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구역 개편안서 안양권 제외는 안상수 원내대표(오른쪽)의 입김 때문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 ||
애초 행정구역개편안의 논의 과정에서부터 여론조사 등의 타당성 문제가 제기됐던 상황. 그런데 또 다시 ‘일부 번복 사태’까지 이어지자 여론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번복 사태가 벌어진 해당 지역에서는 찬반 입장이 팽팽했던 만큼 민심이 들끓고 있다. 정부의 졸속행정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 행정구역 개편안의 앞과 뒤를 따져보았다.
정부의 행정구역 개편안은 지난 2005년 4월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제1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행정구역 개편 논의를 위해 ‘국회 지방행정 및 자치제도 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여야 의원 31명이 현행지방행정구역 체제 개편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지방자치제도 전반의 개혁과제를 국회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당시 제기된 행정구역 개편안의 골자는 현행 16개 시·도와 234개 시·군·구를 통폐합해 인구 100만~200만 명 정도의 광역자치단체 30~60개 내외로 개편하자는 것. 하지만 해당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쉽게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
잠잠하던 행정구역 개편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9월에 이어 올해 8·15 경축사를 통해 행정구역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행정안전부가 ‘6개 지역 통합안’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 통합안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통해 7월 1일 통합지자체 출범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견이 조율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부의 확정안이 발표되자마자 안상수 원내대표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당내 사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안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행정구역 통합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통해 통합대상을 정했다”면서 “1000명 정도의 대상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것으로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에 의한 것으로서 잘못된 일”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안 원내대표는 이어 “행정구역 통합은 주민의 의사에 의해 결정돼야 민주적 절차에도 부합하고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 여론조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시군의회가 통합에 동의하더라도 반드시 해당주민들의 ‘주민투표’를 통해 의사를 확인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안 원내대표의 발언 배경을 두고 다분히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자신이 받게 될 타격을 염려하는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의왕·과천시가 지역구인 안상수 원내대표는 의왕시가 ‘안양·의왕·군포시’로 통합될 경우 불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의왕·과천시의 경우 의왕시가 과천시에 비해 선거인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의왕·과천시의 총 선거인수는 14만 7962명. 이중 의왕시가 10만 2047명, 과천시가 4만 5915명으로 의왕시가 과천시 선거인수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는 총 득표수 4만 2580표를 얻어 60.4%의 득표율로 통합민주당 이승채 후보(1만 9920표, 28.25%)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때 안 원내대표가 받은 득표수 중 66%가량인 2만 8066표는 의왕시민이 투표한 것이었고 과천시의 득표수는 1만 4514표(약 34%) 정도였다. 안상수 의원의 국회의원 당선에는 과천시보다 의왕시민의 득표수가 훨씬 큰 영향을 미쳤던 셈이다.
만약 의왕시가 안양·군포시와 통합된다면 선거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과천시는 새로운 선거구로 통폐합될 가능성도 있다. 국회에서는 이미 행정구역개편과 더불어 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도 줄기차게 제기되어 온 상황. 의왕·과천시에서 15대 이후 내리 4선을 지내며 터를 닦아온 안상수 원대대표로서는 이번 행정구역 개편이 달갑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의왕시와의 통폐합 지역인 안양과 군포시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강세를 보인 곳이기도 하다. 안양 세 곳의 지역구 중 만안구(이종걸 의원)와 동안구갑(이석현 의원)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으며, 군포시 역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16대 이후 3선을 지내왔다. 만약 의왕시가 합쳐져 새로운 선거구제가 만들어진다면 한나라당이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안양·의왕·군포시와 함께 행정구역개편지역에서 제외된 진주시·산청군은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이기 때문에 선거구가 바뀌어도 큰 영향을 받게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양·의왕·군포시를 빼기 위해 선거구제 개편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 지역까지 포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안 원내대표가 항의하자 즉시 행정구역 개편안을 변경한 정부의 처사가 무책임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행정구역개편안을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뒤인 지난 12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진주·산청과 안양·군포·의왕 두 지역은 통합되면 국회의원 선거구를 변경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통합에서 제외된다”며 “지난 10일 정부가 발표한 주민의견조사 결과는 단지 참고용으로, 안양·군포·의왕 지역 등이 거론된 것은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어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행정구역개편안을 이틀 만에 번복하는 졸속행정을 드러내자 해당 지역에서는 찬반 여론이 또다시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편의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영향력을 의식한 민주당 역시 이번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2010년 지방선거보다는 2014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어 여야 간 행정구역 개편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