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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윤철 부총리 | ||
이중 실제로 빅딜이 이뤄진 것은 반도체와 유화일 뿐 나머지 5개 산업부문은 개별 기업간 이해관계가 얽혀 사실상 빅딜계획이 백지화됐거나 무산됐었다. 그러나 이미 빅딜이 이뤄진 반도체 산업 등을 놓고 그동안 정부와 재계, 관계, 학계 인사들은 과연 이 정책이 올바른 것이었느냐에 대해 끝없는 논란을 벌여왔다. 이런 와중에 최근 현정부 최고위층 인사가 이미 단행된 빅딜 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재벌의 책임으로 밀어붙이면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빅딜이 다시 도마위에 오른 것은 최근 전윤철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가 김대중 정부 초기에 추진한 7개 업종 ‘빅딜(Big Deal:대규모 사업교환)’에 대해 “좋은 시책이 아니었다”고 밝히면서부터. 특히 그는 “빅딜은 정부가 주도한 것도 아니며 재벌 스스로 택한 길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서 재벌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빅딜을 둘러싼 비화들이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빅딜에 대한 현정부 관계자의 부정적인 발언은 전 부총리가 밝힌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빅딜을 둘러싸고 잠복해 있던 미스터리들이 다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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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 정권 초기 정부가 추진한 빅딜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헌재 전금감원장(왼쪽)과 강봉균 전 청와대 경제수석 | ||
빅딜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김대중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직전이던 1998년 1월 경. 대통령선거 후 김영삼 정부로부터 정권인수작업에 들어갔던 인수위에서 이 단어가 처음 튀어나왔다. 당시 빅딜정책을 공개적으로 발설한 사람은 박태준 전 포스코회장(당시 자민련 대표) 등 정권인수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사람들. 재계쪽에서 파악하고 있는 빅딜 구상의 주인공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강봉균(나중에 청와대 경제수석)씨와 이헌재(나중에 금감원장)씨 등이라는 설과 포스코연구소 황아무개씨라는 설 등이 있다. 이 중 재계에서는 강-이 라인이 빅딜 구상의 주역이라는 데 대부분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포스코연구소의 경우 빅딜과 관련해 박태준 전 회장이 삼성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간 삼각 기업결합 방안을 연구한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이 구설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는데, 포스코의 경우 자동차에 쓰이는 강판 등을 대규모 공급하기 때문에 연구소 차원에서 단순 예측보고서를 만들어 본 수준이었다는 것. 반도체 빅딜의 표적이 됐던 LG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빅딜을 추진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기업에 대해 여신을 동결하고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는 등 각종 압력을 행사했다”며 빅딜의 주인공은 정부였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빅딜 추진 당시 재벌들 사이에서는 강봉균 경제수석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쌍두마차로 빅딜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당시 정부가 빅딜 대상 업종과 관련 기업에 대해 윤곽을 그린 뒤 전경련을 창구로 기업간 자율적인 협상이라는 모양새를 갖추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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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9년 청와대에서 열린 30대그룹 회장단 초청 간담회 장면 | ||
빅딜정책에 대해 재벌들은 지금도 불만이 많다. 전윤철 부총리도 빅딜에 대해 늦었지만, 뒤늦게 실패한 시책이었다는 발언을 했다. 재벌기업의 한 임원은 “재계에서는 그동안 빅딜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 왔으며, 언젠가 빅딜을 주도했던 사람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빅딜 실패 사례로 현재 한국경제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하이닉스가 꼽히고 있다. 반도체 빅딜에 의해 탄생한 하이닉스는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를 묶어 만든 회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의 부실을 한군데로 모은 결과에 불과했고, 곧이어 반도체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부실만 남긴 채 여전히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를 스스로 독자생존토록 했으면,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자발적으로 도태돼 경제 전체에 부담을 덜 지웠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빅딜 실패의 원인은 경제관료들이 지난 80년대 초반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중화학 투자조정이 성공한 데서 착안해 안일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정권 출범 초기에 대통령 경제고문을 맡으면서 핵심 실세역할을 했던 유종근 전 전북지사도 지난 3월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강제적 빅딜에 반대했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삼성 관계자도 “정부가 시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빅딜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기업 경쟁력을 떨어지게 했다”며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 해프닝도 그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빅딜의 후유증 빅딜의 도마에 올랐던 재벌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빅딜의 하이라이트였던 하이닉스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경영 정상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LG반도체를 하이닉스에 넘겨야 했던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빅딜에 대한 강한 불만으로 지금까지도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일절 참석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3개사의 지분을 묶어 출범시켰던 철도차량 부문 빅딜은 최근 현대모비스가 나머지 지분을 인수함에 따라 당초 구상했던 빅딜은 온데간데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철도차량 사업부문 빅딜은 현대자동차를 위한 정치쇼였다는 비아냥을 하고 있다. 유화 빅딜에 따라 현대정유에 넘겨졌던 인천정유(당시 한화그룹 소속)도 늘어나는 부채와 경영난으로 침몰 직전에 놓여 있다.
당시 한화는 인천정유를 넘기면서 땅을 쳤고, 이 회사를 넘겨받은 현대정유마저 갈수록 경영이 나빠지고 있다. 발전설비 부문 등 일부 중간형 사업부문은 빅딜 결과 맘모스 기업으로 변신하면서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 납품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