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퇴임식을 마친 임채진 검찰총장이 대검 청사 앞에서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임 전 총장은 5일 퇴임 기자회견을 통해 “재임 중 수사지휘를 많이 받았다”고 발언해 그동안의 검찰 수사가 ‘정권의 외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음을 시사해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임 전 총장은 자신의 임명권자였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넘어 인간적 고뇌에 시달렸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1차 사표를 제출했던 임 전 총장이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퇴 의지를 꺾지 않은 대목에선 그의 인간적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임기를 불과 6개월여 남겨놓고 불명예 퇴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임 전 총장의 향후 행보가 정치권을 뒤흔드는 또 다른 핵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재임 중 수사지휘를 많이 받았다.”
임 전 총장이 5일 검찰을 떠나면서 남긴 소회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과 ‘광고주 상품 불매운동’을 벌인 네티즌들을 기소했던 사건을 사례로 들면서 윗선의 수사지휘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재임 중 법무부나 청와대 압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늘상은 아니지만 문건으로 내려오는 게 있다”며 “광고주 협박사건도 그랬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직거래’는 안 하지만 법무부와는 긴장관계”라며 “장관과 안 맞아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관계이고, 그게 건강한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이번 정권에서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과 관련해서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 쪽만 항상 좋아할 순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임 전 총장의 ‘수사지휘’ 발언은 금방 정치쟁점화됐다. 임 전 총장의 발언을 접한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이명박 정권의 압박 때문이라며 공세에 나섰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5일 국회 브리핑에서 임 전 총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새벽 3~4시에 땀을 흘리면서 깨는 등 고통이 많았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 것과 관련해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는 게 너무도 고통스러웠다는 말”이라며 “이는 수사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양심선언”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나 법무부로부터 수사지휘권이나 압박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임 전 총장이 ‘노코멘트’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노 대변인은 “권력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적이 없으면 없는 것이지 ‘노코멘트’라는 말이 어떠한 것을 뜻하는지는 아는 국민들은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임 전 총장의 원론적인 답변을 민주당이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해 정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임 전 총장의 ‘의미 심장’한 발언 속내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임 전 총장은 박연차 사건이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서는 “표적수사를 했다면 내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며 수사의 정당성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검찰을 떠나기 직전에 “재임 중 수사지휘를 많이 받았다”고 발언한 배경에는 현 정권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묻어 있는 것 같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임 전 총장은 재임 중 ‘절제와 품격’을 수사 원칙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는 특히 업무처리에 사심이 없고 입이 무거워 보안의식이 투철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유의 몸’이 된 임 전 총장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인간적 고뇌와 양심에 따라 폭탄 발언을 쏟아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임 전 총장이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외부에 발설할 성격은 결코 아니지만 언론사 기자들이나 지인들과의 사적인 접촉을 통해 ‘비밀’을 언급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것이다. 비록 검찰 수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정치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에 대한 언론사의 취재 경쟁 또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사실도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연차 전 회장보다 더 폭발력 있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임 전 총장의 입이 언제 어떤 식으로 열리게 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