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
MB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측은 ‘평균적인 국민 인식’을 거론한 것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으나 DJ 측과 민주당은 불쾌감과 함께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MB는 독재자’로 표현하는 등 ‘반 MB’ 전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DJ를 견제하는 동시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여진을 잠재우기 위해 10년 진보정권의 대북정책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선 MB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DJ와 참여정부를 겨냥한 여권 핵심부의 압박은 더욱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선 ‘대북 송금’ 특검 이후에도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는 1·2차 남북정상회담 뒷거래와 DJ 비자금 의혹 등 DJ의 아킬레스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이른바 ‘DJ 죽이기’ 비밀 플랜이 가동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여의도 정가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메가톤급 ‘DJ 죽이기’ 플랜의 실체 및 그 후폭풍을 들여다봤다.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지원하였으나 그 돈이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폴란드를 방문 중인 MB가 지난 7월 7일(현지시간) 유럽의 뉴스전문채널인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하면서 던진 발언이다. 폴란드발 MB 육성을 접한 국내 정치권은 발언 진위 및 배경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MB의 북핵 관련 발언은 평소에도 늘 하던 말이고 이는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기도 하지만 사실 평균적인 국민적 인식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며 MB 발언을 옹호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지난 정권의 대북 지원금이 북핵 개발에 쓰였을 것이란 점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MB가 민감한 북핵 문제를 직접 언급한 배경에는 국제사회와의 북핵 제재 공조 국면에서 북한 핵무장을 억제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투영돼 있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최근 들어 서민 행보와 중도 실용 노선에 방점을 찍고 있는 MB가 보수·기득권 세력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대북 강경 노선을 재천명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DJ 측과 민주당은 MB의 발언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DJ의 핵심 측근으로 ‘햇볕정책 전도사’로 통했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북한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핵개발을 했고 우리가 지난 10년간 북한에 지원한 것은 현금이 아니라 쌀과 비료 등 생활필수품”이라며 “현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을 호도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DJ 측 최경환 공보비서관도 공식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참여정부 시절 산자부 장관을 지낸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MB의 주장은 국내 일부 수구세력들의 주장과 같은 내용으로 MB가 중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수구보수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꼬았고, 통일부 장관 출신인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MB의 발언은 무역도 하지 말라는 식의 남북 교류협력 폐기선언”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교동과 민주당은 한 목소리로 MB 발언을 성토하면서도 MB가 국제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햇볕정책을 비판한 배경에는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나 비수가 숨겨져 있을 개연성이 높다”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1·2차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DJ 비자금 등 DJ와 관련된 숱한 구설수와 의혹들 또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1차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참여정부 출범 직후 실시된 ‘대북 송금’ 특검을 통해 남북 간의 ‘뒷거래’ 의혹이 일부 드러난 바 있으나 2차 정상회담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수세에 몰려 있는 MB와 여권 핵심부가 정국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회심의 승부수로 ‘대북 뒷거래’ 의혹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위기론’을 주창하면서 ‘반 MB’ 전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DJ를 겨냥한 이른바 ‘DJ 죽이기’ 플랜을 가동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진보 정권 10년의 햇볕정책을 비판한 MB의 발언 이면에 정치적 노림수가 존재한다면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보다는 다분히 DJ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며 “참여정부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 전 방위적인 수사를 전개해 온 사정당국이 DJ 비자금 등 DJ와 관련된 각종 의혹 사건들에 대해서도 은밀히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DJ는 97년 대선정국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 일부 보수단체와 미국 교포사회 등으로부터 대선자금이나 정치 비자금 등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시달린 바 있다. ‘DJ 비자금 13조 원설’ ‘DJ-김우중-조풍언 삼각 커넥션 의혹’ ‘DJ 비자금 미국 내 친북단체 유입설’ ‘3000만 달러 스위스 계좌 은닉설’ 등은 DJ 비자금 의혹과 관련된 대표적인 소문들이다. 여기에 국내 유력 월간지는 DJ 비자금 문제를 기사화하기도 했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감사 때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 고소로 비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DJ 비자금과 관련한 숱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사례는 없다.
DJ 측은 이에 대해 “DJ 비자금을 둘러싼 숱한 의혹들은 ‘반 DJ’ 세력이 양산해 낸 실체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사실상 DJ 정권을 승계한 참여정부로서는 DJ 비자금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것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 사정당국이 작심하고 달려들 경우 DJ는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 치명적인 정치적·도덕적 상처를 입게 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여권 핵심부 일각에선 현 정부 출범 이후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대북 경색 국면을 정면 돌파하고 MB의 대북 강경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2차 정상회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참여정부 초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1차 정상회담 과정에서 불거진 검은 커넥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듯이 2차 정상회담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 주변에선 2007년 10월 2일~4일 평양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배경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07년 초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대통령 측근 자격으로 중국에서 북측 비선라인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뒷거래 의혹이 수면위로 급부상한 바 있고, 당초 2007년 8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정상회담 일정이 대선을 코앞에 둔 10월로 연기된 배경과 관련해서도 의혹이 증폭된 바 있다. 급기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비밀리에 방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상회담 뒷거래’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전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상회담 뒷거래 의혹이 재부상할 경우 10년 진보 정권이 펼쳤던 햇볕정책은 그 당위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는 반면 현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에는 힘을 실어주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여권 입장에선 ‘조문 정국’ 이후 ‘반 MB’ 전선을 지휘하고 있는 DJ의 거침없는 행보에 급제동을 거는 동시에 범민주계의 대통합 움직임에도 찬물을 끼얹고 정국 주도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일석다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발 MB 발언을 신호탄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뒷거래 의혹을 비롯한 DJ 비자금 의혹 사건이 수면위로 급부상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