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광인 채석강 퇴적암층은 근래 새만금사업으로 물길이 바뀌어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변산반도 다녀왔다며 자랑하더니 내변산은 모른다 하고 외변산이 어디있느냐 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변산의 아름다움은 내외(內外)가 유별한 데서 출발한다.
변산반도는 서해안의 남쪽 그리고 서쪽 귀퉁이의 작은 반도다. 3면이 바다로 열려있고 동쪽 한 면이 정읍 김제와 이어졌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속해 있지만 솔직히 어디에 속해 있다기보다는 그저 ‘변산반도’라는 자기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해안을 따라 한바퀴 완주를 한다고 해도 1시간30분이면 충분한 이 작은 반도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오래다. 그것은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한다는 뜻인 동시에 이 지역이 여느 지역과 구별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이다.
변산의 아름다움은 엄격한 내외(內外)의 구분에 있다. 일주도로가 휘돌아가는 해안쪽을 외변산, 산봉우리들이 이어진 곳을 내변산이라고 하는데, 각각의 목소리가 뚜렷하고 아름다움마저 비등하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반도의 중심을 차지하는 내변산은 낮지만 장엄한 암릉의 자태를 지니고 있다.
최고봉인 의상봉(509m) 주위로 옥녀봉, 쌍선봉, 관음봉 등 쉴새없이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있는가 하면 계곡사이로 훌륭한 폭포와 소(沼) 등이 있어 사시사철 등산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해안선을 따라 반도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외변산은 부드러운 모래에 수심이 얕은 해변, 물결같은 개펄 등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격포, 채석강, 적벽강 등이 명소다. 여름철 뜨내기 관광객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분명 채석강, 변산해수욕장과 같은 명소에 국한되지만 겨울 철새처럼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내변산 내소사의 잣나무터널과 천년 묵은 느티나무다.
빛나는 설경부터 정교한 문살까지 내소사 진입로 정면에 우뚝 솟은 내변산의 당당함이라니. 위엄만 가득한 표정이라기보다는 내소사를 아늑하게 감싸는 모양새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닮아있다. 태양의 축복을 골고루 끌어안은 듯 밝게 빛나는 길이었다. 서해안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변산반도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것이 내소사 설경이란 말이 이를 가리키는 것이었나 보다.
예로부터 길게 달아난 전나무 숲이 여름엔 그늘이 되어 고맙다고 겨울엔 하얀 눈 터널을 만들어 고맙다고 한다는 내소사는 변산의 가장 큰 보물이리라. 주차비를 포함해 다소 비싼 입장료를 치른 직후의 씁쓸한 마음도 잠시.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기까지는 2백 년 전부터 보존돼온 전나무 숲과 그곳의 눈 내린 풍경이 외마디 짧은 비명으로 전달된다.
▲ 방파제에서 바라본 낙조. 변산반도 주민들이 첫 손에 꼽는 일몰 풍경이다.(위), 내소사는 전나 무숲 눈터널부터 대웅보전 창살문양까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변산의 ‘보물’이다. | ||
천왕문을 지나면 한번 보면 잊지 못하는 내소사(633년)의 실체가 꿈결처럼 아늑하게 펼쳐진다. 일주문에서부터 바람이 잦아들고 따뜻한 기운이 있다했더니 역시 가람의 배치가 매우 특이하다. 우선 천년 묵은 느티나무가 환단의 중간을 차지하면서 사찰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좌우로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와 설선당이 조용히 대웅전을 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정면에 부드러운 3층 석탑을 넘어 단청을 벗은 대웅보전(보물 291호)이 살포시 앉아 있다. 변산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내소사에 오면 대웅보전 창호 문살을 유심히 살필 일이다. 오색 단청을 벗고 빛바랜 나무결을 그대로 드러낸 문살에 연꽃, 국화꽃이 사방으로 제대로 피어 있다.
세심하게 표현된 창살문양 자체가 현대미술의 걸작품 못지 않지만 그보다 어느 장인의 손길이 피워냈을 정성을 생각하면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못 하나 쓰지 않고 화려하면서 우아한 품격을 만들어낸 대웅전과 또 대웅전 오르기 전에 거쳐가는 봉래루(蓬萊樓) 역시 크기가 제멋대로인 자연석을 주춧돌로 쌓아 누각을 세우고 위뜰로 지나갈 수 있게 해놓아 여간 감동스러운 일이 아니다.
▶ 주변여행: 내소사 전나무 숲길에서 왼쪽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면 내변산 직소폭포까지 오를 수 있다. 겨울철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로 항시 눈이 쌓여 있으므로 아이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30번 국도를 이용하면 내소사에 도착하기 전 곰소만을 지나치게 된다.
곰소염전은 사라져가는 천일염의 마지막 표본이라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겨울이라 하얀 소금을 볼 수는 없지만 소금처럼 눈부신 눈이 내리는 날 풍경이 아주 걸작이다. 곰소항에는 젓갈장이 줄지어 있는데 근해에서 잡은 어패류에 곰소천일염을 사용하여 담근 곰소젓갈이 유명하다.
