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갈 때가 됐나…”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정치 전면 등장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박 전 대표를 만났던 인사들의 얘기 뒤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자리해 있다. 그가 분명 그동안 철칙처럼 간직했던 ‘정치 전면 등장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걷히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구심점을 잃은 당의 권력 공백을 메워야만 한다는 중립성향 의원들의 현실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당의 주류 일각에서는 친박연대와의 당 대 당 통합을 원하는 등 친이와 친박 간의 진정성 있는 화해기류에 대해서도 인정을 해야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과연 박 전 대표의 행보가 이전과 사뭇 달라지는 것일까. 여권 내부에서 거론되는 박 전 대표의 당권 접수 작전 내막을 들여다봤다.
“‘모범생’ 박근혜 전 대표가 ‘땡땡이’를 쳤다?”
박근혜 전 대표는 평소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 반드시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26일 국회가 개회했음에도 박 전 대표는 “오래 전부터 몽골의 초청을 받았는데 일정상 계속 미뤄오다가 이번에 가게 됐다”며 이례적으로 몽골행을 택했다. 그런데 몽골 방문 시기는 당 쇄신특위에서 여권 쇄신안을 최종 발표할 것으로 예정된 기간이었고, 안상수 원내대표가 ‘박근혜 총리론’을 언급하는 등 그의 역할론이 다시 불거질 무렵이었다. 주변에서는 “그동안 주류에서 박 전 대표에게 국정 ‘참여’를 요구하며 얼마나 압박을 했느냐. 당이 내홍을 겪을 때마다 박 전 대표에게로 눈길이 가니 이번에는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이다”라며 그의 ‘일탈’에 대한 동정론도 일고 있다.
비록 박 전 대표가 몽골 방문을 하면서 “외국 방문 때는 국내 정치 발언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라며 총리론 등의 현안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일탈’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박 전 대표의 심경에 뭔가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쪽으로 모아진다. 특히 현 정부 내내 자신의 역할론에 대해 냉정을 유지했던 박 전 대표이지만, 최근에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 흔적이 엿보인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박 전 대표도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적잖이 곤혹스러워한다. 당장 어떤 태도를 표시하진 않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펼지 서서히 정리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현 정권 참여론에 대해 참모들과 측근 중진들에게까지 ‘함구령’을 내렸다.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친박그룹 관계자들은 ‘참여론’과 관련해서는 알레르기 반응까지 보였다, 하지만 그는 몽골행에 앞서 안병훈 전 경선캠프 선거대책위원장, 최병렬 상임고문 등 원로들과 홍사덕 의원 등등 측근 의원들, 자문교수단들로부터 ‘향후’ 행보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참여론’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경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대표를 만났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지금 상황을 답답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여권 주류의 참여론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그를 만난 지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박 전 대표가 최근 당 안에서 말이 많은 조기전당대회 참여 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좀체 정치 현안에 대해 측근들에게까지 자신의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박 전 대표 스타일로 볼 때 최근의 기류 변화는 향후 그의 ‘로우 키’ 행보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참여론’에 대한 기류 변화 움직임 뒤에는 이전과는 다른 몇 가지 상황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여당 내부의 권력 구도에 변화가 왔기 때문에 현실적인 변화를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있다. 그동안 여권의 실질적 리더로서 ‘절대 권력’을 행사해오던 이상득 의원이 2선으로 한 발 물러나 있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의 퇴진 공간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나 소장파가 메워야 하는데 아직 그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면서 박 전 대표 외에 이제는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요구가 중립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로 국회 컴백을 원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정국 등의 악재로 그의 ‘꿈’이 여의치 않게 됐다. 