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서 따로 안내고 전화 신청하니 출장조사…보훈처 “심사기준 완화 때문” 특혜 의혹 일축
이 국회의원 측은 문재인 정부 들어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기준이 완화됐기 때문이라며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 보훈처 측도 훈장을 수여받은 인사가 여당 국회의원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국가보훈처(보훈처)와 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분석해보니 해당 훈장이 수여되는 과정에서 다소 수상한 정황이 포착됐다.
A 국회의원의 부친 B 씨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인한 동아일보의 정간과 일제의 동아일보, 조선일보 폐간의 부당함을 성토하고, 중일전쟁을 조선독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등의 배일적 발언을 하다 체포돼 징역 1년 6월을 받은 공적으로 훈장을 받았다.
B 씨는 지난 1982, 1986, 1990, 2005, 2008년 등 5차례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일요신문은 당시 보훈처가 B 씨 측에 보낸 심사 결과통지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1982년 원호처(보훈처의 전신)가 보낸 통지서를 살펴보면 포상대상자 탈락 이유로 “정부포상 심사기준 미달”이라고 적었다. 보훈처는 공적심사 결과 통보시 내용을 자세하게 적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가감 없이 기재될 경우, 당사자와 유족에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해 간단하게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사자와 유족 등이 요구하면 미포상 사유를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했다.
이어 1986년 보훈처가 보낸 통지서를 살펴보면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던 모든 분(3·1독립운동의 경우 순국 또는 옥고를 겪은 분만 8만여 명으로 추계됨)을 포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략) 독립운동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40여 년 이전의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확실한 원전기록문서에 의거 활동내용이 확인되는 사항만을 심사대상으로 채택했다”고 탈락 이유를 통보했다.
1990년에도 보훈처는 “귀하의 경우 그 사실(독립운동)을 입증할 수 있는 열람자료가 부족하거나 포상범위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통보했다.
2005년과 2008년에는 탈락 사유가 변경됐다. 보훈처는 ‘광복 이후의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B 씨를 포상대상에서 제외했다. 2008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하지 않았던 B 씨 가족들은 공교롭게도 정권이 바뀐 후인 지난 2018년 다시 한 번 신청을 했다. 마지막으로 신청서를 낸 후 10년 만이다.
번번이 심사에서 탈락했던 B 씨는 올해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건국 훈장은 우리나라 상훈제도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한다. 위로 무궁화대훈장이 있지만 대통령이나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만 받을 수 있다. 훈장 다음으로 포장과 대통령표창 등이 있다. 올해 광복절 행사에서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 31명, 건국훈장 애족장 62명, 건국포장 26명, 대통령표창 58명 등 총 177명을 포상했다. 애족장은 건국훈장 5등급으로 독립유공자 본인의 경우 매달 405만 원을 지급받고, 배우자는 146만 원을, 기타 유족은 143만 원을 지급받는다.
2005년과 2008년의 탈락 사유인 ‘광복 이후 행적 불분명’은 무슨 뜻일까. B 씨는 1999년까지 국내에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광복 이후 행적이 불분명할 이유가 없다. 이에 대해 보훈처 측은 “광복 후 행적 불분명은 1945년 이후 행적을 알 수 없거나 사회주의 활동을 한 경우를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B 씨는 광복 후 조선공산당 공산청년동맹 서울지부 청년단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이력이 있다.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B 씨가 훈장을 받은 이유에 대해 보훈처 측은 “올해 4월에 광복 이후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포상을 검토하도록 심사기준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훈처 측에 따르면 올해 광복절에 사회주의 활동 인사가 포상을 받은 경우는 B 씨를 포함해 모두 7명이다.
사회주의 활동을 한 자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보훈처 내부적으로 4월부터 검토됐지만 올해 6월 보도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보도자료가 공개되자 사회주의 계열 인사에게 독립유공 포상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B 씨 측 가족은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기 전인 올해 2월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했다.
사회주의 인사와 관련한 심사기준이 완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고 신청을 했느냐는 질문에 A 의원 측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을 모두 찾아내 명예를 되찾아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심사기준이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회주의 인사들이 독립유공 포상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사회주의 인사에 대한 심사기준 완화는)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봤다. A 의원이 직접 신청하면 오해가 생길까봐 다른 가족이 신청했다”고 해명했다.
B 씨 가족은 그동안 보훈처 측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내왔는데 이번에는 신청서를 따로 내지 않고 전화로 신청을 했다. 전화로도 신청이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보훈처 측은 “과거에 신청서를 냈던 사람은 전화로도 신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올해 포상 대상자 중 전화로 신청한 사람이 또 있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알기로는 그분밖에 없다”고 답했다.
보훈처 측의 해명을 믿기 어려워 기자가 일반 민원인으로 위장해 담당부서에 직접 문의를 해봤다. 공적과 관련된 자료는 이미 제출했고 그동안 사회주의 이력으로 지인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했는데 전화로도 재심 신청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담당직원은 “이미 제출된 관련 자료는 다시 낼 필요가 없지만 전화상 신청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담당직원은 “재심 신청서는 제출해주셔야 한다. 신청서 양식은 따로 없고 재심을 신청하는 이유를 적어주시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B 씨 가족으로부터 전화로 재심 신청을 받은 보훈처 측은 이후 직접 출장까지 가서 B 씨 행적과 관련한 가족의 증언을 청취했다. 올해 포상자가 177명이니 심사 대상자는 최소 수백 명일 텐데 직원이 출장을 가서 증언을 청취한 것은 과도하게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보훈처 측은 “종종 있는 일이다. 특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재심사 신청시에는 공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추가 자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동안의 결과통보서에서도 보훈처 측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제출해달라고 했지만 B 씨 가족은 이번에 새로 신청을 하면서 추가로 낸 자료가 없었다.
보훈처 측은 “광복 이후 행적문제로 서훈이 보류되었다가 포상 심사기준 개선으로 포상하게 되었기 때문에 추가 자료를 내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추가 자료가 필요 없었다면서 직원이 출장을 가서 가족들의 증언을 청취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행사에서 B 씨 가족에게 훈장을 친수(직접 전달함)했다. 건국훈장 애국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은 친수자가 각 1명이었는데 유독 애족장만 B 씨를 포함해 2명이 친수 받았다.
B 씨를 친수 대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보훈처 측은 “독립유공자 본인이나 배우자가 살아 있으면 가장 우선이 된다. B 씨의 경우 배우자가 살아계셔서 친수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 광복절 행사에서는 B 씨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당 국회의원의 할머니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포상 대상자 중 전현직 정치인 친인척이 더 있느냐고 질의했지만 보훈처 측은 독립유공자 가족의 직업까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가족 명단을 공개하면 직접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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