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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벌들은 패전의 쓰라린 상처를 떠안았다.재벌들은 전대미문의 빅딜에 도장을 찍었고, 부채비율 200% 미만 감축 요구를 수용했으며, 부실기업 정리라는 명분 아래 계열사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비록 그 같은 DJ의 요구가 문어발식 경영으로 한국 경제의 발전을 저해해온 재벌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재벌들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DJ의 재벌을 향한 파상공세는 집권 중반을 넘어선 2000년을 기점으로 수그러들었다.
잇단 특단의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대우, 현대, 동아 등 매머드 재벌이 침몰하면서 경제 전반이 위기에 빠져든 것과 무관치 않지만, 집권 초기 무기력하게 쓰러졌던 재벌들의 위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강화된 것도 하나의 배경이었다.재벌 공격의 선봉장이던 이헌재, 강봉균, 이기호, 전윤철씨 등이 개혁정책 추진의 핵심에서 자리를 옮기거나 퇴진한 것도 재벌의 재기와 무관치 않았다.
2000년 이후 일시 중단됐던 DJ의 대 재벌 공세가 집권 말년에 다시 강도높게 전개되고 있다.재벌로서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주5일근무제 도입 등 집권 초기에 추진했던 일련의 재벌개혁에 버금가는 고강도 정책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재벌들의 대응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재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다분히 정권 말기라는 시대적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재벌들은 주5일근무제 실시 백지화를 주장하는 한편, 결합재무제표 도입 연기, 부채비율 200% 완화 등 DJ 정부 들어 도입된 다른 정책들까지 백지화, 혹은 재검토를 요구하는 강경자세를 취하고 있다.
7월초 전경련, 경총 등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들은 주5일근무제 백지화와 함께 기존의 개혁정책들도 재검토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재벌의 반격에 DJ도 강하게 맞서고 있다. DJ의 재벌 압박카드는 전통적 방식인 불공정 내부거래 조사, 세무조사, 기업주의 비도덕성 부각 등이다.
DJ와 재벌의 마지막 전쟁은 최근 공정거래위가 전격적으로 6대 재벌에 대한 불공정 내부거래를 조사키로 하면서 공개적으로 막이 오른 느낌이다.표면상 공정위가 최근 밝힌 6대 재벌 내부거래 조사방침은 매우 냉정해 보인다. 공정위측도 “통상적인 조사일 뿐이며, 서면조사가 원칙”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속을 뜯어보면 이번 조사의 배경이 의심을 살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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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라린 기억.. 지난 99년 빅딜 관련 회담을 하고 나오는 정몽헌 현대 회장,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구본무 LG 회장(왼쪽부터) | ||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공정위는 사정 차원의 내부조사는 올해는 없을 것이라고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근 일부 언론에 국세청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실제로 올 들어 국세청은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보와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전무에 대한 증여문제를 집중 조사했다.
여기에 그동안 물밑에 잠복돼 있던 공적자금 문제가 불거진 뒤, 검찰이 공적자금 유용 의혹이 있는 부실기업주에 대한 대대적인 사법처리에 나섰다.재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시나리오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음은 시기상의 문제다. 대선이 불과 5개월 남짓한 시기에 한동안 잠잠하던 공정위 조사 등이 나온 것은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매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정치권 일부와 재계에서는 경제 당국의 이번 조사 등이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띤 ‘기획사정’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번 재벌 공세를 진두지휘하는 인물로 권력 핵심부의 특정 인사가 거명되기도 한다. 정권 초기부터 재벌개혁에 참여한 이기호 수석과 개혁성향이 강한 전윤철 재경부 장관-이남기 공정위원장 등으로 형성된 경제정책 라인도 재벌과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주역들이다.
재계 일각에서 이번 조사에 대해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는 데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번 조사가 이루어지기 직전, 현정부는 지난 97년 DJ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했던 주5일근무제 도입을 강력히 추진, 지난 7월1일부터 관공서와 은행에서 이 제도를 시행중이다.그러나 전경련과 경총 등 재계단체들은 “주5일근무제 시행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실시하는 은행 등에 대해서는 주거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하는 등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물론 재계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재계의 반발에 직면한 DJ로서는 재벌들과의 협상을 통한 해결은 어렵다고 판단, 맞불대응의 강공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재계의 저항에 밀릴 경우 DJ로서는 자신의 선거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민주당의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와의 약속도 어기게 돼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게 된다.
결국 DJ는 재벌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차원에서 ‘전가의 보도’인 공정위와 국세청, 금감원 등 경제 사정기관을 통한 압박카드를 택하지 않았느냐는 것.
DJ는 재벌의 속성상 강도높게 압박해 들어갈 경우 결국은 재벌들이 굴복할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이번 공세의 부수효과로 정치적 플러스효과도 함께 얻을 것이라는 계산을 깔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DJ의 정치적 계산은, 재벌 길들이기에 성공할 경우 연말 대선이 다가오면서 야당 줄서기에 나선 재벌들의 발걸음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자치단체장 선거 이후 재벌들의 야당 줄서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
정치자금에서도 야당인 한나라당은 지자체선거 이후 정치헌금이 밀려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나라당이 사무처 직원 등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진 부분도 풍부한 자금력을 짐작케 하는 실례다.
이 같은 해석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들은 “공정위 조사 등 일련의 조사행위를 재벌 길들이기라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재벌들이 가진 편협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청와대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등은 현 정부 들어 계속돼온 재벌개혁 정책의 일관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업무일 뿐이며, 정치적 배경이나 음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