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두관 전 장관,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전 비서실장 | ||
최근 야권에서는 ‘친노의 도전’이 지방선거의 또 다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선거일을 불과 10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5월 23일)을 맞는 점도 친노 인사들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한때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던 노 전 대통령의 두 측근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은 이미 민주당 간판으로 각각 충남지사와 강원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 특히 최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기지사 출마를 계기로 한명숙 전 총리,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이른바 제2의 ‘친노 3인방’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한 전 총리와 김 전 장관은 각각 서울시장과 경남지사 선거의 강력한 야권 후보이며 문재인 전 실장의 경우 아직까지 출마요구에 대해 고사하고 있으나 ‘경쟁력 있는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경기지사에 도전장을 낸 유시민 전 장관이 민주당으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고 있는 반면 문재인 전 실장과 김두관 전 장관은 민주당의 약세지역인 영남권 후보라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과연 이들 세 친노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약진할 수 있을지 해당 지역 판세를 점검해 보았다.
# 김두관 무소속 돌풍 올까
경남지사 선거는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여권 ‘친이 후보’ 간의 예선전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곳이다. 이 전 장관이 전격적인 장관 사퇴와 함께 경남지사 출마 선언을 한 이후 이 전 사무총장은 “18대 총선에서 공천 파동으로 낙선한 이후 충분한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며 배수의 진을 친 듯한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나선 상태. 여기에 최근 ‘친박계’ 엄호성 전 의원(미래희망연대)과 이갑영 전 고성군수(미래희망연대)까지 도전 의사를 밝혀 친이 후보 경쟁에 이어 친이 대 친박 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무소속’ 김두관 전 장관의 ‘비상’이 예사롭지 않아 향후 선거 구도가 주목되고 있다. 몇몇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도 김 전 장관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9일 MBN·매일경제가 GH코리아와 홀딩페이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두관 전 장관은 이달곤 전 장관과 이방호 전 사무총장 중 누구와 맞붙더라도 접전을 펼칠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곤 전 장관과 김두관 전 장관의 양자 대결에서는 이 전 장관 41.5%, 김 전 장관 37.8%로 오차범위 내의 지지율 차이를 보였고, 이방호 전 총장과의 대결에서는 김 전 장관 46.6%, 이 전 사무총장 34.5%로 김 전 장관이 크게 앞섰다.
지난해 10월 경남 양산의 재보선에서도 친노계 송인배 후보가 패하긴 했지만 선전한 바 있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영남권의 친노 열풍이 다시 불게 된다면 김 전 장관의 승산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까지 부동층이 30%대에 이른다는 점도 한나라당을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 한나라당 주류 측도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의식해 김두관 전 장관과의 대결에서 경쟁력이 큰 이달곤 전 장관 측에 더 힘을 실어주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친노계 인사들이 만든 ‘국민참여당’의 줄기찬 입당 제의에도 무소속으로 나선 김두관 전 장관은 ‘친노 열풍’에 기대어 승부수를 띄우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참여당 측에서 함께 하자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나 홀로 승부를 해보고 싶었다”며 ‘무소속 출마’ 배경을 밝혔다(박스기사 참조). 하지만 김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친다면 자연스레 ‘노무현 정서’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 한명숙 재판 결과 ‘위력’은?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결과가 중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현 오세훈 시장 외에 원희룡·나경원 의원 등이 예비후보로 나선 상황이지만 오늘 4월 9일 한 전 총리의 1심 판결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구도가 재정립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 결과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한 전 총리 측은 법원에 빠른 심리를 요구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8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세 차례씩 심리를 이어가고 있다.
공판이 진행됨에 따라 상황은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데다 지난 18일 6차 공판에서 법원은 이례적으로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권유했다. 더구나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공소장의 ‘기본적 사안’을 짚고 넘어가 검찰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민주당도 한 전 총리의 재판에 대해 무죄 판결 가능성을 높게 점치며 판결 이후 한 전 총리 지지율이 더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론도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크지 않나. 때문에 설령 유죄가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정권 심판론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상으로 한 전 총리(32.9%)는 오세훈 현 시장(46.8%)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으나 야권단일후보로 나선다면 오 시장 48.0%, 한 전 총리 40.0%로 격차가 8%p(포인트)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여론조사기관 ‘더 피플’ 3월 9~11일 조사). 야권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되고 무죄 선고 이후의 상승 분위기까지 더해진다면 한나라당이 한 전 총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할 가능성도 높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서울시장 제3후보론이 부상하는 것도 한나라당의 위기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결과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오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과거 군사정권이나 민주화 시기에서 종종 행해지던 ‘이념 재판’과는 상황이 다르다. 비리 연루 누명을 벗는다고 해서 동정표가 크게 몰리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문재인 카드’ 현실화될까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오랜 동안 공들이고 있는 ‘문재인 출마카드’가 현실화될지 여부도 관심사다. 양당은 야권의 부산시장 후보로 문재인 전 실장을 유력한 카드로 ‘내정’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문재인 전 실장이 아직까지 강하게 고사 입장을 보이고 있어 부산시장 선거는 남은 기간 ‘문재인 변수’가 언제쯤 부상하느냐에 따라 경쟁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실장은 유시민 전 장관과 함께 친노 인사 중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또한 유 전 장관이 높은 인기도만큼 반감을 가진 이들 또한 적지 않은 반면 문 전 실장에 대해선 대중적 호감도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문 전 실장을 이번 지방선거에 반드시 출마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광재 의원의 경우 “정세균 대표, 손학규 전 대표, 문재인 전 실장을 차기 대선주자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문 전 실장 영입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문 전 실장은 출마 요구에 거절 의사를 밝히며 현재 당적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다.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과 ‘뜻’은 같이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정치참여에는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 얼마 전 딸 결혼식도 성당에서 조용히 치를 만큼 문 전 실장은 ‘비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 그가 과연 험난한 선거판에 나와 줄지는 미지수다.
친노계에서는 서울시장 후보 한명숙 전 총리, 경기지사 후보 유시민 전 장관, 강원지사 후보 이광재 의원, 충남지사 후보 안희정 최고위원 등이 나선 만큼 문재인 전 실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친노 열풍을 몰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 친노 인사는 “문재인 전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강한 이들에게 호감도가 매우 높다. 문 전 실장이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는 것만으로도 친노 정서를 일으키는 것뿐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론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부산시장 선거는 3선에 도전하는 허남식 현 시장이 여론조사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허 시장에 대한 ‘교체요구’도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고 있어 문 전 실장이 출마할 경우 현 여론조사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