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이 지난달 베이징대에서 한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동북아 평화번영공동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위기 때마다 발휘되는 이 전 최고위원 특유의 ‘뚝심’이 이번 정계복귀에도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이 전 최고위원 주변에서는 그가 일단 ‘조용히’ 귀국하겠지만, 그의 ‘투쟁적’ 성향으로 볼 때 특단의 히든카드로 실추된 정치적 위상을 일거에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돌아온 장고’ 이 전 최고위원 손에는 과연 어떤 ‘히든카드’가 숨어있을지 따라가 봤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과연 죽었는가, 아니면 살아 있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오는 3월 말 귀국하는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는 귀환하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늠해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배어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적 ‘사망 여부’는 그의 귀국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를 알게 해주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주로 친 이재오 계파에서는 “그가 비록 정치권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나 당내의 입지 등을 감안할 때 예전의 파워를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정치적 파워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 이재오 계파에서는 “지난해에는 여권의 권력 구도가 자리를 잡지 못해 분열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상득 의원 중심으로 확실하게 재편됐기 때문에 이제 그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라고 본다. ‘이재오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말이 옳을까.
사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정치적 파워에 대한 ‘사망’ 여부는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와 얼기설기 엮인 계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는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권 주류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오 전 최고가 돌아와 봐야 무슨 힘이 있나. 다 끝난 것 아닌가. 당내에 이재오 계파라고 해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힘이 떨어진 상황인데 왜 자꾸 그의 귀국이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계속, 아마 이번 정권이 끝날 때까지도 그는 ‘대통령 형님’의 손아귀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이 전 최고위원을 깎아내렸다. 이런 분위기는 이상득 의원 체제 아래에서 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희태 대표 측근이나 그와 오래 전 척을 졌던 소장파, 그리고 그의 복귀를 전혀 바라지 않는 친박그룹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렇다면 이 전 최고위원은 어떤 ‘히든카드’로 반대파들을 잠재우며 화려하게 재기하려 할까. 먼저 이 전 최고위원이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뉴 이재오 플랜’이다. 여기에는 강한 이미지의 외모와 너무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자신의 정치적 콘텐츠도 모두 바꾸는 대대적인 ‘체인지 플랜’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던 것을 중단하고 흰 숱의 머리카락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예전의 딱딱한 모습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앞서의 관계자는 “본인이 외모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외국에서 외모를 꾸밀 필요도 없어 염색을 중단했는데 머리숱도 늘어나는 등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 귀국 후에도 한동안은 염색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머리 스타일이 늘 세간의 관심 대상이었듯이, 이 전 최고위원도 자신의 머리색깔 변화를 통해 ‘부드럽고 조용한 이재오’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셈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외모와 함께 자신의 정치적 콘텐츠도 당 내부의 전략통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시각과 통일 대북관계 등 거시적 주제들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그는 미국에서 ‘동북아 평화번영 공동체’ 방안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또한 최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겠다”라며 대북특사의 꿈도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본다. 먼저 미국에서 귀국한 뒤 그에게 주어진 일정한 롤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방학 동안 숙제거리’를 미리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정계복귀가 계속 여의치 않을 경우 ‘연구소’ 등을 설립해 동북아, 대북 문제 등 비교적 정치권의 논란이 적은 주제를 가지고 천천히 ‘여의도’로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재적 주자로서 대북분야는 필수 체험 코스라는 점에서 그의 대북특사 희망은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귀국하더라도 국익을 우선시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대북특사 문제에 접근할 경우 친박그룹에서도 딴죽을 놓기가 쉽지 않는 점도 이점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손에 숨겨 논 두 번째 히든카드는 한나라당 내부의 단단한 바닥 지지층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사실 여의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조직 전문가’다. 그는 지난 2006년 7월 11일에 실시된 전당대회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3368표를 기록, 강 전 대표의 4299표에 뒤져 결국 대표 자리를 놓쳤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박근혜 전 대표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던 대의원들을 ‘단기필마’로 다수 확보해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결국 이때 이 전 최고위원이 새롭게 확보했던 대의원들이 1년 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오롯이 갔다는 점에서 그의 조직 동원력은 ‘보스’에게도 인정을 받은 셈이다.
현재 이 전 최고위원에게는 그가 지난 2006년부터 인연을 맺어 온 당내의 열혈 지지층이 확보돼 있다. 이들은 당의 밑바닥에서부터 긍정적 여론을 전파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전 최고위원이 복귀한 뒤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그동안 와해되다시피 한 자신의 지지층 복원에 나설 경우 이러한 지지 세력의 결속력이 향후 큰 힘이 될 것으로 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밑바닥 훑기와 함께 ‘공중전’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복귀 뒤 활동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곳이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다. 지난 1월 발족한 이 협의회는 앞으로 친이-친박 전선의 가장 앞부분에서 사사건건 부딪칠 핵폭탄이다. 특히 당협위원장 선출과 관련, 17개 지역구에서 복당한 친박계 현역 의원과 친이계 원외위원장 사이에 사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에선 90여 명의 원외 당협위원장 가운데 70여 명 정도가 친 이재오 계열인 것으로 보고 있다. 유사시 이들이 실질적인 이 전 최고위원의 ‘친위조직’이 될 것이다.
친박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 전 최고위원의 핵심 측근인 공성진 최고위원이 ‘보스’(이 전 최고)에게 직접 오더를 받고 당협위원회 모임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임 당원을 확보하라. 긴요하게 쓰일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전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미 3년 전에 전당대회를 뛰면서 대의원과 책임당원의 힘을 확인한 이 전 최고위원이 그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당협위원장들의 모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국내 복귀 구상에는 이미 ‘포스트 박희태’ 체제를 그려놓고 본격적인 ‘전투’에 대비, 세력을 확장하는 카드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들고 있는 마지막 히든카드는 사실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만 주는 확실한 신임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신임장’을 확실하게 손에 쥐었다고 판단하지 않을 경우 그는 정계복귀를 꿈도 꿀 수 없다. 이는 권력 생리다. 지난해 한 번 역린을 했던 정두언 의원이 오랫동안 침체해 있는 것도 이 대통령의 ‘해금’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란 게 정설이다. 이는 이상득 의원을 치려고 하는 과정에서 잠재적으로 이 대통령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 전 최고위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의 ‘역린’은 정 의원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정 의원은 어찌 보면 순진하게 모든 걸 던지며 충언을 하다가 완전히 녹아웃되어 재기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경우다. 반면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55인 회동 파동 과정에서 막판 이상득 의원의 설득을 받고 슬며시 발을 빼버려 ‘주군’의 결정적 외면만은 막을 수 있었다는 해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