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오는 7월 1일로 취임 3주년을 맞는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그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광역자치단체(1134만여 명)의 행정을 맡아온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많은 배움’에 대해 말하는 김 지사의 얼굴을 보자 문득 ‘경기도 지사 이후’ 그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도지사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데다 그가 차기 대권과 관련해 여권의 유력 잠룡으로 꼽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 지사에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차기 대선’에 관한 속마음일 듯하다. 김 지사는 “차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냐”는 기자의 직설적인 질문에 “때가 되면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냐”라며 ‘허허’ 웃고 만다. 그는 도지사 임기가 1년 1개월이나 남아 있다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답했지만 속내에는 ‘차기’에 대한 꿈이 자리해 있는 듯했다.
김 지사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연일 날 선 비판을 쏟아내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그의 언행에 대해 “다른 대권주자들과 차별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민주당은 심지어 “튀려고 안달이 났다”고 꼬집을 정도. 과연 김 지사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에는 어떤 생각과 입장이 담겨 있는 걸까.
지난 10일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에서 고민하는 김 지사를 만나 여러 가지 정치 현안에 관한 입장을 들어보았다. 임기 초반과 1주년 즈음에 이어 이번이 김 지사와의 세 번째 만남. 바쁜 일정으로 강행군을 보내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으나 또렷한 눈빛만큼은 취임 초기와 다르지 않았다.
경기도 지사로 취임한 직후 김문수 지사가 내건 기치는 ‘할 일 많은 경기도, 일 잘하는 김문수’였다. 본인도 3선의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도지사로 변신한 뒤 그는 국회의원들에게 “집권타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국민을 위해) 자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져왔다. 취임 3주년을 맞기까지 그는 도민들에게 약속했던 대로 ‘많은 일’을 해왔다. 수도권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는 서민들로부터 칭찬받은 ‘성과’로 손꼽힌다. 하지만 김 지사는 “수도권 정비개혁법을 폐지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고 도로 정비도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못해 아쉬움도 많이 남아 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먼저 아직도 논란이 거센 ‘대운하 공약’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 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에 대해 ‘조건부 찬성론자’다. 이러한 개발정책은 환경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김 지사는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대운하를 왜 하지 않는지 그게 더 이해가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 2월 11일 경인운하 연계사업 협력서에 서명한 안상수 오세훈 시장, 김문수 지사. | ||
▲경인운하에 대해선 강력하게 찬성한다. 강력 신봉자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대운하 공약은 신중하게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운하를 대선의 주요 공약으로 내놨음에도 이걸 흐지부지시켜 버렸다.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나는 비판적이다. 비판이 있으면 들어보고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된다.
―‘4대강 살리기 정책’이 이름만 바꾼 ‘대운하 공약’이라는 의혹도 있다.
▲사촌간은 되는 거 같은데 형제는 아닌 거 같다(웃음). 냄새나고 방치된 하천을 재정비하고 자연친화적 하천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이걸 대운하라고 하면 안 되지 않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바라보는 그의 소회도 남다른 듯했다. 김 지사는 취임 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노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고 도지사 또한 혼자 결정할 사항이 많은 외로운 자리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동병상련도 느낀다”고 언급했었다. 그는 지난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재산에 관한 의혹을 제기해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했던 악연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과 수사 과정, 그리고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그의 마음도 착잡했을 듯하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캠프를 대표해 노 전 대통령의 재산문제를 제기했었다. 이 때문에 고발도 당했고 노 전 대통령과 이기명, 강금원 씨로부터 총 22억 원의 민사소송도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세계 역사상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한 일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때 내 재산이 2억도 안 되었는데….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의 구조라리(경남 거제) 별장 땅을 샀는데 자기 회사 연수원 하려고 샀다더라. 당시부터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재산 관계가 석연치 않았다. 그런 사람을 주변에 가까이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과거 문제를 제기했을 때 조심했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 수사 등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었는데.
