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강만수 경제특보, 윤진식 정책실장 겸 경제수석,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 ||
청와대 비서진 개편과 함께 이명박 정부 경제팀의 역학구도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MB노믹스’를 만들어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윤진식 경제수석 등 실세 그룹이 전진배치된 반면, 위기 극복을 위해 들어온 ‘외인구단’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격랑 속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환율과 감세를 고집스럽게 주장하다 시장과의 불화, 금융위기 등으로 2선 후퇴했던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이번 청와대 비서진 개편에서 경제특보로 사실상 컴백했다. 강 특보는 이 대통령 경제정책의 핵심인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던 MB노믹스의 핵심 인물.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며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법인세 인화 등 감세정책을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동안 수출기업 중심 고환율 정책에 따른 환율 안정 실패, 시장의 불신 등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직을 내놓아야만 했다.
2선 후퇴 이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았던 강 특보는 이번 비서진 개편으로 일선에 한 걸음 다가섰다. 특히 대통령 경제특보는 다른 특보와 달리 상근직이다. 청와대 안에 머물면서 대통령에게 경제 분야 조언과 자문을 할 수 있는, 이른바 힘 있는 자리인 셈이다. 이로써 강 특보의 위상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 특보의 성격상 경제라인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강 특보와 함께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윤진식 경제수석은 이번에 복원된 정책실장을 겸임하면서 경제정책에 있어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정책실장 자리를 경제수석이 함께 맞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가에서는 윤 실장이 명실상부한 실권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윤증현 장관과 달리 이명박 정부 내에 일정 ‘지분’이 있는 데다 이 대통령의 구상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사 중 한 명이어서 이번 청와대 비서진 개편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친 서민 정책과 출구전략 시기상조론 등 이 대통령의 최근 경제정책 방향도 윤 실장의 아이디어로 알려졌을 만큼 영향력도 강하기 때문에 향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의 힘은 윤 실장에게 쏠릴 전망이다. 수석일 때와 달리 정책실장을 겸임하면서 상설 회의체인 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실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경제수석에 이렇게 힘이 실리면 재정부 장관의 힘이 약화되는 것이 인지상정. 윤 수석이 차기 재정부 장관 1순위로 꼽힌다는 점도 윤증현 재정부 장관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MB노믹스 입안자인 강 특보와 MB노믹스 전도사인 윤 실장’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경제정책의 청와대 라인의 힘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책 방향도 경제위기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던 MB노믹스가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증현 장관은 9월 개각 대상에서는 빠져 있지만 이러한 청와대 비서진 개편으로 인해 향후 경제 정책 추진 등에서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탓에 윤 장관이 발탁될 때 위기극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평과 함께 파격적이라는 평도 함께 받았다. 그만큼 이 정부에 지분이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한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윤 장관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켰고 환율은 안정시켰으며 과감한 재정집행으로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이겨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빠른 위기극복에 윤 장관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이 정부에 지분도, MB노믹스에 대한 공유도 없는 만큼 위기극복 이후 경제 정책을 그리는 청사진을 함께하기 어렵다는 점도 약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제개편안 처리와 부동산 불안 등을 놓고 정치권과 경제계의 반발이 커지면서 시험대에 오른 듯한 모습이다. 윤 장관은 지난 8월 25일 세제개편안 발표를 통해 내년에 예정대로 법인세와 소득세 2단계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대기업에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던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등을 폐지해 10조 5000억 원을 증세하는 방법으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에 따른 감세분을 채워 넣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부터 반대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법인세와 소득세의 인하를 2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법안 제출에 나섰고 여당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다.
또 친 서민 정책을 유지하며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고소득·대기업에 대한 세금을 늘렸다고 밝힌 것과 달리 영리학원에 대한 부가세 부과, 4개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부과, 장기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 폐지 등 서민을 대상으로 한 세금이 더 늘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 장기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 폐지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재정부가 기존 가입자나 서민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며 백기를 든 상태다.
그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리는 것도 부담이다. 그동안의 경험상 부동산 정책이 실패할 경우 다른 경제정책 성공은 빛이 바래는 것이 다반사다. 노무현 정부는 주가지수 2000포인트 선 돌파, 물가 안정 등의 공에도 부동산 가격 급등 등 전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더 크게 받으며 낙제점을 받았다. 윤 장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윤 장관이 개각 이후 향후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휘하의 재정부 관료들은 개각 이후 자리에 대해 촉각이 곤두서 있다. 다른 부처에 비해 승진이 가뜩이나 늦은 데다 인사적체가 심한 탓이다. 또 윤 장관이 강 특보와 달리 이 정부의 실세가 아니다 보니 힘을 발휘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 강 특보가 장관을 맡았던 시절에는 1급으로 승진시킨 재정부 국장이 20명에 달했다.
차관 자리는 2개지만 1급 고위 공무원은 외부에 나가 있는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15명이나 된다. 차관 승진 대상자가 넘쳐나는 셈이다. 과거 같으면 통계청장 등 외청장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이미 이 자리는 민간 전문가에게 넘어간 상태다. 장수만 국방부 차관처럼 전혀 다른 부처를 노릴 수도 있지만 예산 삭감 논란 등에서 보이듯 해당 부처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7자리에 불과한 재정부 내 1급 자리를 노리는 국장급 인사도 넘쳐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차관이나 1급을 맡고 있는 행시 23, 24회 동기들이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