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에 들어설 예정인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예상 투시도.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 부산시의회 등은 최근 주요 투자사업에 대해 현장 점검을 펼쳤다. 자료만으로는 생생한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현장 점검 대상에는 기장군에 들어설 예정인 야구 명예의 전당도 포함됐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정종민 부산시의회 예결위원장이다. 정 위원장은 현장점검 이후 가진 모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야구 명예의 전당을 겨냥해 “100억 원의 사업비 전액을 부산시민들의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인데, 그럴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정 위원장은 이날 “타당성이 없거나 사업 계획이 부실한 사업은 계획 변경을 요구하기로 예결위원들 간에 논의를 가졌다”고 밝히면서 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에 부정적인 입장이란 뜻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냈다.
부산시의회가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른바 ‘딴지’를 건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4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부산시, 기장군 등은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에 관한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기장군은 일광면 동백리 일대 약 1850㎡의 부지를 제공하고 부산시가 108억 원을 들여 건물을 조성키로 했다.
운영비도 부산시가 매년 3억 원씩 6년간 18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시의회에서 반대했다. 부산시의회는 야구 명예의 전당이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조건으로 건설비만 승인했다. 이제는 거의 더불어민주당 일색으로 바뀐 시의회에서 앞서 승인된 건설비마저 제동을 걸려고 나선 것이다.
부산시의회의 이 같은 입장이 전해지자 기장군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장군은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부산시의회의 내년도 예산안 예비심사가 27일부터 진행되는 만큼, 한국야구위원회(KBO)·부산광역시·기장군이 2014년 3월에 체결한 실시협약서를 토대로 예산 편성의 시급성 및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기장군이 이처럼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은 세계 수준의 야구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군의 장밋빛 청사진 때문이다. 기장군은 이미 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을 조건으로 주변 19만 6515㎡ 부지에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로 명명된 사회인 야구장 4면을 조성했다.
야구 인프라에 대한 기장군의 투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올 연말까지는 리틀 야구장과 소프트볼장 2면도 만든다. 2019년까지 약 12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해 실내야구연습장 및 야구체험관, 부설주차장, 광장 등도 조성할 예정이다. 기장군 관계자는 “내년에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야구체험관, 실내야구 연습장까지 들어서면 명실상부한 세계 수준의 야구 테마파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기장군은 자료에서 “부산시의회 예결위원장실을 찾아 사업의 필요성 및 당위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한국야구위원회 등을 직접 찾아가 한국야구인들과 기장군민, 부산시민의 숙원사업인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동원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부산시의회가 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에 반대의 뜻을 나타낸 게 최근 들어 더욱 첨예해진 부산시와 기장군 간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와 주목된다.
기장군에 조성된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의 모습.
부산시와 기장군의 갈등은 부군수 임명권을 두고 증폭됐다. 윤포영 부군수 임명 이후 오규석 군수는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부산시청을 찾아 부군수 임명권을 군으로 돌려달라는 1인 시위를 갖고 있다. 벌써 그 횟수도 지난 13일 기준으로 열일곱 번째에 달한다.
하지만 부산시는 지난달 27일 기초차지단체 부단체장을 임명하면서 윤포영 현 부군수를 유임시켰다. 윤 부군수가 오는 연말 퇴임하면 갈등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아직까지 부산시는 오 군수의 외침에 전혀 귀를 열지 않고 있다.
부산시와 기장군의 갈등은 고교무상급식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 등이 내년부터 고교무상급식을 실시하면서 기장군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이를 두고 서로 진실공방을 펼치며 상대방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오규석 군수는 부산시를 넘어 지역 여권과도 관계가 매우 껄끄럽다. 실제 최택용 더불어민주당 기장군지역위원장은 오 군수가 부군수 임명권 반환을 위한 1인 시위를 가질 때 바로 옆에서 ‘정치 쇼를 그만두라’는 취지로 수차례 맞불시위를 펼쳤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관계를 아우르는 여권의 오규석 발목잡기가 곧 다가올 총선과 연계된 것이란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며 “부산시와 지역 여권이 단지 경쟁자 견제 차원을 넘어 정책결정에까지 이 같은 자신들의 입장을 투영해선 안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