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중국의 사업가들은 보르도 지역의 포도밭을 하나둘 매입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현재 150여 개의 포도밭 주인이 프랑스인에서 중국인으로 바뀐 상태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프랑스 와인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근래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국 내 와인 소비량 때문이다. 최근 <슈테른>은 중국 자본으로 물들고 있는 보르도 와인 지구의 현재와 함께 이로 인해 변화하게 될 앞으로의 중국 시장에 대해 살펴봤다.
한 포도원에서 방문객들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와인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을 세련됐다고 여긴다. 사진=슈테른
‘처음에는 와인을 수입하더니, 그 다음에는 포도밭을 매입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와인 지식을 얻어가고 있다.’
<슈테른>은 최근호에서 프랑스 와인 산지로 몰려오고 있는 중국 자본에 대해 이렇게 한 줄로 요약했다. 요컨대 중국의 소비자들이 프랑스 와인을 즐겨 마시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아예 프랑스로 날아와 포도밭을 사들여 직접 와인을 생산하고, 급기야 와인 지식을 쌓아 중국산 와인을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와인 소비량은 지난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특히 레드와인을 즐겨 마시고 있으며, ‘국제주류연구소’에 따르면 이미 2014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레드와인 소비량은 프랑스를 앞지른 상태다. 2017년 현재 중국인들의 와인 소비량은 연간 61억 리터에 달하고 있다. 심지어 2020년까지 세계 2위의 와인 소비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와인은 6억 4200만 병이었으며, 이 가운데 40%가 프랑스산이었다. 가령 2017년 초에는 프랑스 리옹에서 후베이성 우한까지 기차로 1만 4000병의 보르도 와인이 직접 운반되기도 했었다. 이른바 ‘뉴실크로드’ 전략의 일환이었다.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은 연 6억 2800만 유로(약 8090억 원) 상당의 프랑스 와인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매년 15%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프랑스 와인 소비량이 급증한 것은 중산층의 약진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의 값비싼 와인은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선물용으로만 구입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오늘날에는 경제 수준이 높아진 중산층들이 주된 소비층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중국 시장은 아직은 고급 와인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최고급 와인인 ‘그랑 크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심지어 코카콜라와 혼동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머지 않아 중국인들이 최고급 와인 시장까지 점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 가운데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은 단연 보르도 지구에서 생산한 와인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은 보르도 와인은 현재 매년 8000만 병씩 중국에 수출되고 있다. 40만 병에 불과했던 2000년에 비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세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보르도 와인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고급 브랜드 마케팅 덕분이다. 보르도라는 브랜드를 롤렉스에 비유하면서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쳤던 것. 이에 현재 중국인들에게는 ‘프랑스 와인=보르도 와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됐으며, 프랑스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가운데는 일부러 보르도를 찾아 와이너리를 둘러보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와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욕구는 보르도와 같은 프랑스 와인 산지에도 놀라운 영향력을 미쳤다. 그저 와인을 마시고 즐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와인 산지를 방문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 포도밭을 통째로 매입해서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부호들도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보르도의 포도밭을 매입하는 바이어들 가운데 40%가 중국인일 정도.
<차이나비즈니스뉴스>에 따르면, 보르도 지역에 있는 1만여 곳의 포도밭 가운데 현재 중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곳은 150곳이다. 전체에 비하면 2%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놀라운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한동안 보르도 포도밭의 가장 큰손이었던 벨기에 투자자들은 중국에 이어 2위로 밀려난 상태다. 현재 벨기에인이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은 40개 정도에 불과하다.
