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국민모임 토론회에 참석해 눈길을 끈 추미애 위원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지난 1월 21일 오후 서울 명동 예술극장 앞.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로 한낮에도 수은주가 영하권을 맴돌고 있었지만,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내뿜는 사자후는 뜨겁고 격렬했다.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조법을 전격 처리해 ‘친정’으로부터 ‘당원자격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추 위원장은 ‘징계 수용’이 아닌, ‘국민과의 대화’라는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중징계를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추 위원장은 “(지도부가 노조법 문제를) 당내 정쟁거리로만 삼으려고 한다”, “진실은 없고 정치기교만 난무한다”며 ‘정치적 꿍꿍이’를 의심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추위원장 측은 “징계과정이 한 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 같다”고 인식한다. ‘윤리위의 중징계 결정→지도부의 징계 경감 요구’ 등 애초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는 것.
실제 윤리위의 인적 구성만 봐도 중징계는 예상됐던 일이다. 주류 측 인사 다수가 포진돼 있었던 것. 윤리위 회의가 열린 지난 1월 18일 당 안팎에선 “‘제명’이 결정됐다”, “24개월 당원자격정지 결정이 나왔다” 등 ‘극약처방’을 예고하는 소문이 무성했다. 물론 당초 관측보단 수위가 낮아졌지만, 차기 대선주자군의 한 사람에게 ‘1년간 당원자격 정지’는 “사실상 탈당 권고로 봐도 무방하다”(수도권 재선의원)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주류 일각에선 “정세균 대표가 징계 수위를 대폭 경감해주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특별사면령’을 흘렸다. 실제 지난 1월 20일 당 최고위원회는 윤리위 징계안에 대해 “징계 수위가 다소 과한 측면이 있어 이를 경감해주길 바란다”는 부대의견을 달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무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에 대해 추 위원장 측은 “당 대표 경선에서 자신(정세균 대표)과 경쟁했던 인사에게 심한 생채기를 낸 뒤 이후 징계 수위를 낮춰 반발할 명분을 뺏겠다는 게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복수의 윤리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중징계는 추 위원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입장이다.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노조법 처리 이후 자중자애하며 당의 처분을 기다렸어야 할 추 위원장이 잇단 언론 인터뷰, 그것도 민주당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보수언론과 인터뷰하며 당 지도부를 비판한 게 결정적이었다는 것. 한 관계자는 “당을 비판하면서도 얼굴은 활짝 웃고 있더라”며 “뒤통수를 친 것도 모자라 등 뒤에서 총질을 해댄 꼴”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초 지난 1월 22일 열린 당무위에서 추 위원장에 대한 징계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었지만, 지방선거 공천 관련 당헌 규정을 논의하느라 이를 연기하기로 해 불씨를 남겼다. 그러나 앞서 정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징계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라며 ‘경감 가능성’을 공식화해 논란 확산 저지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추 위원장은 “징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장외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당원자격 정지 3개월 정도로 준다고 해도 추 위원장의 정치활동을 묶어놓겠다는 기조 자체는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라며 “지방선거에서, 전당대회에서 추 위원장의 운신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 정동영 의원(왼쪽)과 정세균 대표. | ||
비주류 의원모임인 ‘국민모임’의 한 재선의원은 “추 위원장 주장처럼 노조법에 대한 당론이 불투명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 대표가 추 위원장을 희생양 삼아 ‘지도부 책임론’을 면피하려는 술수”라고 꼬집었다. 모임의 또 다른 재선의원도 “개인적으론 추 위원장을 좋아하진 않는다”면서도 “(정 대표가) 사조직에 이어 정적 제거까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고 가세했다.
이 같은 공통의 상황인식 속에 추 위원장과 비주류 간 ‘전략적 연대’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민모임 소속인 강창일 의원과 이종걸 의원이 추 위원장의 명동 농성장을 찾은 게 이를 방증한다. 앞서 추 위원장도 징계논의가 이뤄지는 와중에 국민모임 토론회에 참석해 끈끈한 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들 의원은 추 위원장을 격려하며 “당내에서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류 측으로부터 견제를 받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정동영 의원과 추 위원장 간 연대설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정 의원은 당초 지난 1월 22일 당무위 회의에 자신의 복당문제가 정식 안건으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것이 불발에 그치자 상당한 불쾌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 열릴 당무위에서 복당문제가 전격적으로 회부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정 대표가 공언한 “복당이 임박했다”는 것과는 시간 차이가 상당한 것이어서 불만은 누적되는 분위기다. 연초 정 대표와 ‘전격 회동’을 가졌을 때만 해도 ‘1월 중순’ 복당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던 정 의원이다.
정 의원은 추 위원장 징계에 대해 “작은 허물을 덮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매진해야 할 때에 당이 작은 일로 힘을 허비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져 이심전심으로 통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국민모임 의원 대다수가 정 의원과 가깝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추 연대’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비주류 입장에선 어떻게든 ‘정세균 체제’를 흔들어놔야 활동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할 것”이라며 “정 의원도 추 위원장이 ‘잠재적 경쟁자’이지만 그 목적을 위해 충분히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