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튀면 정 맞는다 …‘부자 몸 조심’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대권 전략이 ‘적대적 공존’에서 ‘우호적 연대’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한마디 정치’를 통해 여권 주류와 일정한 각을 세우며 차기 주자로서의 ‘웨이트’(중량감)를 키워나간 측면이 있었다. 그런 박 전 대표에게 ‘여의도의 대통령’이라는 찬사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친박그룹 내부적으로 ‘너무 멀리 솟아오르면 언젠가 주류의 대대적 반격에 직면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대권 전략도 수정 필요성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부자 몸조심’ 모드로 들어간 박 전 대표의 대권 전략 수정 배경을 들여다봤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한마디 정치’와 연동돼왔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쓴소리 효과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 셈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쇠고기 파동 당시 “협상 전후 정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직격탄을 필두로 “한나라당 법안이 국민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올해 1월 쟁점법안 논란 과정) “(이상득 의원의 정수성 사퇴요구는) 우리 정치의 수치다”(4월 재·보궐 선거)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7월 미디어법 논란) 등 중요한 시기에 현 정권에 목엣가시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여당 내 합리적 야당역할을 하면서 여당의 전통적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 심지어 야당 지지층까지 (박 전 대표를) 대안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한때 지지율이 40%를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미디어법 강행 처리 ‘협조’ 뒤 그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난 7월 미디어법 처리 뒤 박 전 대표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박 전 대표의 ‘여당 내 야당’의 포지션에 대해 지지를 보내던 수도권 무당파들이 그의 미디어법 ‘협조’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서서히 돌아서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전 대표는 미디어법 강행 처리 과정에서 작게는 5%p(포인트)에서 많게는 10%p 정도의 하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왜 박 전 대표는 미디어법 처리를 두고 막판에 ‘급 찬성 모드’로 선회한 것일까. 여기에는 그동안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최근 친박그룹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의 ‘이유 있는 전향’에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친박그룹의 한 전략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차기 대권 주자의 위상이 현 권력을 위협할 정도로 너무 커지면 그로부터 대대적인 반격을 받아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의 미디어법 처리 협조는 살아있는 권력의 대대적 반격을 우려한 데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친박그룹에서는 ‘국정 동반자로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2인자라는 ‘알’에 갇힌 박 전 대표로서는 1인자의 ‘보복’을 의식한 의도적인 방어였다는 것이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적대적 공존’이라는 전략 아래 ‘여당 내 합리적 야당 역할’을 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친이그룹이 재·보궐 선거 등과 관련해 협조 요청을 했지만 “먼저 진정성을 보이라”며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해 나갔다. 오히려 박 전 대표의 한마디는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를 훼손하는 위험성을 내포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여의도의 대통령’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당내 권력 구도가 이명박 정권 출범 1년 5개월여 만에 급속하게 미래권력으로 쏠리자 청와대에서도 권력 관리에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만약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처리 때 끝까지 반대의 길을 걸었다면 청와대도 외길 수순을 택했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회창 대선 후보의 살아있는 권력 누르기에 대로해서 끝까지 이인제 후보의 대권 도전을 막지 않아 결국 이 후보 낙선을 이끌어낸 결과를 보면 알 것이다. 이 대통령이 누구의 당선을 담보해줄 수는 없지만 ‘막돼먹은’ 후보의 낙선에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박 전 대표가 간파해 몸을 숙인 것이 미디어법 처리 협조로 나타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친박그룹도 박 전 대표의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친박 진영의 한 전략 관계자는 “역시 미래권력 박근혜 전 대표가 살아있는 권력 이명박 대통령의 벽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다”라고 말한다. 박 전 대표로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은 아직 역부족이란 점을 자인하며 대세에 편승한 것이 미디어법 처리 협조로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친이그룹의 또 다른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언론관계법에 반대표를 던진다면 이명박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 분당으로 갈 수도 있는데 이를 부담스러워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우호적 연대 모드로 선회한 것에는 정치 상황 변화와도 맞물린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만 해도 총선 불공정 공천 등의 이유로 친이그룹과 각을 세워나가는 게 명분이 있었다. 친박 진영 공천 탈락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공정 공천의 악몽이 1년을 훌쩍 넘어서 그 시효가 소멸할 시점이고(최근 박희태 대표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의 합당을 거론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재·보궐 선거 공천에서 ‘모두 친박 출신으로 해도 된다’라는 친이그룹의 유화론이 나오는 등 양측이 화해모드로 자연스럽게 접어드는 것도 적대적 공존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배경이 됐다.
대선이 아직 3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현재 지지율 1위는 신기루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대권 기지는 장외가 아닌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여당이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대두된다. 사실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처리에 끝까지 반대했다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를 부르는 ‘마술피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친이그룹이 ‘당이 박 전 대표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컨트롤 타워로 이 전 최고의 복귀를 주장한다면 친박그룹으로서는 골치 아픈 당권 분란을 자초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처리 협조를 한 것은 이 전 최고의 복귀를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설사 복귀하더라도 현 정권에 협조한 것을 명분으로 이 전 최고의 강경 모드를 희석시킬 수 있는 1석 2조의 카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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