포도원에 있는 창청루의 조모와 그 손주. 사진=슈테른
14년 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중국인 사업가들의 포도밭 매입을 돕고 있는 에이전트인 리나 판은 “중국인 사업가들이 포도밭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서 보르도 레드와인의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한 2007년부터였다”라고 말한다. 판은 “당시 많은 중국의 와인 수입업자들은 ‘아예 보르도의 포도밭을 사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투자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투자자들이 앞다퉈 돈보따리를 싸들고 프랑스로 날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포도밭을 매입하는 고객들 가운데는 호텔 체인이나 식음료 회사, 벤처 회사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역시 현재 ‘샤토 드 수르’ ‘샤토 페렌’ ‘샤토 게리’ 등 보르도 포도밭 세 곳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중국 내 4000여 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생활용품업체 및 레스토랑 체인인 ‘골든 필드’의 소유주인 창청루 역시 2017년 초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샤또 벨에어’를 매입했다. 1627년 지어진 훌륭한 건축물인 이 샤또는 55만m² 면적을 자랑하는 방대한 포도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매년 23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제조 및 판매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하게 될 경우, 이는 분명 사업적인 면에서 봤을 때 훨씬 이득이다. 가령 ‘알리바바’는 보르도 와인을 중국의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웹플랫폼을 개발할 예정에 있다. 이와 관련, ’맥스웰-베인즈 부동산중개업소’의 마이클 베인즈는 “중국 전역에 고급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호텔리어라면, 결과적으로는 병당 4~5유로(약 5000~6000원)에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운송비와 세금을 더하면 12유로(약 1만 5000원) 정도 된다. 그리고는 중국에서 병당 50유로(약 6만 5000원) 정도에 판매하게 된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골든 필드’의 창청루 역시 “매년 우리 지점에 100만 병의 와인을 판매할 계획이다. 현재 나는 수확에서 생산, 그리고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중국인들이 매입하는 포도밭은 역사는 깊지만, 빠르게 변하는 와인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채 쇠퇴하고 있는 포도밭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령 뽀므롤, 뽀이약, 마고 등과 같이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그보다는 대중적인 와인을 생산하는 곳들이다. 리나 판에 따르면, 중국인 투자자들의 약 85%가 300만~600만 달러(약 32억~65억 원) 상당의 포도밭을 매입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비교적 저가인 포도밭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국 소비자들의 와인에 대한 식견이 아직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와인 애호가들은 아직은 와인의 적절한 가치와 가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인 사업가들이 포도밭을 매입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투자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인 투자자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말했다. 하나는 와인을 좋아해서 와인을 수입하고, 한발 더 나아가 와인 제조 과정에까지 관심을 두게 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지 고상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포도밭을 매입하는 경우다.
실제 중국에서 와인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이와 관련, <텔레그래프>는 ‘트로피 효과’라고 말했다. 포도밭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 가치 외에도 보여주기 위한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보르도에 포도밭을 갖고 있다’라고 말할 경우 고상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포도밭을 소유할 경우, 프랑스의 역사를 소유한다는 자부심도 덩달아 가질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브루고뉴, 샹파뉴, 버건디 등 다른 유명 와인 산지에 비해 유독 보르도에 중국 자본이 밀려들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예부터 비교적 외국 자본에 개방적이었던 보르도 지역의 특성을 꼽았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다른 지역에 비해 보르도는 오래 전부터 영국, 네덜란드, 미국, 벨기에 등 외국 자본에 개방적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중국 자본이 밀려 든다고 해서 딱히 편견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한 포도밭 관계자는 “중국인들은 투자도 많이 하고, 또 관광산업도 일으키고 있다. 보르도 지역에 부를 가져오고 있다. 보르도에 도움이 되지 결코 해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는 프랑스 와인산업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세대교체’ 때문이기도 하다. 보르도의 많은 포도밭 주인들은 현재 은퇴 단계에 들어섰지만, 자녀들 가운데 가업을 물려받길 희망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이유인즉슨, 와인 산업은 고되지만 그에 비해 수익은 적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포도밭 주인들은 포도밭을 매각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중국인들이 때를 잘 맞춰 시장에 진입한 셈인 것이다. ‘샤또 벨 에어’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전 소유주였던 패트릭 다비드는 창청루가 제시했던 가격에서 단돈 1유로도 협상하지 않은 채 바로 계약을 체결해버렸다. 세 딸 가운데 아무도 포도밭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프랑스의 와인 소비량도 포도밭 주인들이 토지를 매각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1975년만 해도 프랑스 인구 한 명 당 와인 소비량은 100리터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우에는 50리터도 채 되지 않는다. 때문에 프랑스의 와인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고, 그 새로운 시장이 바로 아시아 시장이었다. 이로 인해 기꺼이 중국의 부호들에게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포도밭의 문을 개방하게 됐으며, 동시에 포도밭을 소유한 주인에서 와인 컨설턴트로의 변신도 꾀하게 됐다.
