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2일부터 발매된 <더 코머너(The Commoner)>는 이미 출간 전부터 많은 신문에서 프리뷰를 싣는 등 큰 화제가 됐다. 유명 인터넷 쇼핑몰인 ‘아마존닷컴’의 집계에 따르면 발매 3주 만에 픽션·역사부문에서 10위, 문학부문에서 15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인 존 번햄 슈워츠(42)는 ‘미국 문단의 귀공자’라는 별명을 지닌 매우 유명한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2007년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영화 <리저베이션 로드(Reservation Road)>도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 마사코 왕세자비와 딸 아이코 공주. 외무성 출신의 엘리트인 왕세자비는 왕실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로이터/뉴시스 | ||
이 부분만 봐도 아버지의 직업인 제분업이 양조업으로 바뀌었을 뿐, 미치코 왕후가 당시 왕세자였던 현 아키히토 일왕과 테니스 대회에서 만났다는 등의 세부적인 부분은 모두 일치한다.
이렇게 하룻밤에 평민에서 왕족으로 신분이 바뀐 하루코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가혹한 것이었다. 냉정하고 의심이 많은 왕후(시어머니)와 하루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궁중의 시종들, 왕족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그녀는 왕세자비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후 이제는 왕후가 된 하루코가 외무성 출신의 엘리트인 게이코를 자신의 며느리로 맞게 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누가 봐도 미치코 왕후와 마사코 왕세자비의 이야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임신을 한 게이코 왕세자비가 시어머니인 하루코 왕후에게 “뱃속의 아이가 여자아이였으면 좋겠다고 가끔 빌 때가 있어요. 만일 그렇게 되면 그들은 나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궁중에서) 쫓아낼 테니까요”라고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장차 왕실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낳아야 하는 왕세자비로서의 책임감과 답답한 왕실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를 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 미치코 왕후(왼쪽), 사야코 공주. | ||
너무 리얼한 이 소설에 대해 일본 왕실의 궁내청은 “그런 소설이 출판된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다”며 ‘픽션 소설’에 대해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궁내청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 일본의 언론은 “궁내청이 이 소설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것은 문제다. 최근 들어 일본 왕실이 해외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 중에는 화제성을 위해 잘못된 내용이 보도되는 일도 적지 않다. 이번 소설뿐 아니라 해외 언론이 어떤 시각으로 일본 왕실을 바라보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도 궁내청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