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진의 옛정취가 난개발로 인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해돋이를 보려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 ||
일출을 보기 위해 밤새 달려온 새벽기차에서 내리는 그들에게선 젊음이, 그 어설픈 치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올 겨울 정동진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겨울연가를 쫓아 가보자.
정동진에 <모래시계>(94년 SBS 드라마)의 여파가 지나간 지도 벌써 9년째. 아직도 정동진역을 찾는 젊은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정동진역’ ‘모래시계와 고현정을 사랑하는 모임’ 등 동호회가 생겨날 정도로 인기도 변함없다. 비결은 무엇일까. 고현정, 그녀를 기다리는 소나무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정동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이 세상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라는 희귀성이다.
일찌감치 겨울바람으로 가득찬 정동진역. 새장에서 막 탈출한 어린 새들처럼 갑자기 얻은 자유에 들뜬 청춘들이 속속 기차며 고속버스로부터 뛰어내린다.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입시공부에 묶여있던 수험생들이 이맘때면 특히 많이 찾아온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야간 열차나 여행사의 투어상품을 이용해 찾아온다.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연인들. “왜 하필 정동진이냐”고 묻자 수줍은 듯 달아난다. 대답은 “그냥요”다. 해변과 기차가 어울려서인지, 모래시계의 사랑이 담겨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그리움이 쌓이고 사랑이 더 깊어지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정동진 주변이 음식점, 모텔과 러브호텔이 무분별하게 들어서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새벽 6시. 미리 도착한 이들은 일출( 6시55분, 11월 말 기준)을 기다리며 멈춰선 기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에서 새우잠을 자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정동진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동진의 성수기는 금요일부터 시작된다. 토요일 새벽이면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렵던 해변과 골목 등에 차들이 빼곡이 들어서고 넓은 해안에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일출을 기다리곤 한다. 여기저기서 나름대로 카운트다운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일부 장난기가 발동한 학생들이 겨울도 잊은 채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혼자만의 기차 여행에도 자주 이름을 떠올리는 이곳은 실제로 혼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바닷가를 거닐 때는 어느 때보다 용기가 필요할 듯. 얼음장처럼 싸늘해지는 뺨을 서로 녹여주는가 하면 해돋이를 향해 꼭 껴안은 연인들의 모습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더 절감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정동진을 찾아오는 깊이 있는 솔로들의 행진은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해돋이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역사를 빠져 나와 소나무가 있는 벤치, 모래시계공원, 절벽 위에 우뚝 솟아오른 선크루즈리조트, 해돋이 공원 등이다. 정동해변(일대의 고성목, 모래시계, 정동해수욕장을 통틀어 정동해변이라 부르기도 한다)에서는 바위들이 솟아 있는 그 뒤로 해가 떠오른다.
소나무 앞 계단에서는 일출과 함께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까지 장관을 이루고 해변 앞쪽에서는 오직 떠오르는 일출만 보이므로 골라서 즐겨보도록 하자.
▶여행메모 교통: 열차=청량리-정동진(해돋이를 보려면 23:00-05:28 기차를 타야한다. 약 6시간30분 소요)/ 고속버스=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강릉(20~30분 간격, 3시간~3시간30분 소요)-정동진행 시내버스 이용(일반버스 11번 12번을 이용, 막차 20시)/ 정동진익스프레스=매주 토요일 강남역 3번출구(031-501-9902~3, 나라종합금융 앞 10시 출발, 3시간 소요) / 렌터카=현지 소형차 6시간 대여(3만원, 현대관광렌터카 033-642-8900, 강원렌터카 080-646-5588)
음식: 권봉자할머니 순두부(033-644-5995), 정동진초당순두부(033-644-8856) 숙박: 수해복구차원에서 성수기 시작인 12월20일까지 숙박료를 할인해주는 곳이 많다. 민박은 3만5천원에서 5만원 사이. 성수기까지 50% 할인 행사를 하는 정동진호텔(033-644-5603)에서는 수능수험표를 가져오는 학생들에게 한해 20% 더 할인해주는 이벤트가 펼쳐진다.
▲ 겨울문턱 정동진역은 입시를 끝낸 수험생들이 몰려 금요일부터 붐비기 시작한다(맨위쪽). 가운데는 드라마영상기념관이고 아래쪽은 하조대 인근의 카페 ‘등대’. | ||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모래시계공원에서부터 차로 이동해야하는 헌화로, 금진항까지 돌아보는 데는 승용차로는 한 시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는 서너 시간 정도 걸린다.
정동해변과 이어져 있는 모래시계공원(lkm 거리, 무료주차)에는 12억원이라는 거액이 투자된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가 있다. 크기가 일정하게 만들어진 특수모래로 모래가 다 떨어지는데만 꼬박 1년이 걸린다.
또 1년을 주기로 대형 모래시계가 한 바퀴 돌아서 그 해의 띠를 나타내게 된다. 값비싸고 신기한 모래시계지만 공원을 둘러싼 무분별한 모텔과 장사치 덕분에 제대로 빛을 못보고 있는 듯하다. 모래시계공원 주변에서는 전망대가 마련된 고성산과 드라마 세트를 모아놓은 드라마영상관도 둘러볼 만하다.
정동진역에서 시선을 멀리 두면 가장 먼저 산 위에 ‘떠있는’ 배가 눈에 들어온다. 정동진 일대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해돋이 공원이 있는 곳이다. 모래시계공원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소요되지만 동해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동진역과 해변의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지 이곳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조각공원에서는 안동 하회마을의 조각가 김종흥씨가 만든 2백30여 개의 익살스런 장승을 포함해 7백여 점의 조각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 외에도 설화를 간직한 해안도로인 ‘헌화로’는 정동진 일출 다음으로 아름다운 볼거리다. 심곡마을에서 금진항까지 이어지는 헌화로(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최고다. 리아스식(톱니바퀴의 들쭉날쭉한)해안으로 도로까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넘나들어 아찔함을 맛볼 수 있으며 바람이라도 불면 자가용 위로 물벼락 세례를 맞곤 한다.
‘헌화가’에서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 곳이 이 부근일 것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헌화로’라 붙여졌다고 한다.
해안도로 곳곳에 ‘떡두꺼비 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이 흩어져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헌화로가 끝이 나는 금진항은 작은 항구마을로 선상일출을 볼 수 있는 유람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저렴한 값에 싱싱한 활어회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이동경로: 정동진역-정동진해수욕장, 모래시계공원(도보로 5분)-고성산, 등명락가사(차량으로 5분, 도보로 10분 이상), 해돋이공원(도보로 20분, 차량으로 5분)-심곡마을, 헌화로, 금진항(차량으로 15분 이상) 글•사진=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