▲일국의 전직 대통령의 자살 사건에 대해 국민이 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얼마나 크냐, 그게 정치 보복이냐 하는 문제 제기에 대해선 수긍이 가지 않는다. 검찰 수사를 나만큼 많이 겪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우리나라 검찰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상당하다. 일방적으로 검찰을 매도할 일은 아니다. 검찰이 잘못한 것은 수사 내용을 흘린 것이다. 안 흘렸다고 하지만 안 흘렸는데 어떻게 보도가 되나. 유명 인사를 수사할 때 체벌보다 더 힘든 게 ‘망신벌’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2위에 오르는 등 친노 주자들이 급부상하고 있는데.
▲슬프고 충격적인 마음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인데 그 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납득이 잘 안 된다.
―‘친정’인 한나라당 내 개혁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항상 근원적인 문제는 친이 친박의 대결구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문제의 발단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경선이 끝나고 본선도 끝나 세월은 흘렀는데 아직도 흘러간 옛날 노래만 부르고 있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안타깝다. 이제 신곡을 내놔야지. 옛날 감정은 모두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만 이야기하고 싶다.
―박 전 대표의 당대표 합의 추대론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다른 분도 많이 계시지만 박 전 대표는 가장 국민적인 인기가 많은 분 아닌가. 해주신다면 많은 당원들이 좋아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조기 대세론에 대한 우려 같은) 정략적인 계산보다는 사심 없이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실 거라고 본다.
―최근 교육부를 폐지하자는 발언을 한 까닭은.
▲초·중·고교를 교육부가 직접 맡아야 될 이유는 없다. 대학도 자율화를 시켜줘야지 왜 교육부가 다 쥐고 앉아 주무르고 있나.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만드는 일이나 국가의 중요한 교육정책을 담당해야 한다. 교육부가 이권을 쥐고 연연하듯이 과외수업을 몇 시까지 할 건지, 단속을 할지 말지 이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으니 전부 대통령에게 부담만 주는 것 아닌가.
―만약 대선에 나가게 된다면 공약으로 교육부 폐지를 내놓을 것인가.
▲뭐, 완전히 폐지한다기보다는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쓸데없는 과외 단속 이런 거 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지금의 교육부는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김 지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발을 하면 즉시 격퇴시키고 통일을 이룩하는 강력한 대응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 지사의 발언이 이른바 ‘북진 통일’을 뜻하는 것이라며 “군사도발에 대응한 북침 통일을 애들 불장난쯤으로 아는 모양”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발언”이라고 평하기도 했을 정도. 이 발언의 ‘진의’를 다시 물어보았다.
―‘북진 통일’ 발언이 큰 논란을 불렀는데.
▲북이 도발을 하면 단호히 격퇴하고 물리쳐서 도발하면 망한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북이 도발하면 두들겨 맞고 있자는 건지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되묻고 싶다. 다만 이 대통령이 통일부를 축소하자는 것에는 반대다. 더 강화해서 빨리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김 지사는 속내를 아직 밝히진 않았으나 여권 안팎에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경기도 지사 연임을 위해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사 연임에 대한 도민의 여론도 긍정적인 상황. 과연 그가 대선과 지방선거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도 관심사다.
―아직 ‘차기’에 대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아직까지는 지사 일을 열심히 하고 때가 되면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나. 기자 생각엔 언제까지 결정을 내리면 좋겠나(웃음).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장) 또 하겠다고 그러던데, 오 시장은 나보다 열 살이나 적어 젊음이 용기이고 무기 아니겠나. 내가 지사를 또 하겠다 그런다고 나 찍어줄 것도 아니고… 적당한 때가 되어 결정하는 게 맞지 않겠나. 지금 (시점에서) 내가 나가겠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마음이 있어도 거론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마음도 무슨…(웃음). 지금은 일이 일순위고 도민들이 봐서 신통찮으면 안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김 지사에게 당내에서 차기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임태희·김영선·남경필·정병국 의원,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등) 중 누가 적당할지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왜 그런 난처한 질문을 하느냐”며 대답을 피해갔다. 정병국 의원은 앞서 ‘김 지사가 재출마한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밀어드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 김 지사는 이에 대해 “정 의원이 친해서 그런 말을 한 걸 거다. 여러분들의 상황을 감안하고 헤아리면서 결정할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