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박지성축구센터 기공식에서 만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왼쪽)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호남을 제외한 수도권(2곳) 경남 강원 충북 등에서 치러져 사실상의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3곳 이상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 역시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지난 4월 재보선에서의 압승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천 후폭풍에 따른 무소속 출마와 야권 단일화 등 변수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대부분의 정치권 인사들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여당이 열세를 면치 못했던 역대 재보선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그만큼 한나라당과 야권의 피 말리는 접전이 예상되는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10월 재보선에서 과연 누가 미소 지을 수 있을지 그 관전 포인트를 따라가 봤다.
“지금까지는 3승 2패로 한나라당 우세지만….”
지난 10월 7일 민주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현재 재보선 판세가 한나라당에 비해 열세임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하지만 이 의원은 “공천을 빨리 끝내고 일찌감치 선거 체제로 돌입한 한나라당이 앞서나갔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우리가 많이 따라잡았거나 일부이긴 하지만 3승 2패로 앞서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대로 가면 우리가 3~4곳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록 기선 제압엔 실패했지만 손학규(수원 장안) 문재인(경남 양산) 김근태(안산 상록을) 등의 거물급 인사들을 각 지역구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며 여론 반전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초반보다는 좁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수원 장안과 경남 양산의 경우 이기고는 있지만 그 차이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 “안산 상록을 등에서 단일화된 야권 후보가 나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권성동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출마하는 강원 강릉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이 위태롭다는 어두운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도 “뚜껑을 열어봐야 하겠지만 한나라당이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들로 안심하기엔 이르다. 수도권 두 곳 모두를 잃는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가 지난 4월 재보선 때와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40~50%대를 유지하고 있어 야당이 주 장하는 ‘정권 심판론’이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핵심 고위관계자는 “이 대통령 지지도가 재보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지금 분위기라면 3곳 정도는 이기지 않겠느냐.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은 선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역전승’을 노리고 있다. 역대 재보선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 4월 재보선에서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도는 50%대를 기록했으나 정작 열린우리당은 단 한 곳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또한 30%를 밑도는 재보선 투표율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 지지가 투표행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민주당에겐 희망적이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오히려 이번 재보선이 민주당에겐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민심을 측정할 수 있는 수도권 2곳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이 대통령 지지율도 주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야가 저마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수원 장안에서의 결과가 이번 재보선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찬숙 한나라당 후보와 이찬열 민주당 후보의 ‘2파전’ 양상을 띠고 있는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우세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박종희 전 한나라당 의원(투표율 58.84%)이 이찬열 후보(38.20%)를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 수원 장안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민주당이 ‘필승 카드’로 점찍은 손학규 전 대표 공천에 실패한 이후 ‘무혈입성’을 내심 바라던 한나라당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한 듯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선거를 치르는 정몽준 대표는 지난 2일과 6일 잇달아 수원 장안을 방문해 박찬숙 후보 지지유세를 펼쳤다. 또한 당 공천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던 신현태 전 의원과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희정 시의원(무소속)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박 후보에게 힘을 보탰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당에서도 이 지역을 최대 전략지역으로 꼽고 있다. 열세지역으로 분류되는 안산 상록을에서 패하더라도 수원 장안에서 승리하면 우리로서는 이긴 선거 아니겠느냐”라고 밝혔다.
이찬열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한껏 고무된 민주당 역시 선대위원장을 자청한 손 전 대표를 필두로 대대적인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손 전 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찬열 후보 같은 사람을 키움으로 해서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키워나가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인물 지명도에서는 이찬열 후보가 박찬숙 후보에게 밀리지만 ‘지역 토박이’라는 점과 손 전 대표의 ‘후광’이 효력을 발휘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듯 수원 장안은 정몽준-손학규 두 대권 예비주자들의 ‘대리전’으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누가 이기든 패자는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고 승자는 ‘잠룡’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 대표는 수원 장안에서 질 경우 당내 지도력에 손상을 입을 뿐 아니라 책임론에 휩싸이며 잠잠하던 ‘조기 전대론’에 다시 노출될 수 있다. 손 전 대표 역시 이찬열 후보 공천과정부터 깊숙이 관여하며 사실상 선거의 막후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패하면 그 멍에를 뒤집어 쓸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치인 손학규’로서의 득표력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손 전 대표에게 뼈아플 듯하다.
