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을 치료했던 경력이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의료기관이나 관련 의료진에 대한 접촉 시도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의 치료를 위해 지난해 10월 방북했던 것으로 파악된 프랑스 신경외과 전문의 프랑수아 자비에르 루 같은 인물이 그 핵심 대상이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북한도 최고지도자의 건강파일은 물론, 이와 관련한 사소한 자료도 노출되지 않게 철통보안을 취하고 있어 벽에 부닥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보 관계자는 “과거 베일에 싸인 김정일의 건강 관련 정보를 포착하기 위해 그가 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 대소변을 채취하기 위한 정보기관들의 은밀한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배설물뿐 아니라 타액 등까지도 철저하게 관리해 북한으로 가져간 것으로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회자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 8월 순환기 계통의 이상으로 쓰러진 뒤 건강 이상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번은 그 때와는 판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최근의 김 위원장 건강이상과 관련한 관측에 불씨를 당긴 것은 지난 9일 미국 <워싱턴타임스>의 ‘김 위원장이 건강악화로 앞으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보도였다. 서양의학에 의한 치료를 포기하고 한약과 민간요법 등 동양의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워싱턴타임스>에 이어 13일 YTN도 김정일 췌장암 발병설을 보도하면서 그의 건강문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한국 정부는 이 보도에 대해 “그런 정보는 없다”고 밝혔다. 의학 전문가들도 췌장암 발병설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낮게 본다. 췌장암의 특성상 이를 인지한 단계라면 거동이 힘들 정도여서 지금처럼 공장이나 군부대를 활발하게 ‘현지 방문’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암에 걸렸다는 첩보는 있다”고 확인했다. 췌장암은 아니지만 김 위원장이 모종의 암 때문에 투병 중이란 것이다.
지난해 8월 뇌졸중 때문에 심각한 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그동안 다소 기력이 떨어진 것으로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눈에 띄게 상태가 악화돼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14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대동강타일공장을 방문한 사실을 전하면서 그가 야외에서 의자에 앉아 보고받는 장면의 사진을 내보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그는 늘 서 있는 자세로 현지지도 보고를 받아왔다.
지난해 10월 2일 <노동신문>은 ‘장군님(김정일)께서 수많은 현지지도의 길에서 한 번도 의자에 앉아 지도를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전할 정도였다. 지난 8일 김일성 사망 15주기 행사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머리숱이 많이 빠지고 수척한 모습으로 입이 오른쪽으로 비뚤어져 올라간 모습이었다. 날씨가 제법 무더워진 6월 말에도 두툼한 겨울점퍼를 입고 현지지도에 나선 장면도 그의 건강이 심상치 않음을 나타냈다.
▲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대동강타일공장을 방문, 보고를 받았다. 사진은 KBS 화면 캡처. | ||
이런 상황에서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이 13일 “김정일이 노여움이 많아지고 화를 잘 내며 환각 증세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하면서 건강 이상설은 증폭됐다. 남 소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통’인 데다 이 연구소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란 점에서 그의 말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같은 날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일의 건강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했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건강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쳐 왔다. 그는 2006년 10월 중순께 자신의 집무실에 모인 당·정·군 고위간부들에게 “동무들, 내가 팔구십까지는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지 않겠소. 난 자신 있어. 자신 있고말고”라고 공언했다. 핵 실험 직후였던 당시 자신의 통치력과 리더십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한 해 전 12월 아들을 비롯한 가족과 최측근들에게 “혁명의 후계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모두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든든한 믿음이 배경이었다. 대북 정보망을 통해 김 위원장의 언급내용을 입수한 국가정보원과 미 중앙정보국(CIA)은 김정일 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란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챙기기 위한 북한 당국의 노력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의 건강만을 전담하는 기관인 만수무강연구소도 그중 하나다. 평양시 대성구역 마산동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근무 인원만 1500명에 이를 정도의 규모인 데다 그 수준 또한 북한 최고라는 것이다. 연구원이나 연구조수·실험공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김정일 위원장 관련 질병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과 체질이나 연령 등이 같은 사람들에 대한 임상연구를 통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안까지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한 정보 관계자는 “한국과 서방의 정보기관이 주목했던 것은 김정일의 심장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심근경색으로 급사한 데다 김 위원장의 경우에도 심장이 좋지 않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핵심 고위층 상당수가 암이나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데 대해 일부 의학 전문가들은 색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국이나 서구 민주국가의 경우 최고지도자나 장관급 고위직은 일정한 임기가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절대권력자인 김정일 위원장과 핵심 권력자들은 거의 종신으로 일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밀려난다는 것은 곧 숙청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생활이 길게는 수십 년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암 등의 중대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미 칠순(북한은 1942년 백두산 출생을 주장하나 41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는 게 정설이다)에 가까운 나이다. 여기에 지난해 뇌졸중을 겪어 최고지도자로서의 통치에는 치명적인 부담을 떠안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암 발병 관측까지 나올 정도의 악화된 건강상태에 빠졌다. 김정일 건강문제를 추적하는 정보요원들과 전문가·당국자들 사이에는 “확실한 건 김정일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란 말이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인지 김 위원장은 경제현장과 군부대 방문 횟수를 오히려 늘리고 있다. 올 상반기 북한 언론이 공개한 대외활동을 분석해 보면 모두 73회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회보다 1.5배가량 많다. 건강악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제시한 ‘2012년 강성대국 건설’ 목표를 향해 뭔가 조바심을 내고 있는 모습이라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어린 셋째아들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한 데 따른 조급함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풀이다.
김성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