그래서 이 전 최고는 측근들을 통해 9월 조기전당대회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당권 접수로 정치권에 ‘우회 상장’하자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9월 전대마저도 쇄신특위가 1월 조기전당대회를 다수의견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이 전 최고는 최근 7~8월 개각 때 교과부 장관 등으로의 입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하지만 사교육 철폐를 외치며 예전의 입지를 다시 찾으려는 정두언 의원도 이 대통령으로부터 권력투쟁을 일삼는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전 최고도 급변한 권력구도 때문에 예전의 ‘파워’를 되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을 볼 때 오로지 당내에는 ‘박근혜’라는 별만이 당분간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권력의 공백을 박 전 대표가 메워야 한다는 게 중립성향 친이그룹과 친박그룹 중진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실적으로 당내 권력 구도가 거의 박 전 대표에게로 넘어왔는데 당권만 친이에 넘겨줘 ‘때’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기회적이지 않느냐’는 일각의 지적에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박 전 대표의 기류 변화와 접점을 이루는 대목이다. 실제로 최근 친박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가 거의 접수했다고 보면 된다. 최근 탈당했던 친박 계열 당협위원장들마저 대거 복귀하면서 지역별로 대구·경북은 거의 100%, 부산도 80%, 경기도 50% 정도 박 전 대표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보면 맞다. 이제 서울만 접수하면 된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절반을 명실상부하게 확보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하기 전까지 여러 곳에서 인재들을 썼지만 자신의 직계는 50% 정도였다는 점에서 지금 상황으로도 박 전 대표는 정권 인수 단계에 들어간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 변화는 박 전 대표가 내년 1월에 조기전당대회가 실시된다면 최소한 ‘대리인’이라도 내세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쇄신특위가 조기전당대회 시기를 결정할 때 친박그룹 일각에서 1월 실시에 대해서는 그리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기에 당권을 접수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당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박 전 대표가 ‘대리인’을 내세울 경우 홍사덕 의원(6선)이 현재로선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친이그룹 일각에서 친박그룹과의 진정한 화해를 전제로 한 ‘공동연대’를 추진하는 것도 박 전 대표가 마냥 뒷짐을 지고 있을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의 총리 추대론을 내세운 것은 ‘립 서비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친이그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한 모임에서 ‘친박연대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합당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현재 구속된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에 대해서도 ‘8·15 사면이나 가석방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당에서 적극 나설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건강이 좋지 않다니 검찰에서 알아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석방 등을 암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박희태 대표가 적극 추진했던 탈당 당협위원장들의 전격 복귀도 친박그룹의 불공정 공천에 대한 응어리를 어느 정도 풀어주는 위무의 효과를 낳았다. 친박그룹 일각에서는 최근 이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 포기 선언과 서민위주 정책 등을 잇달아 발표하자 그동안의 일방적인 국정 기조에 변화가 온 것이 아니냐며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결국 7~8월 여권 재편 때 친박그룹을 얼마나 중용할 것인지가 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가리는 열쇠가 될 것이라며 아직은 유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김선동 의원이 “이 대통령과 그 참모 그룹이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개선을 검토하는 흔적들이 보인다”고 언급해 양측 간 화해의 기류도 일부 감지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 전에 ‘커밍 아웃’을 해야만 하는 배경에는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친박그룹 중진들의 정치적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김무성 의원은 차기 주자로 도약할 기회였던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도 하지 못하고 ‘무력진압’을 당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던 친박그룹 중진들도 박 전 대표의 엄한 컨트롤 밑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들에게도 정치적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가 만만치 않게 박 전 대표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2012년 대선 전까지 계속 그들의 ‘욕망’을 억제시키면서 청와대 입성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도 그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가 내년 지방선거 이전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현 정권에 부담을 주며 조기에 차기 주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치 참여가 내년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이라는 일종의 불문율은 거의 깨어졌다고 본다. 친이그룹의 진정성이 담긴 압박과 민심의 ‘무책임론’에 대한 기류 변화, 여당 권력 공백에 따른 리더십 부재의 외면 등에 대한 비판을 더 이상 ‘모른 척’하기는 힘들 것이란 게 대체적 시각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