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박희태 대표, 강재섭 전 대표, 김근태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 ||
지난 8월 27일 여·야는 일제히 10월 재보선을 향한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딛었다. 한나라당은 친이-친박 간 힘겨루기로 진통을 겪던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마무리 지었고 야권은 재야인사들이 총출동한 ‘민주통합시민행동’(가칭)을 설립하며 단일 후보론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 컨설턴트는 “한나라당은 지난 4월 재보선에서 패했던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갈등이 봉합된 것 같다. 야권 역시 한나라당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DJ의 유지이기도 한 민주세력 통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처럼 재보선 체제가 본격 가동됨에 따라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후보자들의 움직임 또한 분주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8월 26일 현재 경남 양산 12명, 안산 상록을 16명, 강원 강릉 8명이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엔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소위 ‘스타급’ 정치인들의 이름은 빠져 있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출사표를 던지는 이들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이번 재보선에 쏠려 있는 시선이 큰 만큼 그동안 중앙 정치 무대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거나 새롭게 진출하려는 중량급 인사들로서는 이보다 좋은 복귀 및 데뷔 무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출마로 전국적인 관심 지역으로 떠오른 경남 양산 역시 거물들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재보선 때부터 출마설이 돌았던 박 대표는 양산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일찌감치 여론몰이에 나선 상태다. 박 대표는 당선될 경우 6선으로 차기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가 되는데 ‘대표직 사퇴’를 불사하고서라도 출마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이를 염두에 뒀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러나 당내 상황이 박 대표에게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박 대표의 대표직 유지 여부를 놓고 친이-친박 간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 친이 측은 박 대표가 패하면 현 정권에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대표직을 내놓고 출마하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친박 측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를 앞당길 수도 있는 대표직 사퇴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박 대표 공천을 둘러싸고 지난 4월 재보선 당시의 계파 갈등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양산에서 17대 의원을 지낸 김양수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과 지난 총선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로 출마했다가 허범도 전 의원에게 3800여 표 차로 패한 유재명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이 박 대표와 하나뿐인 후보 자리를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권에서는 한나라당에 맞설 후보로 친노 인사 중 한 명을 단일후보로 내세우는 쪽으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경남 지역에 반 MB 정서가 확산되고 있어 당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친노 인사가 선봉장에 나선다면 박 대표의 저격수가 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386 인사인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이 이미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고 본인은 부인했지만 문재인 전 비서실장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역시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2004년 경남 남해 총선에서 막판 역전패하긴 했지만 박 대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바 있어 이번에 다시 ‘리턴매치’가 성사될 경우 양산은 최고의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경기 안산 상록을은 유일한 수도권 지역인지라 여·야 할 것 없이 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4월 부천 재보선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의 결과에 따라 10월 재보선의 명암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지역은 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의 ‘바로미터’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에게 더욱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칫 패한다면 최근 상승 기미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야당 역시 이기지 못할 경우 ‘정권 심판론’이 탄력을 잃을 수 있어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한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미디어 관련법 통과 이후 야당이 수도권 중심의 장외 투쟁을 벌인 것도 재보선을 위한 포석이란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석패한 이진동 전 당협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출판기념회를 갖고 “계층상생 지역화합 세대소통을 위한 정치를 해나가겠다”며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홍장표 전 의원의 부인 이은랑 씨가 예비 후보자로 등록하며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이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긴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지역의 중요성을 감안해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와 친박계 인사인 김재원 전 의원 등과 같은 거물급 인사들의 전략공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 특보와 김 전 의원 측은 “아직 결론 난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야권에서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이 지역에서 당선된 바 있는 임종인 전 의원이 가장 먼저 도전장을 던졌다. 또한 안산상록을 민주당 당협위원장인 김재목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도 “언론악법 원천무효 투쟁을 안산시민과 함께 전개할 계획”이라며 출마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이 지역에 대해 전략공천을 염두에 두고 있어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당내에서는 김근태 전 대표, 안희정 최고위원,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고 손학규 전 대표 역시 아직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수원 장안과 함께 이 지역에서의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의 민주당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지 않겠나. 친노는 물론 DJ 측 지분까지도 감안해야하는 상황이라 공천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나라당 강세 지역구인 강원 강릉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최욱철 전 의원이 친박 무소속 연대로 나와 당선된 곳이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친이-친박 간 한나라당 ‘집안싸움’이 선거의 1차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초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김해수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이러한 여권 내 갈등을 우려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다. 친박계인 심재엽 강릉시 당협위원장과 친이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권성동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나란히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1일 심 위원장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방문해 심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민주당은 ‘반 한나라’ 전선을 내세우며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강원도에서 현 정권의 ‘강원 홀대론’이 커지고 있어 한번 해볼 만하다는 보고서도 당 지도부에 올라갔다고 한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 홍준일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긴 하지만 중량급 인사의 깜짝 공천도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당내 일각에서 강릉 출신인 권오규 전 부총리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재보선 ‘판’이 커질 경우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역 의원은 9명이다. 이 가운데 2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된 사람은 문국현(은평을)·박종희(수원 장안)·안형환(서울 금천)·김종률(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의원 등 4명. 김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도권 지역 의원들이다. 대법원 판결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법원 측은 “정확한 (판결) 시기는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선거사범은 빨리 처리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재보선 지역구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추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수도권에서의 재보선이 현실화되면 ‘올드 보이’들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은평을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 여부가 관심거리다. 야권에서는 이 전 의원의 대항마로 김근태 전 대표,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등이 꼽히고 있다. 이밖에 수원 장안에서는 ‘전직 대표’들의 대결 시나리오도 들리고 있다. 강재섭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 다 아직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고 있지 않지만 모두 여의도 입성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실현 여부에 정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