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친박당이 공식 출범할 것으로 알려지자 박근혜 전 대표가 “그 당은 저와 관계없는 당”이라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 ||
하지만 ‘친박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친박당’이 만들어진다고 하자 박근혜 전 대표 측이 강력 대응하겠다고 나선 상황. 지난 1일 박 전 대표는 “그 당(친박연합)은 저와 관계없는 당”이라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과연 박 전 대표가 새로운 ‘친박당’ 출범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친박연합 측도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답하겠다”며 뒤로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되고 있다.
요즘 박근혜 전 대표 주변에서는 우려와 근심이 담긴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얼마 전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가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전격 결정한 배경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의 의중이 담긴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박 전 대표 ‘본인’의 입을 통해 나온 발언은 없다. 박 전 대표 측근들도 미래희망연대의 앞날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미래희망연대가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결사체’나 다름없는 조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관상 보이는 박 전 대표의 ‘수수방관’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지방선거가 다가오며 정가에서는 새로운 친박당 출몰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출범이 예고된 ‘친박연합’은 그 신호탄이었다. 친박연합은 기존의 선진한국당의 당명을 바꾸어 만들어지는 신당이다. 이들이 애초 당 출범을 공식화하려던 시기는 4월경. 그런데 미래희망연대가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결정하자 그 시기를 급작스레 앞당긴 것이다. 친박연합의 공동대표로 나서는 박준홍 전 축구협회장은 “서청원 대표가 결국 한나라당에 백기투항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친박연합’의 출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간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타내지 않았던 박 전 대표는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그 당(친박연합)은 저와 관계없는 당”이라며 “친박연합이라는 당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 인사들이 ‘친박연대’를 만들어 출마했던 것에 대해 ‘묵인’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박 전 대표가 이렇듯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당 출범에 대해 분명한 선긋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박 전 대표는 ‘친박연합’이 다분히 지방선거를 겨냥한 ‘일시적 정당’이 될 것에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친박연합이라는 당명을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의심스럽지 않나.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이름을 팔아 한 자리 차지해보겠다는 술수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가 이미 미래희망연대로 인해 적잖은 정치적 부담감을 지고 왔던 만큼 또다시 자신의 이름에 기댄 정당의 출범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또한 박 전 대표의 일부 측근들은 ‘친박연합’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박 전 대표의 사촌오빠인 박준홍 전 축구협회장이 신당을 이끌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이용휘 전 한미준 대표 등 주변 인사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계산으로 박 전 대표 주변에 모여든 것’이라며 거리감을 두고 있다. 또한 “과거 고 전 총리를 지지하다가 고 전 총리가 정계에서 은퇴하자 박 전 대표 쪽으로 모인 것이다. 박 전 대표 지지의 ‘순수성’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여기에 친박연합의 출범과 관련해 박 전 대표가 기억에서 ‘지우고픈’ 과거도 생각났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2002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들었던 당인 ‘한국미래연합(미래연합)’이 그것. 미래연합은 고작 7개월여 간 ‘생명력’을 가지다가 그해 대선 직전인 11월 19일 한나라당에 합당된 바 있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정당의 울타리를 벗어나 군소약체 정당에서 혹독한 시기를 보냈던 박 전 대표는 ‘미래연합’ 시절을 떠올리기 싫어한다고 한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는 미래연합을 자신의 경력에서 지우고픈 ‘오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연대가 만들어졌을 때도 과연 그 정치생명력이 얼마나 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었다. 그럼에도 당시엔 ‘공천학살’ 즉 친박계 후보들의 대거 공천탈락이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이탈 세력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이 시기에 박 전 대표의 이름을 건 군소정당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명분도 없고,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최근 친박연합 외에도 ‘친박’의 브랜드를 내건 정당들이 더 생겨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래희망연대의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강력 반발해온 이규택 전 대표가 지난 3월 31일 당 대표직을 사임한 이후 ‘신당 창당’과 ‘친박연합’으로의 합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데다 이날 탈당한 미래희망연대 석종현 전 최고위원과 전 시도당 위원장 10여 명도 “구 친박연대의 창당이념을 승계하는 동조 세력들을 모아 새로운 당을 출범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 여기에 정가에선 기타 박 전 대표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신당을 준비 중이라며 ‘대박사랑’이라는 당명까지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주요 지지 세력인 ‘박사모’도 미래희망연대의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반발하며 신당 창당을 지지하고 있다. 박사모는 지난해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심이 거세지자 박 전 대표를 향해 “더 이상 한나라당에 있다가는 박 전 대표만 피해를 본다. ‘근혜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정치권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후죽순격 신당 창당 조짐은 박 전 대표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지방선거에 대한 ‘불개입’ 입장을 밝힌 만큼 자신의 이름에 기댄 정당이 후보를 내고 선거활동을 하는 것이 미칠 여파도 걱정스러울 것이다. 한나라당 내 친박 후보를 지원하기도 어렵고 한나라당 밖의 친박 후보를 지원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박 전 대표 주변의 신당 창당 움직임은 지방선거는 물론 향후 대선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중 일부 강성인사들은 “이명박 정권이 결코 차기 대통령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희망연대를 회유해 한나라당에 끌어들인 것 또한 철저한 ‘박근혜 죽이기’의 일환이다. 결국 당내에서 입지가 약화되는 박 전 대표는 언젠가 당을 박차고 나와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 때’를 대비해 당 외곽에서 ‘친박당’을 만들어 박 전 대표의 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2일 중앙선관위에는 ‘친박연합’이라는 당명이 공식 등록됐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 당사를 마련한 친박연합은 향후 미래희망연대 이규택 전 대표 및 한나라당 합당에 반대하는 탈당 세력 등을 규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친박연합 김형기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은 우리가 알아서 나서서 싸우길 바라고 있다는 판단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말하겠다. 모든 문을 열어두고 박 전 대표 지지 세력을 흡수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을 표명했으나 ‘주군’으로부터 “나와 관계없다”는 얘기까지 듣게 된 새 친박당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