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관차 아래로 지뢰 수두룩
하지만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 후유증과 부동산 거품 가능성이 여전히 경제 위기의 발목을 잡고 있고, 집권 2년차를 맞은 여권 내부의 비리 ‘휴화산’ 등도 그에 못지않은 악재로 도사리고 있다. 이에 청와대에도 지지율 고공 행진에 대한 경계령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은 아닌지, 지지율 고공행진 뒤에 숨은 추락의 그림자를 따라가 봤다.
“탁, 탁, 탁.” 지난 10월 어느 날, 청와대 본관에서 멀찍이 떨어진 춘추관의 오전 표정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주류 일간지와 방송사 출입기자가 춘추관 2층에 놓인 탁구대에서 한가롭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 출입기자는 춘추관의 좁은 마당에서 운동부족을 보충하려는 듯 연신 자전거 페달을 ‘쳇바퀴 돌리듯’ 돌리고 있었다. 언론사별 부스가 설치된 기자실도 방학 때의 늘어진 독서실을 연상시켰다. 출입을 체크하는 데스크 한켠에는 등록만 해놓고(약 300여 명의 기자가 등록돼 있음) 출입은 하지 않는 언론사의 등록증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춘추관 운영비만 내고 출입을 하지 않는 기자가 상당히 많은데 우리로서는 이익 보는 장사”라며 농을 건넨다. 권부의 핵심 중 핵심인 청와대를 감시하는 기자들이 모인 곳임을 말해주는 유일한 징표는 정문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춘추관’이라는 현판뿐이었다.
이런 평일 오전의 춘추관 분위기는 현재의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양측의 ‘돈독한’ 관계는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다. 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이번 국감에서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에 의해 언론중재위에 조정신청이 청구된 내역’을 분석한 결과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언론에 대한 청구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변 의원은 “전국지에 대한 청구건수 33건 중 <한겨레> 10건, <경향> 7건으로 전체 조정신청청구에서 52%를 차지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행정부에 의한 조정신청청구가 비판적 언론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른바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의 정부 비판 기사가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신문사들이 내년 종합편성채널 진입을 앞두고 현 정권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 어떤 통신사는 신사옥 건립을 앞두고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에 비판 논조가 약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더라. 그래도 그렇지 노무현 정권 때에 비해 메이저 언론사들의 현 정권 비판 기사가 너무 줄어든 것 같다. 이런 언론의 감시 기능 약화는 비리의 확대 재생산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G20 개최’에 대한 특별 기자회견의 경우 춘추관 2층이 아닌 청와대 내부에서 ‘초청받은’ 출입기자 30명 정도가 참석해 사전에 조율된 일문일답이 ‘연출’됐다. 이 ‘사건’을 두고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이건 좀 너무했다”라는 말들이 있을 정도로 현 정권과 언론은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류 언론과의 우호적 관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떠받치는 주요한 버팀목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권을 보더라도 언론과 영원히 좋은 관계를 맺은 예는 없다. 통상 정권과 언론의 밀월 시기가 6개월 정도임을 감안할 때 이명박 정권은 ‘특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의 한 컨설턴트는 “하지만 내년 종합편성채널이 확정되고 지방선거를 거치게 되면 이 대통령도 언론의 집중적인 견제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에는 언론 프리미엄이라는 거품이 끼인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 제고에 큰 몫을 했던 친서민·중도실용 행보도 차츰 위협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국면에 안착한 데에는 ‘정운찬 총리 영입 효과’가 매우 큰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정 총리가 현 정권의 취약한 부분인 친서민·중도실용의 대표주자로 적극 나서면서 수도권 민심이 호전됐고, 민주당 견제효과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총리는 국감 과정에서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고문, 한국신용평가주식회사와 일본 대기업 연구소 이사 등으로 재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한 번 신뢰성에 먹칠을 했다. 그에 대한 의혹이 ‘까도 까도 나온다’고 해서 ‘양파 총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이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에 분명 악재다. 여권에서는 벌써부터 ‘정운찬 효과는 끝났다’는 비관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것을 대체할 재료를 찾지 못하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 하나가 빠지면서 고공행진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를 그리는 이면에는 민주당의 ‘지리멸렬’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상대방이 죽을 쑤니까 당연히 그 반사이익을 누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민주당이 10월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정세균 대표 체제의 교체 등과 같은 대대적인 개혁을 통한 반격의 진용을 갖출 경우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타격이 있을 전망이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정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권 재장악 시나리오가 널리 퍼지고 있다. 정세균 대표가 현안 대처에 급급해 돌려막기식의 땜질 처방으로 일관, 집권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대적인 당 쇄신 요구가 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박지원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한 구 민주당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정동영 의원이나 손학규 전 대표가 대권을 차지하는 ‘투 트랙’으로 당의 쇄신작업이 이뤄질 경우 이명박 대세론에 맞서는 최소한의 반격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 효과’ 등과 같은 호재로 인한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이 이 대통령 지지율 잠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세종시 논란’도 여권으로서는 충청 민심을 잃을 수 있는 악재 중 하나다.
