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10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위해 의장접견실에 입장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국회의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문 의장이 “촛불혁명을 완수하자”며 공동운명체론을 설파했지만, 당·청 내부에선 청와대와의 궁합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문 의장 측도 몸을 낮추면서 청와대 자극을 피하려는 모양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문 의장이 취임 이후 가장 자주 언급한 것은 ‘국회의 계절’이다. 적폐청산이나 경제정책 등의 마중물은 결국 입법이라며 국회의 존재감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이 담겼다. 연내 개헌 추진 의지를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문 의장은 9월 3일 국회에서 가진 20대 국회 후반기 첫 정기국회 개회식에서도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며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할 때”라며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추진 의사를 밝혔다.
여권 내부에선 미묘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한 관계자는 “개헌 추진에 속도를 내면 국정동력이 분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 일부 의원들도 “개헌 이슈를 제기할 타이밍은 오는 2020년 21대 총선 직전”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6·13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동시 개헌을 추진하면서 야권 압박용으로 써야 할 무기를 조기에 소진했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문 의장이 8월 말 “(이제) 대통령의 시간은 끝났다”며 국회 역할론을 강조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미끄러지는 상황에서 의도와는 다르게 야권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청와대가 제안한 평양 남북 정상회담 동행도 틀어지면서 파열음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야권이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9월 5일 국회에서 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 의장을 향해 “블루하우스(청와대) 스피커를 자처하느냐”, “입법 수장으로서 격도, 균형감각도 상실한 ‘코드 개회사’” 등의 초안에 없는 날 선 비판을 했다.
문 의장은 “따끔한 충고 잘 들었다. 저는 평생 의회주의자”라며 “청와대 말에 흔들리는 일이 있다면 제 정치인생을 다 걸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문 의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문 의장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와 각을 세울 생각이 전혀 없다”며 “문 의장 스스로 청와대는 물론, 야당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은 원고 초안에 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