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래 원내대표(왼쪽)와 박지원 정책위의장. | ||
이 원내대표와 박 정책위의장의 충돌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난 9월 3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다시 벌어졌다. 박 정책위의장이 공개적으로 원내총무단을 비난하며 언성을 높였던 것. 당시 그 모습을 목격했던 한 기자는 “원내총무단이 국정감사 상황실 현판식을 정책위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해 발생한 일이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박 의장이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떠올렸다. 이 원내대표가 “제 불찰이다. 앞으로 잘 협조해 국정감사를 치르자”고 해 수습됐지만 이 날의 ‘사건’으로 둘의 불화설은 점점 증폭됐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회의하다 보면 의견이 안 맞을 수도 있는 것이고….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두 의원 측 사무실 관계자들도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며 부인했다.
이 원내대표와 박 정책위의장이 마찰을 빗자 정치권에서는 둘의 오랜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이강래)과 공보수석(박지원)으로 함께 일했지만 둘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강래 정무수석이 임기 8개월 만에 조기 낙마한 것을 두고 박 공보수석을 비롯한 ‘동교동계’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강래 수석은 굴러 들어온 돌이었다. 청와대 내에서도 그에 대한 견제는 상당했던 것으로 안다. 정권 초대 정무수석에 이강래가 내정되고도 문희상으로 막판에 바뀐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무수석 사퇴 후 이 원내대표는 국회로 돌아와 16·17대 의원을 지냈고 박 정책위의장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그리고 18대 국회에서 나란히 당선되며 다시 만난 것이다.
민주당에서 한 배를 타게 됐지만 둘의 ‘악연’은 계속됐다. 지난 5월 원내총무 경선에서 맞붙은 것이다. 결과는 이 원내대표의 승. 박 정책위의장은 쓴잔을 마셨지만 지난 8월 당 3역 중 하나인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DJ 조문 정국 이후 당내 입지가 강화된 결과였다. 또한 인사청문회에서는 ‘저격수’로 명성을 떨치며 주목받기도 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처럼 박 정책위의장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이 원내대표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최근 불거진 갈등의 배경 중 하나라는 시각도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당을 이끌어갈 양대 산맥이다. 둘이 불협화음을 낼 경우 제대로 된 야당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