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왕산 가파른 오르막을 몇 차례 넘고나면 10리에 걸친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 ||
가을의 시작이 저만치 달아난 푸른 시야에서였다면 가을의 끝은 은빛 출렁이는 억새밭에 놓였다. 창녕의 화왕산은 봄철 진달래평원만큼이나 억새 또한 이름난 곳이다. 경북 사람이라면 산악회든 MT든 무슨 명목으로든 한 번쯤은 올랐을 테니, 6만여 평 평원이 눈에 선할 것이다. 2~3년에 한 번 억새를 태우는 기간에는 불구경하러 전국에서 몰려들기도 하고 ‘작품’ 한번 내어볼 요량으로 무거운 카메라를 안고 산을 오르는 사진작가들이 몰리기도 한다.
구마고속도로에서 창녕읍으로 접어들어 창녕군청을 지나면 왼쪽으로 기암절벽이 모여 병풍바위를 이룬 산이 시야에 들어찬다. 그곳이 화왕산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화왕산군립공원이다. 가을이면 6만여 평의 억새가, 낮에는 은빛으로, 저녁에는 금빛으로 파도를 타며 시선을 잡는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우국충정이 서린 호국영산으로도 알려진 화왕산 정상부에는 화왕산성이 남아 있고 산성에는 옛날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화구가 못(용지) 형태로 세 개가 있다.
가을볕이 따갑게 쏟아지던 날 “10년 전 제 키를 넘던 그 억새밭이 궁금해요”라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한 등산객의 호기심을 좇아갔다. 10월 ‘억새축제’를 앞둔 창녕에는 평일에도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산행으로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등산로는 평탄한 편이다. 돌 계단이 많기는 하지만 다리에 무리를 줄 만큼은 아니다.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은빛 출렁이는 억새평원의 정상에 닿는다는 기쁨이 쉬어갈 틈도 주지 않는다.
▲ 화왕산 가는 길에 위치한 교동고분군. 이름도 생소한 ‘비 화가야’ 왕들의 묘역이다. | ||
하늘 아래 별세계의 순수자연을 만나려 땀 흘리며 올라온 등반객들에게 목좋은 정상부를 먼저와 점령하고 있는 상인들은 다소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식수를 구할 수 없는 산정에서 그들의 시원한 음료와 차가 있다는 건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하늘 아래 첫풍경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축제를 앞둔 이날도 자녀들과 함께 온 등산객이 많다. 아이들은 제 키를 넘는 억새들 사이로 술래잡기를 하며 깔깔거리고 연인들은 억새풀 사이로 호젓한 코스를 찾아 데이트를 즐긴다.
10리길이 넘는 억새밭은 트레킹 장소로 적격이다. 가을이면 대규모의 산악인 야간축제가 펼쳐진다. 전국에서 1만여 동호인들이 모여 산신제와 의병추모제를 열고 통일기원 횃불행진도 벌인다.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내려앉은 대규모의 분지는 몽글몽글 솜털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이곳 토박이들에 의하면 화왕산 억새밭의 진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각은 새벽녘이라고 한다. 안개로 뒤덮인 대규모의 분지는 천상의 선녀들이 내려온 듯 선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 산행길잡이 : 산행기점은 창녕여중 및 옥천리 매표소 두 곳이다. 가을의 억새 산행은 창녕여중─도성암─화왕산─창녕여중 코스가 무난하다.
창녕IC를 빠져 나와 10여 분을 달리면 이내 폐교가 된 옛 회룡초등학교에 닿을 수 있다. 창녕환경운동연합이 운영하는 우포생태학습원이다. 너비나 생태계 구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창녕 우포늪을 찾아가기 전에 기초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늪은 몇십년 전만 해도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도로가 나고 건물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개천 근처 같은 곳에서 말이다. 우포늪은 여의도에 버금가는 60만여 평의 늪지로 3백50여 종의 희귀 늪지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생태계의 보고’로서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곳. 초겨울이 오기 전에는 가시연꽃, 자라풀 같은 희귀 수중, 수생, 수변식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태풍에 의한 두 번의 범람으로 1억4천만년 전의 원시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메마른 억새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러나 태풍 탓만은 아니다.
호수가 땅으로 변하는 과정의 중간형태인 늪은 언젠가는 대지로 변하게 된다. 우포늪의 경우 완전히 대지로 변하기까지 기간은 약 3백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 하지만 그조차 사람들이 내다버린 생활쓰레기와 오염물질로 대지화가 더 가속화되어 간다는 얘기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원시 자연의 장관은 볼 수 없지만, 강둑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예전의 우포늪 사진과 비교해 보며 자연과 환경에 대한 좋은 공부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겨울철새의 낙원으로 알려진 우포늪에는 가을부터 고니, 쇠오리,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 등의 철새가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제대로 관찰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단체로 왔을 경우는 미리 우포생태학습원에 예약하여 기초적인 설명을 듣거나,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우포생태학습원 055-532-7856.
▲ 가는 길 : 구마고속도로 창녕 매표소를 통과해 첫째 신호등에서 우회전-우포생태학습원-우포늪.
▲ 창녕박물관 옆에 위치한 고분 모형(왼쪽)화왕산장.(오른 쪽 위), 폐교에 자리잡은 우포생태학습원 | ||
창녕의 가야시대 고분들은 창녕읍과 계성면, 영산면 일대에 많이 흩어져 있다. 크고 작은 봉분들이 구릉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자리를 틀었다. 높은 고층아파트 뒤로 죽은 자들의 무덤치고는 너무도 평화롭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고분들,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24번 국도가 고분의 무리를 1군, 2군으로 나누어 놓았고 그 길가에는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창녕 교동고분은 이름도 생소한 비화가야(比火加耶, 比自國) 왕들의 묘역이다. 비화(比火)는 ‘빛들(빛이 좋은 들 이란 뜻)’이란 이름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송현동 고분군과 함께 일제시대에 일부 발굴되었을 때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나 이후 1992년 동아대학 박물관이 발굴조사에 나섰을 때는 이미 대부분 도굴된 상태였다고 한다.거의가 빈 속인 이 가야의 무덤들은 5~6세기경 축조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 최대 크기인 7호분에서는 은제고리띠, 청동그릇, 출자형금동관 등이 출토됨으로서 가야세력이 신라에 편입되어 가던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고분 바로 아래 자리잡은 창녕박물관에는 출토된 유물이 전시돼 있고 비화가야에 대한 설명을 비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박물관 오른쪽에 위치한 계성면 고분의 모형은 지붕을 투명한 돔형식으로 만들어 고분 내부의 신비를 풀어준다. 창녕박물관 055-530-2246(매주 월요일 휴관).
▲ 가는 길 :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 창녕IC-우회전(우포생태학습관-우포늪)/좌회전 창녕읍 방향-교동고분-화왕산.
▲ 대중교통 : 서울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버스 하루 5회 운행. 혹은 대구에서 창녕행 버스 이용.
▲ 문의 : 창녕군 문화공보과 (☎ 055-530-22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