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발견된 고라니.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정한 멸종위기종(취약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돼 포획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충남지역에서 잡힌 고라니 수만 2만 1683마리. 국가 차원의 야생동물 관리 지침이 없어 무분별한 야생동물 포획이 이뤄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충남연구원 제공
27일 충남연구원이 발표한 ‘충남 지역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관리방안’에 따르면 충남 지역의 최근 3년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은 2013년 10억4300만 원, 2014년 9억1600만 원, 2015년 9억200만 원이다. 연간 피해액은 10억 원 수준으로, 감소세에 있지만 감소 폭은 미미하다. 피해 작물로는 3년간 벼가 피해액 4억4700만 원으로 가장 컸으며 사과(3억9900 만 원), 채소류(4억700만 원), 배(1억6900만 원) 순이었다. 야생동물 별로는 고라니가 41.6%로 월등히 많은 피해를 끼쳤으며 멧돼지(21%), 까치(14.2%), 꿩(6%)이 그 뒤를 이었다.
야생동물 관리권은 각 지자체의 장이 갖고 있다. 각 지자체는 매년 야생생물 보호 세부계획을 세워 관리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가 세부계획 수립을 위해 따를 수 있는 과학적 근거의 야생동물 관리 지침이 없다는 것이다. 고라니, 멧돼지 등 직접적인 농작물 피해로 연결되는 야생동물의 개체군 크기, 지역별 밀도 등 기본 정보는 전무한 상황이며 야생동물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적정한 장기 계획도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지자체는 농가 피해 줄이기에만 급급해 무계획에 가까운 야생동물 포획을 실행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개체 수가 아닌 마련된 예산을 기준으로 야생동물 포획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획이 허가된 야생동물 중에는 멸종위기 동물도 포함돼 있어 생태계 훼손 우려를 더하고 있다. 고라니의 경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정한 멸종위기종(취약종)이다. 고라니는 전 세계 중 중국의 양쯔강 유역 일부와 한반도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라니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개체수와 지역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충남에서만 포획된 고라니의 수는 2만 1683마리다. 지자체에 신고되지 않은 포획량까지 포함한다면 3만여 마리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사회의 관점에서는 멸종위기 종을 한 해 동안 2만 마리 이상을 잡았다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다. 현재와 같이 지자체의 임의적 관리로 야생동물 포획이 이뤄진다면 고라니는 곧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야생동물 관리가 이뤄져야 하며, 관련 연구가 서둘러 시작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충남연구원 정옥식 환경생태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지구의 기후변화로 생물 종에 대한 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야생동물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공공재로서의 의미가 있다”며 “이를 지자체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야생동물에 대한 국가 단위의 통합관리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관리할 고급인력 양성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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