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태현(가명․52․대구광역시) 씨는 실직 후 지금까지 12년 동안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남 씨는 두 딸을 위해 오늘도 콜(call)을 받는다.
#3. 건설회사에서 퇴직한 박수용(가명․62․서울 종로구) 씨는 아이들이 아직 학생인 탓에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쉴 수 없었다. 박 씨는 시간당 1만 원을 받고 목욕탕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 아르바이트는 하루 3시간밖에 할 수 없다. 그래도 박 씨는 앞의 두 경우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예전에 취득한 안전교육 자격증을 활용해 건설현장에서 강의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악화하면서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장년층 가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프리터족’은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이마저도 쉽게 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알바 문의 사절’ 문구를 써붙인 한 편의점. 연합뉴스.
이 같은 사례처럼 특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프리터족’(프리+아르바이트)이라 한다. 본래 프리터족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로,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자유롭게 일하는 젊은이들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을 의미하지만 이에 더해 ‘생계’를 책임지는 중장년층 가장들을 포괄해 쓰인다.
실직 후 재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막노동․주유원․배달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서울 노원구의 한 인력사무소 운영자는 “최근 들어 건설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오는 남성이 많다”고 밝혔다. 석계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아무개 씨는 “요즘에는 구인 사이트에 글을 올리면 40대 남성들이 꽤 연락해온다”고 말했다.
프리터족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중․장년층 프리터족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가족 구성원 모두 빈곤화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는 정규직 일자리보다 임금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 고용노동부의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상용직과 임시일용직의 임금 차이는 약 200만 원으로 나타났다. 박상도 농협구미교육원 교수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몰락하면 가족 구성원 전체 생계가 위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 같은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서비스·판매, 기계조작·단순노무 종사자 등 단순노동직 취업자는 지난해 8월보다 28만 4000명 감소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퇴직․실직한 중․장년층이 단순 일용직이나 임시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일자리까지 없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인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인데,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장년층 프리터족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환경 악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기업이 느끼는 경기체감지수)는 74를 기록했다. 1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경기실사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낮으면 경기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100보다 높으면 경기호전을 예상하는 기업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경기가 악화되고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인적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도 늘었다.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40대와 50대의 실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만 3000명, 3만 6000명 늘었다. 청년 실업만큼 중․장년층 실업도 심각하다는 얘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 악화, 정부가 시행하는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으로 영향을 받은 기업들이 직원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중․장년층 실직자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자영업은 두렵고 재취업은 무리라는 것이다. 김영남 씨는 “주변에서 자영업을 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며 “이전 직장이 고도의 능력을 요구했던 게 아니라서 다른 회사에 재취업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장년층 프리터족을 위한 정부 대책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배근 교수는 “지금은 50대 이상은 물론이고 30~40대 중년층도 프리터족이 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이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취업할 수 있고, 오래 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연령대라고 생각하는 탓에 30~40대 신(新)중년 프리터족을 위한 고용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박상도 교수도 “정부 차원에서 퇴직하거나 실직한 30~50대, 또 60대를 위해 재취업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인턴기자 mkbhapp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