◇ 안산 상록을
수원 장안과 함께 또 다른 수도권 지역구인 안산 상록을은 여야 모두 ‘민주당 우세’로 꼽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는 홍장표 전 친박연대 의원이 32.21%의 득표율로 이진동 한나라당 후보(28.09%)를 따돌리고 당선됐지만 당초 안산 지역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여온 곳이다. 지난 15·16대 총선에서도 김영환 전 민주당 의원이 당선됐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출마하지 않았던 김 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다시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국회 진출을 노리고 있다. 지난 8일 있었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김진표 송영길 김민석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며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민주진영이 요구하고 있는 ‘반 MB연대’에 따른 단일화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무소속 임종인 의원은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하자”며 민주당에 공식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 역시 환영 의사를 나타냈지만 정치권에서는 단일화 방안 등을 놓고 이견이 커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 중진 의원도 “단일화 없이 선거를 치르더라도 김영환 후보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민주진영이 단일화에 실패해 야권 표가 분산되면 웃을 법도 하겠지만 지금 그럴만한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내홍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산 상록을 지역구 당원 156명이 송진섭 전 안산시장을 공천한 데 반발해 집단 탈당계를 냈고 지난해 총선에 출마했던 이진동 전 당협위원장 역시 출마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안산 지역에서 13·14대 의원을 지내며 상당한 득표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장경우 전 의원도 자유선진당 후보로 이번 재보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 경남 양산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수도권 2곳 이외에 경남 양산도 전국적인 시선을 끄는 재보선 지역구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거물급’에 속하는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노 인사인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이 맞붙기 때문이다. ‘급’은 다소 다르지만 현 정권과 전 정권 인사 간 ‘빅 매치’가 성사된 것이다. 당초 민주당은 박 전 대표 ‘대항마’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낙점했지만 본인의 고사로 실패했고 대신 송 전 비서관을 내세웠다. 대신 문 전 비서실장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할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노 인사는 “우리는 한나라당 ‘텃밭’에서 한나라당 전직 대표와 싸운다. 져도 본전이다. 그러나 만약 이기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모색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지 않겠느냐. 여론조사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경남 양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많은 곳이라 의외의 승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만에 하나 현 정권 실세였던 박 전 대표가 패하면 야권이 내세운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론’이 설득력을 얻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아직 내부 ‘교통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한나라당의 근심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김양수 전 의원과 친박계인 유재명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친여 성향 표가 분산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은 “여론조사 결과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기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증평·진천·괴산·음성
가장 마지막으로 재보선에 탑승한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승리를 낙관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로 충청권 민심이 돌아섰을 뿐 아니라 후보로 내세운 정범구 전 의원의 인지도가 제주지검 검사장 출신인 경대수 한나라당 후보보다 앞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충북지역은 민주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전체 8석 중 6석을 휩쓸었을 만큼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민주당 내부에서는 수도권 2곳과 함께 충북지역을 승리해 “중부전선을 싹쓸이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경대수 후보가 정범구 후보를 5~7%포인트가량 앞서 있다며 안도하고 있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김경회 당협위원장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공천 후폭풍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 강원 강릉
강원 강릉은 ‘한나라 우세’로 정치권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냈던 권성동 후보가 독주하고 있는 것이다. 홍준일 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송영철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고 나머지 예비후보들도 합종연횡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권성동 대세론’엔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대해 홍 후보 측은 “비한나라 후보들이 뭉쳐서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 현 정권의 ‘강원 소외론’에 불만을 가지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권 의원 측은 “힘 있는 여당 의원에 대한 기대가 크다. 후보 단일화가 이뤄져도 승리는 무난할 것으로 본다”고 되받아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