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덕 위에 외롭게 앉아 있는 미술관 제2전시장. | ||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새말IC→좌회전→442번 지방도→추동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우측 방면→6번 국도→추동2교→좌회전→미술관 자작나무숲
▲먹거리: 횡성은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새말IC 부근에 축협횡성한우프라자 우천점(033-345-6160)과 새말점(033-342-6680)이 있다. 최고급의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이다. 한편, 가격 부담이 덜한 서민적인 음식을 찾는다면 둔내민속촌(033-342-7807)의 곤드레나물밥이 어떨까. 둔내IC에서 성우리조트 방면으로 가다보면 나온다.
▲잠자리: 미술관 자작나무숲(033-342-6833)에 숲속의 집이 있다. 핀란드 방식의 목조주택이 두 채 있다. 취사 가능하다.
▲문의: 횡성군 문화관광포털(http://
tour.hsg.go.kr) 관광진흥담당 033-340-2544~6, 미술관 자작나무숲(http://www.jjsoup.com) 033-342-6833
목적지는 강원도 횡성이다. 평창과 함께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미술관은 우천면 두곡리 두실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은 글머리에 다 드러났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이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하더라도 감감무소식이었던 눈이 해를 바꾸자마자 사정없이 내렸다. 실로 두렵기까지 한 폭설이었다. 그러나 미술관을 찾아간 날은 그때가 아니었다. 이틀 전인 1월 2일. 이날도 횡성에는 눈이 내렸다. 폭설의 예고편쯤은 될 듯한 눈이었다. 10㎝가량이 쌓였더랬다. 비록 거북이처럼 기어가야 했지만, 차량을 운행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횡성에서 평창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추동2교 건너 좌측 길로 접어들자 미술관 가는 길이 나타났다. 조붓한 시골길이다. 이 길을 따라 2㎞쯤 진행하면 미술관에 닿는다. 우측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있고, 좌측으로는 볏가리만 나뒹구는 썰렁한 논이 이어진다. 계속 나타나는 이정표는 미술관이 가까워짐을 알려주지만, 그럴수록 ‘이 촌구석에 미술관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의구심이 든다.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어질 즈음, ‘다행히’ 미술관이 나타났다.
네댓 채의 목조주택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제법 운치가 있는 미술관이다. 매표를 하고 입구로 들어서자 우측으로 자작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정면의 주택 뒤편에도 숲까지는 아닐지언정 자작나무들이 울타리처럼 펼쳐져 있다.
▲ 스튜디오갤러리는 실내 카페로도 활용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무료로 나눠준다. | ||
그의 비질소리를 뒤로 한 채 제1전시장으로 간다. 이 미술관은 2004년 5월 정식 오픈했다. 제1전시장은 각종 유명작가들의 초대전과 신진 작가들의 데뷔전을 여는 공간이다. 현재는 ‘원형숙 니트&퀼트’전이 진행되고 있다. 횡성 출신으로 원주여고 교사 신분인 작가다. 20여 년간 꾸준히 작업해 온 10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장에 가득 차 있다. 은은한 텅스텐 조명과 어우러진 포근한 질감의 털실 작품들이 영하의 바깥 날씨 때문인지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미술관의 모든 건물들은 목조주택이다. 통나무 혹은 편편한 널빤지를 이용한 건물들이다. 제1전시관이 그중에서 뛰어난 건축미를 보인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붕만은 확실히 특별하다. 건물을 지을 때 자작나무를 베지 않고 구멍을 뚫어 지붕 위로 자랄 수 있게 해주었다. 바깥 회랑 쪽의 지붕에는 이런 구멍들이 여럿 나 있다.
제2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우측면 등성이에 자작나무가 가득하다. 전부 원종호 관장이 심은 것들이다. 모두 1만 2000그루다. 1991년에 심었으니 우리 나이로 스물이 된 나무들이다. 마치 굶주린 아이처럼 비쩍 마른 줄기와 가지들. 게다가 뱀허물처럼, 혹은 갈라지다 못해 뜯겨져 나간 농부의 발바닥 각질처럼 나무껍질들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이보다 더 측은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자작나무의 단면일 뿐, 눈이 그치고 햇빛이 비치자 그 불쌍한 것들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한다. 탁한 줄 알았던 은빛 껍질들이 거울처럼 햇빛과 쌓인 눈빛에 반사되어 한없이 하얗게 부서진다.
▲ <사진1> 제1전시장 지붕 위로 솟아 오른 자작나무들. 집을 지으며 자작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사진2> 제2전시장에는 미술관장인 원종호 작가의 사진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사진3> 제2전시장에서는‘원형숙 니트&퀼트’전이 열리고 있다. | ||
제2전시장 뒤편에는 숲 속의 집 두 채가 있다. 관람객들이 묵어가는 집이다. 한번쯤 묵으며 자작나무숲과 미술관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제2전시장 왼쪽 아래에 자리한 스튜디오 겸 카페로 자리를 옮겨본다. 이곳에선 따끈한 차를 무료로 대접한다. 원 관장의 아내인 김호선 씨(56)가 커피를 내리고, 허브를 띄워 관람객들에게 낸다. 원 관장이 사용하는 카메라를 비롯해 사진, 예술, 문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서적들이 책장에 꽂혀 있다. 다락에도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비치돼 있다. 찬찬히 미술관을 관람한 후 여유롭게 차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장소다.
미술관에서 나가는 길, 눈은 다시 내렸고 원 관장은 미술관을 찾아준 손님을 배웅하며 비질을 한다. ‘요즘 작품 생활은 어떠냐’고 물으니 미술관에 매어 있어 힘들단다. 하지만 조만간 시간을 내서 태백엘 다녀올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얼마 전 해바라기밭으로 유명한 구와우마을의 대표가 방문해 ‘다 말라버린 해바라기들을 베지 않고 놔두었는데 그림이 된다’고 넌지시 말했던 것. 혹시라도 이 기사를 접하고 구와우마을로 사진을 찍으러 가는 이들은 중절모의 흰 머리 남자를 찾아보길 바란다. 누가 알까. 우연찮게 그를 만나게 될지도.
한편, 미술관 근처에는 횡성자연휴양림과 글로리아허브리조트 등 함께 둘러볼 만한 곳들이 있다. 갑천면 포동리에 자리한 횡성자연휴양림은 눈 덮인 아늑한 산책길이 더 없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갑천면 상대리의 글로리아허브리조트는 겨울에도 온실에서 허브향에 취하며 따뜻한 봄을 노래할 수 있는 허브농원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