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비주류 핵심 3인방을 중심으로 정세균 대표 체제에 반대하는 ‘수요모임’이 결성됐다. | ||
비주류 의원들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야권 연대와 전북지역 공천 문제였다. 정 대표 측이 선거연대 협상에서 비주류 의원 지역구를 다른 야당에 ‘표적 양보’한 것도 모자라, 최근엔 정동영 의원 텃밭인 전북의 기초단체장 경선 방식까지 주류 측에게 유리하게 뒤집자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모임에서 의원들은 “지도부가 먼저 희생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중진들마저 당 운영에서 완전히 소외시키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토해냈다고 한다.
특히 선거기획 및 공천 관련 실무를 장악하고 있는 정 대표 측 386인사들을 겨냥한 집중 성토가 이어졌다. 경선관리본부장인 최재성 의원, 공천심사위원회 간사인 오영식 의원, 야권 선거연대 협상단장인 윤호중 사무부총장 등이 주요 ‘표적’이 됐다. 수요모임 대변인 격인 장세환 의원은 “참석자 다수가 ‘젊은 친구들이 당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며 격한 반응을 쏟았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은 또 서울(한명숙 전 총리)·충남(안희정 최고위원)·강원(이광재 의원) 등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에 ‘친노무현 벨트’가 구축되는 점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사실상 ‘당 대표 1인 체제’를 공식화하고 있는 민주당에서 수요모임의 출범은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우선 기존 비주류 연대와 양적·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당장 규모 면에서 당내 최대 의원모임이 됐다. 이날 참석한 21명 외에도 7명이 위임장을 통해 참여의사를 밝혀 회원만 28명이 됐다. 대변인만 2명(장세환·최문순 의원)이고, 김재균(초선)·안민석(재선)·조배숙(3선 이상) 의원 등 선수별 간사도 따로 뒀다. 이는 기존 비주류 그룹인 ‘국민모임’(11명)에 3배 가까운 규모다.
참여인사들의 정치적 무게도 남다르다. 5선의 박상천, 4선의 이석현·김영진, 3선의 김부겸·김영환 의원 등 중진들이 다수 참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비주류 핵심 3인방’으로 통하는 ‘천·정·추’(천정배·정동영·추미애 의원)의 존재였다.
그간 주요 정치적 변곡점마다 간헐적 반발에 그쳤던 비주류 진영을 한데 묶는 자리를 마련한 이는 천 의원이었다. 천 의원은 지난해 4월 정동영 의원 공천문제를 시작으로 미디어법·4대강 예산투쟁을 거치는 동안 ‘온건한 저항’을 강조했던 정 대표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천 의원은 이날 모임에서 “야권 선거연대 결과를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아야 할 정도로 당내 소통 부재가 심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말 노조관계법 강행처리로 2개월간 당원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데 이어 최근 지역구(광진을)까지 야권연대 양보지역으로 내줘야 하는 처지에 몰린 추 의원도 “지도부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느냐”고 거들었다.
누구보다 정 대표와 깊은 갈등의 골을 보이는 건 정 의원이다. 최근 전북지역 공천을 놓고 정 대표와 비공개 회동까지 가지면서 담판을 지었던 정 의원이다. 양측은 “백의종군하겠다던 정 의원이 전북의 시골 군의원까지 자기 사람으로 심고 있다”, “당 대표가 지방선거는 안중에 없고, 대표 연임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천·정·추’의 수요모임 참여를 차기 당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수요모임의 한 관계자는 “이들 모두 지방선거에서 자파 인사들의 공천을 통한 조직 구축에 나서려고 했다가 불똥이 튀자 저항 연대에 나선 것”이라며 “당권 경쟁이 조기에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관건은 손학규 전 대표의 스탠스다. 손 전 대표는 그간 정 대표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주류 측 리더십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요모임에 손 전 대표와 가까운 김부겸 의원이 참석하고, 측근인 안민석 의원이 간사를 맡자 “‘정·손(정세균 손학규)연대’에 균열이 일어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주류 측 한 재선의원은 “김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모임에 참석한 것이고 안 의원 역시 개인적 이해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손 전 대표는 여전히 정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주류 측은 “초계함 침몰사고에 따른 비상시국에 당내 분란을 연출한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수요모임의 출현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실제 정 대표는 지난 1일 천 의원 등 4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긴급간담회를 갖고 ‘소통 부재’ 논란 등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며 이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수요모임이 ‘유력한’ 당내 대안세력이 될 것인지를 놓고는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점차 응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천·정·추 3인 모두 차기 당권 도전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유기적 연대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조만간 내부 분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들 비주류가 활약할 공간이 너무 좁다는 점도 비관적인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