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에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과 정창욱 공정위 기업협력정책관, 김종태 롯데건설 상무, 정지연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실장, 정희섭 현대자동차 상무, 전지훈 주식회사 신일 대표,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공정한 거래질서와 신뢰에 기반한 상생 생태계 구축 필요성에 공감했다. 대·중소기업의 협력이 기존 금융지원이나 단가 조정을 넘어 기술혁신, 해외 진출, 탈탄소·디지털 전환 등 미래 산업 대응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상생협력을 단순 개별 기업 지원이 아닌 '시장 시스템 개혁'의 관점으로 바라봤다. 그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제모글루 교수의 연구를 인용하며 "소수가 성과를 독점하는 착취적 제도를 포용적 질서로 바꾸는 시장 개혁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과 산업 환경 변화에 맞춰 시장 규범 역시 재설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주 위원장은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났음에도, 성숙한 시장 시스템은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부의 편중과 양극화된 기업 생태계를 혁신 저해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우리 경제는 건실한 중견·중소기업이 부족하고 영세기업만 넘쳐나는 이른바 '압정형' 생태계"라며 "추격형 성장에서 벗어나려면 협력사의 생산성과 노동의 창의성이 기술혁신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한 게임 규칙도 주문했다. 주 위원장은 "반칙이 혁신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엄격히 세워 정당한 혁신 노력이 기업 성장의 길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글로벌 경쟁 단위가 국가별 산업 생태계로 확대된 점을 언급하며 상생협력을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으로 평가했다. 그는 "상생의 성과가 협력사의 재무 개선과 노동 보상으로 직결돼야 진정한 결실"이라며 "공급망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기업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상생 규범이 전 산업으로 확산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대기업을 대표해 나온 김종태 롯데건설 상무와 정희섭 현대자동차 상무는 각 회사의 구체 사례를 소개했다. 롯데건설은 협력업체 경영 안정과 공정거래, 현대차는 기술 경쟁력과 미래차 전환 지원에 무게를 뒀다. 산업별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협력사 성장이 원청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공통된 시각이었다.
롯데건설의 경우 총 1920억 원 규모의 파트너사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 자금을 활용한 무이자 대여금 150억 원, 기업은행과 공동 조성한 동반성장펀드 570억 원, 하나은행과 연계한 상생협력 금융지원 1200억 원 등이다.
건설업은 자재비와 인건비 변동이 크고 공사대금 지급 시점에 따라 중소 협력업체가 유동성 위기에 노출되기 쉽다. 롯데건설은 금융지원을 통해 협력사의 운영자금 부담을 덜고, 공사 중단이나 자재 구매 차질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김종태 상무는 "협력사의 경쟁력 향상을 지원하고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해야 건설산업 전체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다"며 "우수한 협력사가 일시적 자금난 탓에 어려움을 겪는 일만큼은 없도록 금융지원과 경영 안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협력사의 기술력과 생산성이 완성차 품질과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중소 협력사에 스마트공장 구축 등을 지원한다. 생산공정의 디지털화와 자동화, 품질 데이터 관리, 설비 개선 등을 도와 생산성과 납기 대응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도 운영한다. 자동차 부품업체는 철강과 알루미늄, 구리, 플라스틱 등 원자재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원가가 올라도 납품가격이 그대로면 협력사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이에 현대차는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면 납품대금에 반영해 협력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정희섭 상무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부담을 협력사 한쪽에만 전가해서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합리적인 납품대금 조정과 경영 안정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중소 협력사의 해외 판로 개척도 지원한다. 해외 자동차부품 전시회 참가와 바이어 상담, 수출 마케팅 등을 통해 협력업체가 현대차 외 거래처를 확보하도록 돕는 식이다.
정 상무는 "완성차 기업의 전동화 전환만으로 미래차 산업의 경쟁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며 "기존 협력사들이 미래 기술을 확보하고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여러 기관·기업에서 상생협력 제도의 사각지대와 개선 과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정지연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실장은 상생의 성과가 대기업과 1차 협력사에 머물지 않고 2·3차 협력사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원자재 수급 불안과 가격 상승의 충격이 공급망 하단의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며 "공급망 전체의 상생협력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정책 지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중소·중견기업도 평가를 받으려면 250쪽 안팎의 실적보고서를 준비해야 한다"며 "인력과 행정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한 '경량형 CP 평가 모델'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문했다.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도 제기됐다. 자동차 부품과 레미콘 사업을 하는 전지훈 신일 대표는 "현대차의 스마트공장 구축과 해외 판로 개척 지원 등을 경험했다"며 "자동차와 건설업계의 상생 문화가 과거보다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5~7년 사이 에너지 비용이 약 70% 올랐는데도, 납품대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문제를 꼬집었다. 에너지 비용 연동이 1차 협력사에만 적용되고 2차 협력사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원청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학계에선 규제와 자율적 인센티브를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도급대금 지급기일을 법으로 일률적으로 줄이면 단기간에 법 위반이 늘어날 수 있다"며 "자발적으로 지급기일을 단축한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식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발주자가 지급한 대금이 하위 협력사까지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전용계좌 기반의 상생결제 시스템을 에스크로나 신탁 기능을 갖춘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표준약관과 분쟁조정, 동의의결을 적극 활용해 처벌에 앞서 거래 당사자들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같은 요구를 듣고 "가능한 부분은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공급망 하위 협력사의 체감도를 반영하도록 동반성장·공정거래협약 평가 지표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소기업이 CP 평가를 위해 250쪽 안팎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문제를 놓고는 "불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이 소모되지 않도록 평가를 효율화하고,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한 별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포함한 사안 전반을 언급하며 "오늘 논의를 면밀히 살펴 공정거래 정책과 제도에 상생협력의 가치를 반영하겠다"며 "상생협력이 산업 전반의 거래문화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