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정세균대표 (오른쪽)손학규 전 대표 | ||
손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이 메가톤급 후폭풍을 불러온 것은 ‘불가측성’ 때문이었다. 출마 요청을 위해 그를 접촉했던 당내 인사들은 “최대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당 지도부도 “자신의 정치일정을 감안해서도 안 나올 리가 없다”며 ‘삼고초려의 예우’를 갖추는 데만 ‘올인’했다. 특히 지난 4월 재보선에서 ‘공천 파동’으로 민주당을 등졌던 정동영 의원과 달리 수도권 선거 승리를 위해 맹활약했던 손 전 대표였기에 충격은 배가 됐다.
이에 따라 손 전 대표의 진짜 ‘속내’를 놓고 당 안팎에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당사자인 손 전 대표는 불출마 선언 뒤 사실상 ‘잠행’에 들어가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현재로선 그가 직접 쓴 ‘불출마 사유서’가 의구심을 풀어줄 유일한 단서다. 손 전 대표는 지난 9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성이 끝나지 않았습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불출마에 따른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어려울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며 “내 한 몸이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원내에 입성하는 게 국민의 슬픔과 분노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손학규가 나가 이겨서 민주당을 살린다는 생각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며 “지명도와 지지도가 높은 ‘거물’로 당장의 전투를 이기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전쟁을 이기는 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은 찬바람을 맞고, 험한 길을 헤치며 처절한 각오로 자기단련을 해야지 보약으로 당장 기력을 회복하려고 해선 안된다”며 “스타플레이어가 혼자 깃발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병사를 장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을 접한 민주당 인사들은 대부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지금은 한가롭게 당을 훈계할 게 아니라 힘을 보태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재보선 패배를 유도해 정세균 체제 조기 붕괴를 유도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관측도 제기했다.
지도부도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손학규 카드’를 통해 수도권 싹쓸이를 기대했던 당 지도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박지원 정책위의장)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불출마할 작정이었으면 진작 할 것이지 한 열흘 장사 잘 하고 나서 그러는 건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며 “당 지도자로서 실망스러운 결정이며, 당의 위기를 외면했다는 비판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 전 대표와 가까웠던 의원들 중 상당수도 이런 반응을 보였다. 2007년 대선 경선과정에서 손 전 대표를 도왔던 안민석 의원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이번 재보선은 필패할 것이고 그 일차적 책임은 손 전 대표가 고스란히 져야 할 것”이라며 “손 전 대표가 (우리를) 저버린다면, 그 다음 차례는 우리가 손 전 대표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입장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손 전 대표를 만났던 당내 인사들은 그가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후배이자 측근인 현 이찬열 지역위원장이 다져놓은 수원 장안에 출마하는 게 정치적·인간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전했다.
당 지도부의 안이한 정국대응 비판에는 일부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손 전 대표의 측근인 정봉주 전 의원은 “무엇보다 당이 대응요법으로 위기를 풀어가는 방법론이 탐탁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오기 힘들다는 고민이 크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다소 격앙된 반응도 감지됐다. 손 전 대표 측 한 인사는 “왜 손학규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지난 총선 때도 ‘강남에 출마하라’ ‘비례대표는 꿈도 꾸지 마라’며 얼마나 많은 부담을 지웠는지 모른다. 아직도 손학규를 ‘한나라당 출신’으로 인식한다는 방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안팎에선 이번 불출마를 계기로 손 전 대표가 “정세균 체제에 힘을 실어줄 의사가 없다”는 점을 공식화했다는 평가다. 자신의 선거 승리가 정 대표의 당 장악력만 키워주는 결과로 귀결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보약으로 당장 기력을 회복하려고 해선 안된다”는 손 전 대표의 ‘일침’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지적이다.
한 재선의원은 “정 대표가 당권을 확실히 쥐고 있고, 과거 측근 상당수도 정 대표 진영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손 전 대표가) 원내에 들어와 봤자 운신할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을 것”이라며 “때를 더 기다리겠다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정 대표 역시 ‘손학규 파동’을 서둘러 수습하며 ‘더 이상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정 대표는 지난 22일 손 전 대표와 김 전 의원 전략공천 논의를 중단하면서 “이번 재보선은 내 힘으로 치러 꼭 승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장상 최고위원을 수원 장안에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한 것은 다분히 ‘손학규 견제용’이라는 평가다. 앞서 손 전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측근인 이찬열 지역위원장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결국 전략공천이 당의 출전 요구를 외면한 손 전 대표에 대한 ‘보복조치’ 아니냐는 것이다. 이 위원장도 장 최고위원 전략공천 논의에 강력히 반발하며 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당의 한 전략통 인사는 “측근인 이 위원장의 공천을 당부했던 손 전 대표의 의사를 묵살함과 동시에 손 전 대표의 선거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선거에서 지더라도 ‘손학규의 불출마 때문에 졌다’고 핑계를 댈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 대표가 이번 재보선에서 소기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당내에 잠복해 있는 ‘조기 전대론’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당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연대 이종걸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칙과 명분이 없는 공천 전략과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당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고 정 대표를 비난하고 나서, 재보선 성적표에 따라 손 전 대표의 조기 복귀 등 민주당 내 역학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