유명 와인 컨설턴트인 미셸 롤랑도 그런 경우다. 생떼밀리옹의 서북쪽에 위치한 뽀므롤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롤랑은 지금까지 일곱 명의 중국 투자자들에게 자문을 해줬다. 이 가운데는 중국 최대의 국영식품회사인 ‘코프코’도 있었다. 롤랑은 중국인 고객들에 대해 “중국인들은 그저 자랑하기 위해, 거들먹거리기 위해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누가 뭐래도 사업가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모로 볼 때 중국인들이 성공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르도 주민들은 갑작스레 밀려드는 중국 자본을 썩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다. 보르도 포도밭에서 와인숍을 운영하던 한 프랑스 여주인은 최근 포도밭의 소유주가 중국인으로 바뀌게 되면서 문을 닫게 됐다. 그녀는 “중국인들이 투자를 해서 쇠퇴한 포도밭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포도밭이 더 이상 프랑스인의 소유가 아니란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와인 시장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평생을 포도밭에서 일한 장 피에르는 “보르도 와인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남아공 등 다른 지역의 와인들이 보르도 와인 못지않게 품질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두려운 경계 대상은 바로 중국이다. 피에르는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중국인들이 보르도에서 얻은 경험을 이용해서 중국에 거대한 규모의 포도밭을 경작할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렇게 될 경우, 프랑스 시장은 중국산 와인으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품질 좋은 보르도 와인처럼 말이다”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투자자에서 수출업자로’ 중국산 와인이 몰려오고 있다 와인 투자자였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서서히 수출업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슈테른>은 지적했다. 다시 말해 와인을 수입하는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직접 와인을 생산해 역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 최초로 프랑스 포도밭을 매입해서 성공을 거둔 피터 궉이 그런 경우다. 지난 1997년, 보르도의 ‘샤또 브리송’을 사들였던 궉은 현재 ‘비뇨블 K’ 그룹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이 그룹은 다섯 곳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최고급 와인인 ‘그랑 크뤼’를 생산하는 ‘샤또 뚜르 생 크리스토프’도 포함되어 있다. 궉은 포도 재배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해서 와인 품질을 높이고 있으며, 이미 업계에서는 존경을 받는 와인 전문가로 성장했다. 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중국의 젊은층 가운데는 프랑스로 유학을 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가령 보르도의 한 소믈리에 양성 과정의 경우, 수강생 가운데 4분의 3이 중국인일 정도다. 이들은 이곳에서 포도 재배 및 와인에 관한 디플롬 과정을 수료한 후 이렇게 터득한 지식으로 중국의 와인 업계에 종사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현재 중국의 포도밭은 하루가 다르게 면적이 증가하고 있다. 매년 새롭게 심어지고 있는 포도나무 수는 프랑스보다 많으며, 현재 중국은 스페인 다음으로 가장 넒은 규모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 가령 윈난성 산악지대부터 고비사막까지 와인 포도 품종을 개발하는 데 적합한 조건을 갖춘 지역은 수없이 많다. 실제 ‘중국의 보르도’라고 불리는 닝샤후이 자치구에는 현재 많은 와인 제조업체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프랑스에서 와인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제조업체는 ‘장유와인’이다. 1892년 설립된 ‘장유와인’은 옌타이에 있는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업체다. 최근 ‘장유와인’은 중국 동부에 ‘와인시티’라는 이름의 새로운 와이너리를 건설했다. 이곳에는 매년 45만 톤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으며, 전문적으로 와인을 연구하는 와인 연구소도 자리잡고 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와인업계의 다음 혁신은 프랑스가 아닌 중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와인수입업체인 ‘와이주’의 창업자인 알렉스 리 역시 “지금은 중국산 와인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중국산 와인의 품질이 변하면 이 역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