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릴테면 때려 봐 지난달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천신일 회장. 원안은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야권 일각에선 천 회장의 당당한 법정 투쟁 이면에는 대통령의 친구이자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종친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천 회장이 아무리 권력 실세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해도 그를 둘러싼 의혹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야권이 ‘천신일 특검’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무사귀환’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과연 천 회장이 법원과 정치권을 상대로 한 힘겨운 싸움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검찰이 6월 12일 천 회장을 기소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알선수재,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등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 대가로 6억여 원의 금전적 이득을 취했고, 자녀에게 주식을 편법 증여해 세금을 포탈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천 회장은 3일 열린 첫 공판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에 따른 대가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천 회장은 또 조세포탈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증권거래법상 보고의무를 위반한 것 외에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천 회장은 특히 재판이 시작되기 전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것을 재판정에서 정직하게 다 말하겠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천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언론의 취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향후 공판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천 회장의 적극적인 법정 투쟁 모드는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보여줬던 태도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천 회장은 혈압 등을 이유로 검찰 소환을 세 번이나 지연하는가 하면 검찰 출두 때 빗발치던 기자들의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바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천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 있고, 막강 변호인단이 무죄 변론을 자신하고 있다는 점이 천 회장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대형로펌 변호사들로 구성된 천 회장 변호인단은 첫 공판에서 30여 분간 ‘사건 전체구도 정리’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 자료까지 발표하면서 재판부를 상대로 공소사실 쟁점과 검찰의 잘못된 법적용을 지적하는 등 적극성과 열정을 보였다.
이에 반해 검찰은 ‘불성실한’ 공소장 기재로 재판장으로부터 지적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는 “공소장에는 2006년에 이뤄진 양도세 포탈 범죄 사실만 기재됐는데 왜 범죄일람표에는 2007년 내용도 들어가 있느냐”고 묻자 검찰은 “2007년 건은 기소하지 않기로 했는데 공소장에 미처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천 회장의 입장 변화 배경에는 법적인 요인 외에 정치적 요인 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통령의 친구이자 여권 실세로 통하는 천 회장이 손 놓고 당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신임 총장으로 발탁된 천성관 내정자와 천 회장이 종친회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개될 법정 공방 과정에서 검찰의 칼날이 무디어질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천 내정자와 천 회장은 영양 천씨 종친회에서 각각 부회장과 명예회장을 맡고 있어 오랫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관계자들은 검찰이 천 회장과의 법정 투쟁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더 큰 역풍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야기한 검찰 수사를 놓고 과잉·편파수사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 비리 ‘몸통’으로 지목받아 온 천 회장에 대해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부실·보복 수사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천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 청탁 사건 외에도 몇몇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고발과 정치권의 특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 특별당비 30억 원 대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대통령과 천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국회에는 이미 이른바 ‘천신일 특검법’이 제출된 상태다. 천 회장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보여줬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당당한 법정 투쟁 모드로 선회하고 있으나 그의 향후 행로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 내부에선 천 회장 측과의 법정 대결에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축소·은폐 논란을 넘어 정권 차원의 ‘음모론’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천 회장 재판에 ‘올인’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검찰이 명예회복 차원에서 무디어진 칼날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아니면 막강 변호인단이 검찰의 예봉을 차단하고 ‘왕의 남자’를 보호할까. 정치권의 이목이 서초동 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