총을 들었다. 11공수여단 병력이 광주 YWCA건물 앞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건물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공수부대와 시민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공수부대원이 건물 쪽을 향해 유탄발사기를 쏘면서 건물 안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시민군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했다. 그러나 건물 2층 모서리에서 유유히 총을 겨누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구두닦이를 하던 박용준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는 천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 죽겠다고 했다.
“형 총 쏘지 말고 도망가”
같이 있던 사람이 그를 보고 소리쳤다. 유리창에 기대어 총을 겨누고 있던 그가 얼굴을 돌려 씨익 웃어 보였다. 순간 ‘퍽’하는 총소리가 나고 그의 몸이 수그려졌다. 그가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그곳에 들이닥친 공수부대원이 그의 양발을 잡고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시신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YWCA의 계단을 홍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 구두닦이청년이 죽음을 피하지 않으면서 추구하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불쌍한 사람이 천대받지 않는 세상이었다. 진정한 자유민주사회라면 그래야 할 것이다. 집단이 아닌 한 사람 한사람의 시민이 존중을 받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1980년5월 서울의 섬뜩한 거리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공수부대원들을 가득 태운 트럭들이 시간마다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박달나무로 만든 긴 몽둥이를 옆에 차고 어깨에 맨 M-16의 끝에 대검을 꽂은 공수부대원들이 독이 오른 얼굴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섬뜩한 칼날이 거리의 불빛에 번쩍였다. 검은 안개 같은 강한 살기가 거리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겁먹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못 본 듯 외면한 채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권력측은 광주에서 총을 잡은 사람들을 폭도라고 했다. 간첩도 북한군도 섞여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책 속에서 작가는 그게 절대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혼란의 도시 속의 시민군 지휘부에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지도자가 보였다. 탱크를 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망을 치고 숨었다. 책 속에서 의외의 인물을 보았다. 이종기변호사였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군이 들어온 마지막까지 시민군 본부인 도청에 있었다. 그의 아들은 시민군이 되어 계엄군의 진입로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죽음을 각오했는지도 모른다. 외신기자들은 죽음을 무릎 쓰고 현장을 기록하고 촬영을 했다. 작가는 후일 현장의 단편들을 조각조각 글로 이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페이지 마다 화약 냄새가 피어오르고 피가 튀고 있었다. 죽은 구두닦이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변호사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