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은 여야 입법전쟁을 치르며 배후에서 강공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야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 ||
“이명박이가 내 말을 들을 × 같으냐. 이명박이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은 18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3월 24일 자신의 공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기자들에게 파격적인 언사를 해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당시 포항의 한 지역기자는 “이 의원은 정무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다. ‘이명박이’ 발언은 말실수일 수도 있지만 평소의 그답지 않은 파격적 언행을 통해 수세에 몰렸던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지렛대로 이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정적들로부터 무작정 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대통령 하대(상대를 낮게 대우함)를 통해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2009년 2월 27일. 이상득 의원은 또 다시 ‘이명박이’를 언급했다. 그는 이날 ‘전시납북자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입법전쟁의 여권 강공 배경이 이명박 대통령의 주문을 이 의원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한 기자의 지적에 대해 “내가 이명박이 뭐… 뭐… 시키는 대로 하는 ‘똘마니’냐. 어떻게 그렇게 얘기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소장파의 한 인사는 “취임한 지 1년이 넘은 현직 대통령의 호칭을 아무리 ‘형님’이지만 아직까지 ‘이명박이’라고 낮게 표현한 것이나, ‘똘마니’(국어사전에서는 ‘범죄 집단 따위의 조직에서 부림을 당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라는 비속어를 언론에 대놓고 얘기하는 것만 봐도 왜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알 것 같지 않은가. 6선이자 칠순이 넘은 당의 어른이라고 말로만 할 뿐이지 실제 행동은 그와 다른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왜 이 의원은 최근 자신에게 쏟아지는 ‘만사형결’ 비판에 대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발톱’이 숨어 있다. 먼저 향후 여권에서 제기될 ‘입법전쟁 책임론’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이상득 의원은 이번 입법전쟁을 거치면서 여야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한나라당 문방위 소속 한 의원도 이상득 의원이 이번 입법전쟁을 강공 위주로 주도한 것을 두고 “형님의 발언 한마디로 여야관계가 극단적인 대치국면으로 빠져들었다. 형님의 비공식 권력 행사는 선출된 당 지도부를 무력화하고, 의회정치 시스템에도 큰 부담을 준다”라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이번 입법전쟁의 파행을 유발시킨 장본인을 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이상득 의원을 지목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에게 큰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그 부담은 향후 여권에서 제기될 입법전쟁 책임론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사실 한나라당은 이번 입법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갈리더라도 ‘남는 장사’를 했다고 볼 수 없다. 먼저 여권이 이 의원의 의중대로 민주당을 ‘깔아뭉개고’ 미디어법을 포함한 모든 쟁점법안을 김형오 국회의장의 ‘지원’ 아래 전격 통과시킬 경우, 이명박 정권은 4년 내내 민주당의 비타협적 발목잡기에 놀아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손실을 크게 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그렇지 않고 미디어법을 일부 수정(대기업이 방송사 지분을 20%에서 10% 정도로 낮추는 것)해 통과시키는 것은 현재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방송 환경 개혁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입법전쟁에서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헛힘’만 썼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의 대대적인 저항에 밀려 이번 2월 정기국회에서 미디어법을 아예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다시는 법안 통과의 기회를 만들 수 없다(노무현 정권 때 국가보안법 철폐 시도 실패와 유사한 상황)는 점에서 여권은 또다시 그 책임론을 놓고 내홍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2월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미디어법을 일괄 상정하는 순간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고 위원장의 멱살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 ||
특히 최근 소장파에서는 ‘정풍운동’이라는 말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여권은 중병을 앓고 있다. 이상득 1인 독주의 왜곡된 당 운영과 이에 따른 야당과의 정치 파행 등이 이명박 대통령의 개혁 과제 수행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에 빠져 있다. 이런 병의 근본적 치료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당 원로들이 청와대 말을 앞세워 강공책을 펴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 최근 세미나 등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정풍운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말들이 자주 오고간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 쇄신차원에서라도 언젠가는 한 번은 꼭 제기해야 할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이 최근 ‘이명박이’ 발언을 한 것은 호시탐탐 그의 ‘낙마’를 노리는 소장파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최근 입법전쟁 강공의 배후에 자신이 여야 모두로부터 지목되자 그 배경에 소장파의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언론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는 이 의원이 작심하고 그 날 소장파에게 공개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 의원은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지금 저(민주당)쪽에서 마치 우리를 무기력증에 걸린 것처럼 만들려는데 되든 안 되든 (법안을) 밀어붙여야 한다. 이번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던 자신의 말이 언론에 알려지자 적잖이 당황해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회의에 참석했던 당의 한 인사가 언론에 공개해 알려지게 됐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해 “(언론이) 비공개로 (얘기)한 걸 갖다 이리저리 짜깁기했다. 내 얘기만 그렇게 (부각시켜 보도)한 건 조금 심했다”라고 수차례 불만을 표출했다. 겉으로는 언론 보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발언을 공개한 인사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의 권력 구도상 이번 법안전쟁에서 이상득 의원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강공책을 밀어붙였다는 상황논리도 나온다. 당 사무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상득 의원이 이번에 당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당 지도부를 믿고 맡겼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사실을 청와대와 교감한 것 같다. 박희태 대표는 원외라는 한계에다가 재·보선 준비 때문에 이번 법안전쟁에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포퓰리즘 신봉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여론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의장 임기가 끝난 뒤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라도 무리한 직권상정을 꺼리고 있다. 이런 어려운 주변 상황 때문에 보다 못한 이상득 의원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직접 법안전쟁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장파와 당내 친이세력 일각에서조차 “이번에는 좀 심했다”라며 법안전쟁 뒤에 의사결정 구조의 왜곡과 1인 위주의 밀실정치를 분명히 문제 삼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당의 공식적인 기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폐해는 심각하다. 핵심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몇몇이 정무를 주무를 경우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연동되는 경우가 많고 여론정치와도 따로 노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정치학과 교수는 “‘상왕정치’로 일관해 법안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나라당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했던 유정회(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전국구 국회의원들이 구성한 원내교섭단체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친위대 역할을 해 비판이 많았다) 모습이 자꾸 오버랩돼 역사의 추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