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핵심부로부터 입수한 이 리스트들은 여의도 정치권과 검찰, 청와대 등에서도 이미 ‘회람’이 끝난 것이라고 한다. 먼저 박연차 게이트 정국 초반에 가장 일찍 나온 리스트를 보자. 이것은 거의 박연차 리스트의 초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박연차 리스트에 연루된 인사가 70명 정도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있었으나 확인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박연차 리스트 초본이 결과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이미 여야 연루 인사들의 사법처리 또는 검찰 소환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리스트에 오른 민주당 S 의원은 이미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고 L 의원은 구속 기소된 상태다. 또한 최근 검찰에 소환된 전직 국회의장 두 명의 이름도 들어 있다.
그리고 검찰에 의해 무혐의 결론이 났던, 친박그룹의 일원인 K 의원 이름도 담겨 있다. 특히 여기에는 여권 핵심 인사 가운데 C 씨의 이름이 유일하게 올라 있다. 당시에는 C 씨의 ‘역할’이 그리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C 씨는 이미 사건 초반부터 박연차 게이트의 유력한 여권 핵심 인사로 ‘찍혀’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박연차 게이트 정국 초반에 등장한 이 첫 번째 리스트에는 야권 인사들이 집중적으로 거명돼 있다. 검찰의 초기 수사도 야권 인사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상기하면 리스트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초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쪽으로 모아지기 시작한 ‘중반기’를 즈음해서는 노 전 대통령의 이름도 두 번째 리스트에 등장하고 있다.
이들도 향후 수사선상에 다시 오를지 관심을 모은다. 그리고 법조계에서는 노무현 정권 때 잘나갔던 P 전 지검장을 비롯해 6~7명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전 사정기관 수장이었던 H 씨와 L 씨의 이름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또 다른 리스트들에는 민주당과 관련이 있는 전·현직 의원들이 대거 거명돼 있다.
정치권에선 “검찰이 당초 그들에 대한 대대적 사정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예상치 않은 자복에 따라 그 계획이 헝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본지가 입수한 리스트에 거명된 인사들이 대부분 야당과 관련된 정치인들이라는 점을 두고 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검찰의 편파적인 기획수사라는 설에 더욱 신빙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리스트’에 여권 관계자들의 이름이 누락됐다는 일부 의혹이 사실이라면 한상률 리스트도 앞서의 리스트와 대동소이할 가능성도 있다.또한 앞서 언급된 야권 정치인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사법처리됐거나 검찰 소환을 받았다는 점에서 본지가 입수한 여권 핵심부의 리스트는 공교롭게도 높은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계속 여권 핵심 인사들이 포함된 ‘정본 박연차 리스트’가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박연차 게이트를 지난해부터 치밀하게 조사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자신의 향후 입지를 대비해 보관해놓은, 여권 핵심 인사가 모두 포함된 ‘정본 한상률 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