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찬 전 총리는 여의도를 떠나서도 날선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가장 ‘촉망’받는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고건 전 총리는 요즘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활동하고 있다.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각종 환경 관련 운동에 열심이다. 지난 2007년 초 대선을 무려 1년 가까이 남겨둔 상황에서 고건 전 총리가 갑작스레 불출마 선언을 했을 때 그의 측근들과 지지자들은 적극 만류했었다.
그의 주변에선 언젠가 고 전 총리가 국회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바람을 가지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정계은퇴를 선언한 정치인들의 정치복귀가 흔한 요즈음, 고건 전 총리는 여전히 ‘여의도’와는 거리를 두며 자신의 소신에 따른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기후변화센터의 이사장직을 맡게 된 계기는 정치권을 떠난 뒤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과 만남을 가지면서부터라고 한다. 고 전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평생 공직에 몸담았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봉사는 계속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사회 각계의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김진선 강원 도지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하는 업무 협약을 맺었다. 또 지난 7일에 열린 세계미래포럼 창립리셉션에도 고건 전 총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과 고 전 총리의 기후변화 대응운동이 맞물려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채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8년 4월 설립한 재단법인 ‘광장’은 이 전 총리가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단체.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간행물을 펴내며 정치·사회·경제 이슈에 관한 토론회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비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 반해 이해찬 전 총리는 날선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총리 시절에도 ‘소신 발언’을 여러 차례 해서 주변과 각을 세웠던 그다. 그가 몸담고 있는 광장에서는 특히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한반도 신냉전시대 극복을 위한 과제와 전망’ ‘예고된 실패 :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1년 평가’ ‘747붕괴: 경제위기와 실업대란’ 등이 올해 들어 내놓은 분석자료 목록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해찬 전 총리의 ‘전문분야’인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도 들어있다. 이 자료는 “경쟁과 자율성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교육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교육 서비스 시장을 자율화·효율화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다양화하면 한국 사회의 모든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왜곡된 신념을 맹신한 결과 교육의 시장화와 경쟁지상주의의 만연이라는 총체적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경제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2008년도 교육비는 8.0%, 사교육비는 17%나 폭등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로 인해 이른바 ‘노무현 사단’이 위축된 상황이지만 이 전 총리의 이명박 정부 비판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등 이해찬 전 총리와 함께 ‘친노 3인방’으로 불린 두 사람은 강연활동 등을 제외하면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북대학교 강단(인문사회)에 서는 유시민 전 장관은 올 봄 헌법 에세이집 <후불제 민주주의>를 내는 등 강연과 집필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당시 봉하마을을 찾아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전 총리는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긴 하지만 당내 활동보다는 외부 강연이나 사회활동에 더 치중하는 모습이다. 지난 4·29 재보선 때는 당 지도부로부터 출마를 요청받았지만 ‘고사’하고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유세하며 역시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나선 바 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던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지역구였던 경남 남해에 머물면서 지역 정가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방자치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 등 참여정부 이전부터 해오던 일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도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전했다.
김 전 장관은 간간이 대학이나 지역 언론사 초청 강연회에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적’ 발언도 내놓고 있다. 얼마 전엔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한 강연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 15일 경상대에서 가진 특강에서 그는 “참여정부 때 장관 등으로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최근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언급해 ‘친노 인사’로서의 소회를 전했다. 김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 단죄하듯 검찰 발표와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또 검찰 수사가 죽은 권력 뿐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에도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대권’을 꿈꾸었던 많은 이들이 정치권을 떠나 있지만, 김 전 장관에게 정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열심히 지역 정가를 도우며 다음 총선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도 ‘친노’ 타이틀을 가진 대표적 인사다. 강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행한 ‘검찰 개혁’의 중심에 서 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로 ‘검찰과 노 전 대통령의 악연’이 거론되며, 과거 강금실 전 장관의 파격적인 기용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강 전 장관은 인터뷰 요청에 다소 민감해하는 모습이었다. 강 전 장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즘 변호사 활동에만 힘쓰고 있다. 별달리 할 말이 없다”고 설명했다. 강 전 장관은 ‘법무법인 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 위쪽부터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정운찬 전 총장, 김두관 전 장관. |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여전히 차기 대권의 ‘잠룡’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서 그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잠룡으로 분류되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 정 전 총장의 ‘알듯 모를 듯한’ 정치 행보로 인해 ‘거품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지만 ‘인물난’으로 허덕이고 있는 정치권에서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영입대상’이다. 정 전 총장에게는 각종 강연초청이 잇따르고 그의 말 한마디가 언론지면을 ‘장식’하는 일이 다반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야 모두 정 전 총장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뉴민주당 플랜’을 마련하며 당 개혁안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민주당은 당 밖의 민주개혁 진영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외부 인사 영입론’을 주장하며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총장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효석 의원도 한 인터뷰에서 “원외의 김근태, 손학규 전 의원과 당 바깥의 박원순 변호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과도 만나서 뉴민주당 플랜의 취지와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각을 준비하고 있는 청와대에서도 한승수 총리의 교체 여부를 고민하며 후임으로 강재섭 전 대표 등과 함께 정운찬 전 총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비정치인’이며 ‘경제전문가’라는 점은 여권에서도 구미가 당기는 요소다. 장기간 ‘잠룡’군에 머물러 있던 정 전 총장이 정치활동에 나선다면 과연 어떤 ‘노선’을 택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기업 CEO로서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내세우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도 여러모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