정치변수 외에 경제적 대외 환경도 이 대통령에게 꼭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사실 경제라는 화두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유지에 있어서 칼의 양날과 같다. 그의 지지율 회복이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지렛대 위에서 그 단초를 찾았지만, 만약 그런 해석이 사실이 아니거나 부풀려져 내년에 다시 ‘더블딥’(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으로 최근 국감에서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 사이에서 그 탈출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음)이 찾아올 경우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정도로 그 파괴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청와대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나라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자”라며 끊임없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소장파 그룹은 이에 대해 “경제위기를 완전히 극복한 것이라기보다 언론 환경이 친여 성향을 띠면서 생긴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우려한다. 특히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일부에서는 광의의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와 부동산 신화의 몰락 가능성(“구조적 측면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는 단지 지연됐을 뿐이며, 물밑에서 버블 붕괴의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위협하는 가장 큰 경제적 변수로 꼽힌다. 이명박 정권이 경제위기 극복에 치중한 나머지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보다 포퓰리즘에 치우친 대증요법에 너무 의존해 선심정책을 남발한 나머지 결국 다음 정권에 ‘거덜 난 경제’를 넘겨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여의도의 한 정책보좌관은 이에 대해 “요즘 관가에서는 ‘청와대 직원들이 완장을 차고 공무원들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과격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청와대의 파워가 세다 보니 공무원들이 주무부서에 불려 다니는 게 아니라 청와대 위원회나 경제수석실로부터 호출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부처와 청와대가 주요 정책을 조율할 때 장관과 위원장, 수석 비서관 등이 만나 논의를 했는데, 최근에는 위원회나 수석 비서관이 직접 경제부처 간부들을 불러 회의를 주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라고 밝히면서 “그래서 청와대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공무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대책을 만들어 바친다고 한다. 이렇게 ‘행정’을 모르고 ‘정치’만 아는 청와대의 ‘이명박 키즈’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단기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경우 다음 정권에서 그 설거지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청와대 측대로 최근의 지지율 고공행진이 신경 쓰이는 눈치다.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체득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대형 악재는 나오지 않았으나, 부담스러운 문제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촛불정국에 데인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꺼진 불도’ 다시 보는 게 청와대 정무라인의 최대 화두다. 촛불정국도 청계천의 촛불 하나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의식, 공론화될 만한 사안 하나하나를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원칙 아래 최대한 기민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70%가 넘는 국민이 ‘친서민정책을 실감 못하겠다’고 답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처럼 각종 정책에 대한 청와대와 서민의 온도 차는 여전하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근본적인 ‘화마’를 잡지 못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장마 속에서 잠깐 반짝이는 햇빛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MB 정권 내부폭발 가능성
정권 2년차 증후군 ''부글부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50%대에 안착했지만 정작 청와대 내부에서는 ‘경계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향후 정국운영의 최대 걸림돌로 ‘오만’을 꼽기도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내부 비리에 의한 자멸’이다. 김대중 정권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최근 “이 정부에서도 슬슬 ‘정권 2년차 증후군’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경고한 것도 이 대통령이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사건 의혹과 여권 관계자들이 다수 연루된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 정순영 씨의 비리 사건은 집권 2년차 증후군을 열어젖힌 대표적 사건이다. 전자의 경우 대통령 사돈기업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의 공정성이 이명박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후자는 정 씨의 로비 방식과 그 광범위한 대상이 화제가 되면서 ‘판도라의 상자’ 개방 여부에 따라 파문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가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정치권을 전전하며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는 ‘구 여권’ 인사들도 주목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집권 이후 일일이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들을 챙길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 불만세력들이 많다. 특히 보수세력이 10여년 만에 집권했기 때문에 여권에서 소화해야 할 인사들이 적체된 상태다. 이들은 집권 2년이 돼도 별다른 자리를 받지 못하자 정권 실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일종의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잡음이나 비리가 생길 소지가 많다.
또한 이명박 캠프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던 일부 인사들은 현 정권의 ‘X파일’을 다수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자신들이 변방으로 떠돌 경우 ‘자폭용’으로 내부 비리 공개를 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최근 기자는 지난 대선 때 BBK 사건을 두고 ‘음지’에서 큰 역할을 했던 한 인사가 그 ‘보상’ 문제로 현 정권 실세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첩보를 여권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하기도 했다. 이 인사가 ‘원만한 타협을 하지 못할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폭로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선 관련 문제는 청와대 직원의 기강 해이 같은 ‘소소한’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권 지지율 유지의 아킬레스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
[단독] HID 지휘 체계 무력화…정보사 비상계엄 사전준비 정황들
온라인 기사 ( 2024.12.13 17:05 )
-
[단독] '비선' 방증? 윤석열 대통령 12·3 계엄선포 담화문 '서류봉투' 미스터리
온라인 기사 ( 2024.12.13 15:21 )
-
김건희가 직접 증인으로…‘코바나’ 사무실 입주사 대표 가족-최은순 소송 판결문 입수
온라인 기사 ( 2024.12.12 1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