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년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의원단이 비대위를 구성, ‘행정수도이전 반대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
지난 13일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수도분할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 도시의 개념을 바꾸는 목적에서 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중심도시’에서 ‘기업중심도시’로 전면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특위에 참여한 친박계 의원들은 정부의 수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특위의 활동 자체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친이계 측은 세종시 특위를 출범시키며 활동시한을 ‘정부 수정안이 나올 때까지’라고 정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혹도 불러오는 실정.
세종시법 논란으로 친이계와 친박계가 갈등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16대 대선 당시 내놓았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무산되면서 그 대안으로 등장한 세종시법(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은 그간 한나라당 내에서 치열한 계파 다툼을 야기해왔다. 야당이었던 당시에도, 여당이 된 지금도 세종시법을 둘러싼 친이계와 친박계의 마찰 양상은 비슷하다. 당시엔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로서 열린우리당과 합의한 당론에 대해 당내 한 계파였던 친이계가 강력히 반발하며 지금과는 반대의 양상을 연출한 바 있다.
2005년 3월 세종시법이 국회를 통과했던 그 시점을 전후해 차기 대권주자로서 경쟁자였던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진영 간에 벌어졌던 상황을 되짚어보자.
세종시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이전까지 한나라당과 열리우리당은 오랜 공방을 벌여왔다. 열린우리당이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을 살리자며 내놓은 ‘행정중심도시안’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던 상황. 그러나 충청지역 민심을 간과할 수 없었던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행정중심도시안’에 ‘다기능복합도시안’을 절충한다는 조건으로 세종시법에 합의하고 의원총회에서 표결(찬성 46 대 반대 37)로 합의안을 최종 추인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의 대표로서 수도이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강한 전통지지층과 당 기반이 취약했던 충청 민심을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었던 것.
하지만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기반이던 서울시와 수도권층의 반발이 거센 세종시 건설안에 대해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이 시장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의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국회 내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박근혜 대표에 대한 항의를 이어갔다. 당시 이 시장 측에서 박 대표에게 강하게 항의했던 인사들은 이재오(현 국민권익위원장) 맹형규(대통령실 정무수석) 박진 김문수(경기도 지사) 홍준표 박계동(국회 사무총장) 안상수(원내대표) 정병국 공성진(최고위원) 정두언 의원 등 대표적 친이계 의원들. 이 시장 역시 성명서를 내고 “수도 분할은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는 것”이라고 강력 주장했고 한 인터뷰에서는 “(수도 분할을)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은 심정”이라는 ‘거센’ 발언을 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이 시장의 발언 이후 반대파 의원의 수는 더욱 늘어 초반 10여 명에서 수도권, 강원·영남권, 비례대표 의원들까지 가세해 40여 명 가까이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2005년 3월 3일 ‘행정도시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178명 중 찬성 158표, 반대 14표, 기권 6표로 통과하게 된다. 이 시장 측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던 의원들이 40명 가까이 됐던 것에 비하면 반대표를 던진 의원 수가 현저히 적었던 셈이다.
시간은 흘러 2년여 뒤 2007년 대선에서도 세종시법은 뜨거운 화두였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유세과정에서 “세종시를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충청도민들에게 약속했다. 결국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세종시법 추진에 대한 우려는 집권 초기부터 제기됐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이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제기되자 이 대통령 측은 “대선과정에서 여러 차례 행정도시의 차질 없는 추진을 강조했고 행정도시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조성을 충청권의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최근 이 대통령의 ‘수정론’ 입장이 확인되자 당시의 발언이 ‘선거용’이었다는 불만이 충청권에서는 또다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행정부처 이전은 그 자체만으로 각 지역과 집단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어서 국론분열과 정치적 계파다툼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자신들의 유리한 집권구도를 위해 중요 정책을 ‘뒤바꾸기’하는 행태는 씁쓸하기만 하다. 이 대통령이 갑작스레 ‘세종시’를 꺼내든 배경 역시 내년의 지방선거와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