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분향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때 일부 정무라인이 우왕좌왕하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민심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자체 판단을 내린 상황이라 김 전 대통령의 경우 갑작스런 ‘유고’에 대비, 선제적인 대응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3일 미열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가 폐렴이 악화돼 이틀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러다 병세가 차도를 보여 22일에 다시 일반병실로 옮겨졌다가 갑자기 폐렴증세 합병증으로 23일부터 8월 8일 현재까지 계속 병원 9층의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입원한 지 보름여 만인 지난 8월 1일 최대의 고비를 맞기도 했다. ‘복합장기부전’ 상태에 빠져 의료진에 비상이 걸렸던 것. 당시 병원 주변에서는 행정안전부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가능성에 대비해 세브란스병원 측과 장례문제까지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청와대도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유신 정권 때 몇 차례 사선을 넘은 ‘불사조’답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지금은 코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음식물 섭취량을 조금씩 늘리는 등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에 대해 “정신적으로 좋아지고 헤모글로빈 수치와 폐렴도 상당히 좋은 쪽으로 진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측근들의 안도와는 달리 의료계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쉽게 호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 의료진은 이에 대해 “양쪽 폐에 생긴 호흡 곤란 증세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언제든지 생체 지표가 정상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고령인 데다 만성신장병으로 투석 중이어서 회복 여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연세가 많고 여러 장기 기능이 떨어지면 복원력이 젊은 사람에 비해 턱없이 미약하게 마련이다. 폐렴이 생기면 신장이 나빠지고,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면역력이 저하돼 외부의 병원균과 싸울 수 없는 악순환이 거듭되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병세는 비관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정무라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건강이 대단히 위중하다고 보고 향후 그의 서거와 관련한 정무대책 수립을 위한 보고서도 이미 작성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일부 정무라인이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체 반성이 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서거 여파가 급속히 민심 악화로 전이돼 제2의 촛불정국 도래를 걱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김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서거 이후의 갖가지 돌발 상황을 가정해 국민장 매뉴얼도 점검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청와대가 가장 근심하는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제2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장례식 조사 낭독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김 전 대통령이 계속 현 정권에 독설을 날리며 갈등을 빚은 것이 청와대로서는 마음이 걸리는 대목이다. 자칫 김 전 대통령 서거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따른 충격으로 촉발된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이명박 대통령이 어찌 됐든 자신의 재임 기간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 죽음을 맞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청와대 정무라인은 ‘노 전 대통령 자살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일부 있다’는 민심 형성에 대해 대단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런데 향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마저 그런 시각에서 전파되면 가까스로 다잡아 놓은 ‘서거 정국’을 또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상황을 매우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청와대는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대비, 즉시 행정안전부 의전팀 라인과 연계해 전직 대통령의 장례 지원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한편, 그 예우에도 각별히 신경을 쓸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지난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 때 중요한 장면을 생방송으로 거의 날마다 중계했던 방송이 이번에도 ‘라이브 중계’를 할 경우에 대비한 민심 관리책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에서 한 차례 발등을 데인 청와대. 병상의 전직 대통령을 두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또 놀랄까봐’ 동분서주하는 그 모습에서 ‘실패는 이해할 수 있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슬 퍼런 채찍질이 오버랩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