두개의 등대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해 방파제로 가는 길에서는 아낙네들의 입담이 정겹다. ‘어느 곳이 좋으냐’ 지나치듯 물어보면 작정이나 한듯 한차례 자랑이 푸짐하다. “격포 일몰이 멋지다고 하지만 여기 방파제에서 보는 그 맛 누가 알겠어. 두 등대 사이로 벌건 해가 떨어지는 거 안보면 모르지.” 저쪽 채석강도 꼭 봐야한다며 손까지 잡아끄는 어촌의 인심이야말로 낯선 고장에서 만나는 최고의 대접인 것이다.
겨울 아침의 햇살은 차가운 바람을 뚫고 와서인지 봄 햇살보다 고맙다. 궁항과 격포항 두 등대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감상하느라 시간이 달아나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격포항에서는 썰물 때면 매표소를 거쳐 채석강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부안의 최대 명소였던 채석강은 근래들어 많이 훼손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물길이 바뀐 탓이다. 오랜 침식을 받아 속살을 드러낸 해안절벽층이 켜켜이 쌓아올린 책더미같이 아슬아슬한 풍경을 보여준다. 세월의 풍파에는 못이기는 듯 조금씩 마모되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인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달빛 모습에 반해 물에 뛰어들었다는 중국의 채석강이란 지명에서 따왔다.
▲ 사라져가는 천일염의 마지막 표본인 곰소염전은 특히 눈 내리는 날의 풍경이 걸작이라고 한다. 곰소항에 줄지어 늘어서있는 젓갈장도 유명하다. 작은 사진은 변산의 별미 ‘바지락죽’. | ||
적벽강 근처에는 천연기념물 123호인 후박나무 군락과 서해 수호신의 사당인 수성당이 있어 둘러보고 가도 좋다. 격포마을에서는 음력 초사흘마다 수성당에 삼색 실과와 술, 포 등을 차려놓고 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풍습이 남아 있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부안IC 통과 후 바로 좌회전(부안군 관광안내소 사거리)-23번국도(좌회전)-30번국도-곰소-내소사-격포-변산해수욕장 대중교통은 강남고속터미널(02-6282-0600)에서 50분 간격,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1일 3회 부안행 왕복. 부안∼격포간 시내버스 수시 운행. 전주 군산 등에서 격포행 직행버스 수시 운행.
▶별미 추천: 변산반도 어디를 가도 ‘바지락죽’ 간판을 볼 수 있다. 바닷가라면 당연히 ‘회’부터 연상되겠지만 이곳에선 신선한 조개죽이 기본 메뉴다. 백합조개, 바지락 등으로 만든 죽이라 영양만점, 맛도 일품. 가격도 저렴하다. 격포항 입구 충청횟집(063-581-1818, 바지락죽 6천원, 백합죽 1만원) 등.
[Tip] 외변산 돌아보기
돌아보기 외변산을 둘러 볼 때는 어차피 반도를 한바퀴 돌아봐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부안에서부터 시계방향 코스나 반시계방향 코스로 선택하는 기로에 서게된다. 시계방향 코스는 부안-개암사-내소사-곰소항-격포-변산해수욕장, 반시계방향 코스는 부안-변산해수욕장-격포-내소사-곰소항-개암사-부안 순이 된다. 겨울 바다를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반시계 방향으로 진입하고 이름난 사찰 내소사와 개암사를 먼저 들르고 싶다면 시계방향으로 가야한다.
[Tip] 입장권 보관하세요
외변산 해안을 관광할 때는 어디든지 매표소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한번 끊은 입장권을 잘 가지고 있어야 다른 구역으로 들어갈 때 이중 매표를 하지 않게 된다.
[대중교통 일정짜기]
1. 서울 강남고속터미널-부안터미널(063-584-4735)을 이용한다. 1박2일로 갈 경우 격포에서 1박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서울-부안-격포터미널-내소사-곰소-부안). 내소사에 비해 여관 민박 등 숙박시설이 발달돼 있기 때문. 격포에서 일몰을 감상한 뒤 이곳 별미인 바지락죽을 먹어 보도록 하자. 시간이 된다면 적벽강과, 수성당도 둘러볼 수 있으며 다음날 내소사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격포항~내소사간 버스는 격포에서 1~2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2. 내변산 산행이 목적이라면 부안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곰소에 내린다. 곰소염전을 돌아본 뒤 10분 거리인 내소사로 이동한다. 내소사 입구에서 1박을 하고 새벽 산사를 돌아보는 것이 좋으며 왕복 3시간 정도 산행(직소폭포까지)을 할 수 있다(서울-곰소-내소사1박-격포-부안). 내소사~부안 사이는 20~30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다닌다. 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