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추미애 위원장의 회의진행을 막고 있다. 사진제공=노동과사회 | ||
“사악한 사람 같으니라고. 양심이 있긴 한 거야.”
12월 30일 오후 1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장 앞 복도. 추미애 환노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회의장 진입을 봉쇄당한 민주당·민주노동당 의원들, 보좌진이 국회 경위들과 한데 뒤엉켜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추 위원장이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관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일명 ‘추미애 중재안’) 처리를 시도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의원들이 실력 저지에 나서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추 위원장에 대해 거침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자신들의 회의장 진입을 봉쇄한 장본인이 자당 소속 위원장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홍영표 의원은 회의장 문을 부술 듯 발로 차며 “당장 출당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정안은 결국 1시간 뒤인 오후 2시쯤 추 위원장의 상정과 회의장을 지키던 한나라당 의원 8명의 찬성으로 상임위를 통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대체 왜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이른바 ‘추미애 파동’의 막후를 들여다봤다.
이날 민주당은 부글부글 끓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4대강 예산전쟁을 위해 소속 의원 전원이 국회에서 비상대기를 하는 와중에 ‘자살골’이 터진 셈이었기 때문이다. 개정안 통과 후 곧바로 진행된 의원총회는 ‘추미애 성토장’이 됐다. 급기야 ‘추한(추미애·한나라당)연합에 의한 추한 날치기’라는 조어까지 만들며 조롱했다.
먼저 상황보고를 위해 김재윤 환노위 간사가 단상에 섰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날치기 처리를 절대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도 추 위원장에 대한 비난은 삼갔다. 외부에 ‘내홍’으로 그려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그러자 곳곳에서 “상황을 똑바로 전달하라” “위원장 얘기는 왜 하지 않느냐”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강래 원내대표는 “김 의원이 워낙 착한 심성을 갖고 있어 제대로 말씀 안 하시는 것 같다”며 “추 위원장의 태도는 도저히 묵인할 수 없는 것으로, 당의 규율을 세우는 차원에서라도 대처할 것”이라고 중징계를 예고했다.
이처럼 민주당 의원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면서도 하나같이 똑같은 의구심을 가졌다. ‘추 위원장이 도대체 왜?’가 그것이다. 지난 6월 비정규직법 처리 때만 해도 ‘100만 해고대란설’로 무장한 여권에 맞서 끝까지 현행법 시행을 밀어붙여 정부로부터 끝내 “해고대란은 없었다”는 항복을 받아냈던 그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당의 간판 중 한 사람이 ‘이적행위’를 해서 얻는 정치적 실익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추 위원장의 행동은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추 위원장은) 그렇잖아도 당내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사람”이라며 “이번 일로 회복불능에 빠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환노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운영에 책임이 있는 추 위원장은 당장 사퇴하라”며 “추 위원장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지도부에 거듭 요청한다”며 재차 압박했다.
추 위원장 역시 고조되는 당내 비판과 관련, ‘정치적 책임’까지 외면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정책적 판단과는 별개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당에 부담을 줬다는 책임은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만간 환노위원장직 사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추 위원장 측은 그러면서도 이 같은 행동이 정치적 고려가 없는, 노동현안 해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정치적 실익을 따질 생각이었다면 당론과 배치되는 선택을 했겠느냐”는 것이다.
추 위원장 역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30일 밤에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조목조목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몇 시간 사이에 매우 수척해진 모습으로 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현행법 시행은 안 된다’는 것과 ‘한나라당 개정안 일방처리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라며 “(통과된 중재안을 보면) 자구 하나하나에 노조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들이 많이 반영됐구나 하는 점을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위원장은 당론을 어긴 데 대해서도 “저의 중재안을 놓고 당과 상의할 수 없었다. 당과 상의를 하는 순간, 중재안은 중립성을 잃어 더 이상 중재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어느 정권도 풀어내지 못하고 13년을 유예해온 노조법을 시한 종료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또 “당에 부담을 준 데 대해 저 역시 괴롭다”며 ‘당인’으로서 복잡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 ‘정치인 추미애’는 내치지도, 품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주자급’ 대중성을 인정하면서도, 잦은 독불장군식 행보로 리더십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한 의원은 “당이 명운을 건 예산투쟁을 할 때도 코빼기 한 번 비추지 않았던 사람”이라며 “아무리 대중적 인기가 높다 한들 그렇게 해서 정치적 성공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추 위원장 역시 2008년 당 대표 경선에서 정세균 대표에게 패한 뒤론 당내 현안과 대여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등 ‘방관자’적 자세로 일관했다. 그는 18대 국회 입성 후 사석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에 맞는 사람들을 (당내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16대 국회 때와 정치권 풍토 자체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 위원장의 행보가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반 대중에게 당론에 얽매이지 않는 ‘초당파적 정치인’이란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 ‘추다르크’라는 별명답게 자신의 원칙대로 현안을 뚫고 나가는 저돌성을 재확인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새해 벽두에 김형오 국회의장이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 본회의에서 통과됨으로써 이제 ‘노동현장’에서 ‘추 위원장의 결단’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관건으로 남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법 때도 당초 우려와는 달리 대량실직 사태가 나지 않아 추 위원장의 선택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 바 있다”며 “추 위원장으로선 그때와 같은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